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사는 짝꿍은 5인 미만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였다. 퇴직금도 못 받고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그만뒀다. 지난해 계약직으로 취업해 1년 가까이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직원들이 여러 이유로 그만두는 ‘좋소’ 기업이다.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상사들과 그만두는 직원들, 야근과 주말 근무에도 ‘수당’ 대신 “고생했다”며 용돈 몇만원을 쥐여주는 곳이다. 어느 날 그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야겠다”며 소형 녹음기를 주문했다.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다수의 이주 배경 아동이 선주민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원장은 인도에서 온 수녀님이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설명회에 갔을 때는 학교 정문 앞에 ‘입학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중국어, 몽골어, 베트남어, 영어, 한국어로 쓰여 있었다. 공단과 가까운 이 동네 놀이터에는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뛰논다. 얼마 전 장인을 모시고 건강검진을 하러 갔던 병원은 봉합 수술로 유명한 곳인데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내 장인은 등이 굽었고, 장모님은 귀가 들리지 않는다. 두 분이 마을에서 20년 넘게 운영해온 세탁소는 실력 좋기로 정평이 났는데, 새로 바뀐 건물주가 퇴거를 요구해 한동안 속을 태웠다. 기존의 넓었던 세탁소 공간은 새 건물주가 자신의 가게를 냈고, 장인·장모는 그 옆에 수도 시설도 변변찮고 화장실조차 없는 작은 사무실을 개조해 세탁업을 이어나간다. 이곳이 나의 세계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민 노동자, 이주 배경 아동, 장애인, 영세 자영업자가 함께 사는 세계. 다만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자로서 내 이웃이 경험한 불합리한 일들은 기사화하는 게 마땅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그런 일은 너무 많아서” 혹은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너무 작은 기업이라서” 자체 ‘킬’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치권에서도 선거 때마다 “약자를 대변하겠다”며 허리를 굽히지만, 정작 내 이웃을 위해 나서는 정치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주간경향이 지난 1631호 표지 이야기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다룬 건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내가 속한 세계의 이웃을 위해 활동한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곁에서 함께 싸워줄 정치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비록 대선 득표율은 0.98%에 그쳤지만, 그 표들이 한국사회의 ‘밀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