이스라엘, 이란 핵시설 폭격 작전…네타냐후 정치적 입지 회복
“보라, 백성이 큰 사자처럼 일어날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6월 12일(현지시간) 유대교 성지인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찾았다. 그는 벽 사이에 유대 경전 토라의 민수기 23장 24절을 함축해 적은 쪽지를 끼워 넣고 기도를 올렸다. 유대민족을 공격하는 자에게 신이 저주를 내리고, 유대인이 저항할 것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구절이다.
이스라엘군은 이튿날 ‘일어서는 사자’ 작전을 개시했다. 이란의 핵·군사·에너지 시설에 대규모 폭격을 했고, 군 장성과 핵과학자를 암살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작전 개시를 선포한 연설에서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늘리고 있는 이란이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핵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한밤중 테헤란을 덮친 공포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최대 핵시설 나탄즈와 타브리즈 공군기지 등을 포함한 100곳가량이 타격을 입었다. 군 지휘관과 핵과학자도 다수 사망했다.
‘자위권’을 명분으로 실시된 이스라엘의 작전은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이스라엘의 이란 도심 폭격과 이란의 보복,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반복되면서 6월 17일 기준 이란에서는 224명이, 이스라엘에서는 24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상자는 각각 1400여명, 600여명에 달한다. 사망·부상자 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포함됐다.
새벽에 이뤄진 기습 공격에 테헤란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부상자들은 피범벅이 된 채 병원으로 향했고, 주민들은 상점으로 달려가 식량과 연료를 사들였다. 피란길 행렬로 테헤란 외곽 도로는 꽉 막혔다. 이웃의 죽음을 본 이들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실각 위기’ 네타냐후의 기사회생
아랍국가들과 4번의 중동전쟁을 치른 이스라엘 시민은 언제든 땅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암암리에 지원한 이란에 해묵은 감정을 지닌 사람도 많다. ‘중동의 북한’으로 불리는 이란이 고도의 우라늄 농축 기술을 활용해 핵무기 개발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수십 년 전부터 팽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미 2기 집권 시절인 2010년대 초반 이란 핵시설 공격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왜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 공격을 감행했을까. 이란이 최근 60%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3개월 만에 50% 늘렸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내부 보고서 내용이 지난달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단순히 이 때문에 핵시설 공격을 현실화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했거나 개발을 시도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닌 데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지난해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공습해 단단히 화난 상태였다. 이란을 자극하면 중동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어서는 사자 작전 개시 배경을 알기 위해선 이스라엘 정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면초가에 몰려 있었다. 지난 3월 그가 카타르 측으로부터 6500만달러(약 892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여론이 나빠졌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1년 8개월가량 이어지자 지지율도 낮아졌다. 6월 4일 발표된 미드감 여론조사 양자대결에서 그의 지지율은 34%로,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39%)보다 낮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실각할 위기에도 놓였다. 보수 종교 정당들이 초정통파 유대교도 하레디를 징집하려는 정부 정책안에 불만을 품고 연정에서 이탈하려는 틈을 타 야당이 의회(크세네트) 해산안을 발의했다. 여당과 보수 종교 정당은 군 징집과 관련한 타협점을 찾아냈고, 일어서는 사자 작전 전날인 6월 12일 해산안은 찬성 53표, 반대 61표로 간신히 부결됐다.
대이란 공습 이후 분위기는 뒤바뀌었다. 이란의 핵 개발을 두려워한 이스라엘 시민들은 결집하기 시작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의 반격으로 피해를 본 바트얌 지역을 찾자 사람들은 오히려 환호했다. 집이 무너져내린 와중에도 “이런 결단은 네타냐후밖에 못 한다”, “우리에겐 전쟁이 필요하다”고 말한 주민도 있었다. 야당 정치인들도 이스라엘이 이란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네타냐후는 3번에 걸쳐 총 17년, 이스라엘 역대 총리 중 최장기간 집권한 ‘정치 고수’다. 그가 적대 집단에 무력 대응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스라엘군이 지난해 4월 13일 이란 본토를 타격하자 지지율(37%)은 일주일 만에 2%포인트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론으로 급락했던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이 최근 이란과의 대립으로 상당 부분 회복됐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9월에는 헤즈볼라를 향한 공격 수위를 높이면서 집권 리쿠드당의 지지율(24%)이 야당 국민연합(21%)을 제치고 1위로 올랐다.
미국과 진행 중인 이란 핵 협상도 이번 공격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모순적이게도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비핵화 프로그램인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싫어했다. 그는 2015년 미 의회 연설에서 JCPOA로 대이란 제재가 풀리면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것이며, 이란이 테러 자금을 모을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의 비핵화가 이뤄지면 대이란 공격 명분이 약해지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으로 미국과 이란의 6차 핵 협상은 무기한 연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말리기는커녕 이 상황을 이란이 협상에 응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양국 교전 중 억울하게 죽은 생명의 존엄은 무시한 채 이스라엘의 작전을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어서는 사자 작전이 오히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 전문가인 매슈 번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이번 공습은 이란 지도부에 핵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네타냐후 총리의 결정은 비극적 실수”라고 평가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