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만에 장군 출신이 아닌 국방부 장관이 탄생할 것인가.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서 첫 국방부 장관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은 광복군 중장을 지낸 이범석 장군이었다. 민간인 출신으로는 3대 이기붕, 6대 김용우, 10대 권중돈, 9·11대 현석호 국방부 장관이 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예외 없이 대장·중장 출신이 그 자리를 꿰찼다. 특히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역대 국방부 장관 50명 가운데 26명이 육사를 졸업했다. 이들은 헌법을 수호하고 시민을 대표하기보다는 군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12·3 불법 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헌법 파괴를 시도하다 내란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에 장군 출신이 아닌 국방부 장관이 임명되면 1961년 현석호 장관 이후 64년 만이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오는 6월 25일 이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될 것으로 보인다.
■캠프 출신 ‘빅 3’
미국은 ‘국가안전보장법(National Security Act)’에 따라 국방장관은 반드시 민간인이어야 한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민간인이 군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한민국도 헌법 제87조 제4항에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방부 장관 직위는 국민을 대표해서 군을 지휘·감독하는 문민 통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은 그동안 무늬만 민간인이었다. 합참의장이나 참모총장으로 근무하다 국방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40대 김장수(육사 27기), 47대 서욱(육사 41기)도 육군참모총장에서 전역하자마자 양복으로 갈아입은 뒤 장관으로 취임했다.
미국의 경우 군 출신은 제대 이후 7년이 지나야 국방장관 자격이 주어진다. 군 출신이 국방장관으로 직행할 경우 군 내부의 인맥 형성과 이를 통한 결탁을 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방지하려는 차원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역대 국방장관을 보면 기업가나 정치인, 교수 출신 등이 대다수다. 국방장관을 풍부한 군 경험보다는 복잡한 예산을 통제하고 민감한 군내 이슈를 다뤄야 하는 자리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문민 정권 이후 정권 교체기가 되면 국방부 장관은 대선 캠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장군 출신이 가는 자리가 됐다. 새 정부에서는 이 전통이 깨질지 주목된다. 이번 대선에서는 12·3 불법 계엄 여파로 안보 이슈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안보 단체들의 활동 역시 지지 선언 정도에 그쳤다. 여기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안보 관련 단체들의 세 과시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긴 것도 영향을 끼쳤다. 이는 이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군 예비역 단체에 빚진 게 별로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을 지지한 예비역 단체는 4개다. ‘대한민국 천군만마 국방포럼(천군만마)’, ‘민주 밀리터리 포럼(M포럼)’, ‘민주당 국방안보특별위원회(국방안보특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예비역장병단(대민장)’ 순서로 출범했다. 이 4개 단체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상당수가 겹쳐 활동했다.
새 정부 국방부 장관 후보로는 이 4개 단체를 주도하거나 참여한 대선 캠프 출신들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5선), 전역한 지 6년이 넘은 김병주 민주당 의원(육사 40기·예비역 대장),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등이 ‘빅 3’로 꼽힌다.
■‘다크호스’ 후보
6·25전쟁 이후 70년 넘게 ‘경계작전’에만 몰두해온 한국군은 이제 강력한 구조조정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정부의 2025년 국방예산은 61조5878억원이다. 안보를 경제적 관점에서 책임져야 할 시점이라는 점에서 전문 경영인이나 전문 경제 관료 출신의 국방부 장관에 대한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군은 예비역·퇴역 단체나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직의 효율화에 나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국방사업에서도 비용 지출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중간 점검, 획득, 운용, 문제점 처리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육·해·공군, 해병대 등 50만여명을 중심으로 한 방대한 국방 생태계에는 공무원과 방위산업 종사자, 연구자 등이 일하고 있다. 급격한 군 인력구조 변화와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개혁해야 할 대상도 방대하다. 군사 분야에 한정된 전문 지식으로는 대처에 한계가 있다. 이재명 정부의 문민 통제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안보정책을 주도하고, 군은 군사전략과 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군인들의 인식은 12·3 불법 계엄 이후 많이 바뀌었다. 현역이나 예비역 구분 없이 장군들의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장군 출신이 아니어도 문제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힘이 있거나 경영능력이 탁월한 민간 전문가를 요구한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국방 세미나에서 국방부 장관의 자격에 대한 자신의 바뀐 의견을 소개했다. 그는 “제가 현역이던 시절에는 국방부 장관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야전 현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현역 출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불법 계엄) 사태를 겪고 난 이후 생각이 좀 바뀌었다”며 “장관은 군사대비태세에 대해선 합참의장이나 각 군 참모총장의 보좌를 받거나 과감하게 위임하고 국무위원으로서 타 부처와의 업무 조율 및 협조, 국회에서의 다양한 정무적 활동에 비중을 두어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에 걸맞은 전문가가 국방부 장관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 출신인 강건작 예비역 중장(육사 45기)은 지난 4월 펴낸 저서 <강군의 조건>에서 “장성 출신 국방부 장관이 능력 있는 민간인보다 더 나을 이유가 없다”며 “(차라리) 정권을 창출한 민간인 중에서 임명하면 (군 인사를 둘러싼 잡음 등) 부작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과정(국방장관)을 거쳐 성장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이 국방 업무에 정통하면 국민이 안심할 것이라고 했다.
‘빅 3’ 후보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로는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이 꼽힌다. 3선 의원 출신인 그는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냈고, 21대 국회 국방위에서 강단 있는 의정활동 모습을 보였다. 12·3 불법 계엄 당시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을 도와 신속하게 계엄 해제를 주도했다. 전문 경영인인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해사 40기)과 군사평론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국회의원도 국방부 장관 후보로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 전 실장은 이재명 캠프에서 안보전략 구상에 참여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