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깊은 사랑,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5.06.16

<퀴어>는 형태와 편견에 종속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성찰이 녹아 있다. 한동안 대중과 타협하며 미뤄뒀던 감독의 매우 사적이고 은밀한 욕망이 자유롭게 만개한 작품이다.

/㈜누리픽쳐스

/㈜누리픽쳐스

제목: 퀴어(Queer)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이탈리아, 미국

상영시간: 137분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드류 스타키

개봉: 2025년 6월 20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1971년 이탈리아 남부 도시 팔레르모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유명 감독과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는데, 선물 받은 슈퍼 8㎜ 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기도 한 그는 1999년 <주인공들>(The Protagonists)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다.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작품은 2009년 발표한 <아이 엠 러브>다. 아카데미 의상상,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로 지명되며 비평가들에게 호평받았고, 관객들에게도 큰 지지를 얻으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시작한다.

이후 <비거 스플래쉬>(2015), 그리고 국내 대중에게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을 내놓는데, 위의 3편을 묶어 ‘욕망 3부작’이라 칭한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10대 시절에 <퀴어>의 원작소설을 처음 읽었다고 한다. 이후 작가 윌리엄 S. 버로스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고, 오랫동안 이 작품의 영화화를 꿈꿨지만 각색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전작인 <챌린저스>(2024)를 준비하던 2022년, 재능 있는 각본가 저스틴 커리츠케스를 만나면서 뜻밖의 가능성이 열렸다. 비로소 오랫동안 바라왔던 작품이 차기작으로 결정됐고, 그 뒤로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한다.

초로에 맞닥뜨린 치명적 순수

1950년대 멕시코시티, 이곳에 정착한 미국인 작가 리(다니엘 크레이그 분)는 술과 섹스에 취한 방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청년 유진(드류 스타키 분)에게 첫눈에 반한 리는 어떻게든 그에게 다가가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유진에 대한 리의 갈망이 강해질수록 외로움 역시 깊어진다.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대명사로 더 넓게 쓰이는 퀴어(Queer)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기묘한(Strange), 특이한(Unusual)이란 뜻이다.

극 중에서 스스로 품격 있는 동성애자임을 자부하는 주인공 리는 이 ‘퀴어’라는 단어에 집착한다. 자신과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을 퀴어로 지칭하는데, 이런 호칭의 구분은 소수자인 같은 동성애자들 안에서도 또다시 계급을 구분 짓는 미천한 경계이자, 스스로 더욱 고립시키는 올가미가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또는 스스로가 엘리트란 자부심이 강한) 중년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이끌리는 내용은 역사가 길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토탈 이클립스>(1995),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고하토>(1999),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2009), 에이탄 폭스 감독의 <서블렛>(2020)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감독과 배우의 자유로운 귀환

<퀴어>는 구아다니노 감독이 이제껏 만들어왔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형태와 편견에 종속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성찰이 녹아 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 대한 파괴적인 집착을 다루지 않는다. 짝사랑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아주 깊은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깊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사랑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랑이 행복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한동안 대중과 타협하며 미뤄뒀던 감독의 매우 사적이고 은밀한 욕망이 자유롭게 만개한 작품으로 보인다.

중견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의 획기적 변신도 국내 관객들에게는 생경하다. <007> 시리즈의 냉혹한 스파이나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의 깔끔한 탐정의 이미지가 아무래도 강하다 보니, 마약과 욕정에 절어 흐느적거리며 능글능글하게 미소 짓는 그의 연기가 파격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동성 연인을 연기한 <사랑은 악마>(Love Is the Devil: Study for a Portrait of Francis Bacon·1998), 장모 격의 연상녀와 사랑에 빠지는 짐승남으로 분한 <마더>(The Mother·2003)처럼 소싯적 출연했던 작품을 생각해보면, 모처럼 파격적인 성애를 다룬 이번 작품이 호화스럽고 오랜 여행 끝에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IMDb.com

/IMDb.com

노년에 접어든 남자가 한참 젊음의 생기를 꽃피우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고 사랑하는 것은 눈앞의 사람 자체일까, 아니면 그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젊음과 생명력일까.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토마스 만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Morte a Venezia·1971)은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명확하고 아름답게 영상화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작품의 이면에 드리운 진실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The Most Beautiful Boy in the World·2021)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통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지만, 이로 인해 평범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삶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아역배우 비에른 안드레센의 씁쓸한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탐미주의자’, ‘유미주의자’로 알려진 비스콘티 감독은 소품 하나까지도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이 컸던 사람으로 정평이 자자하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촬영할 당시에도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의인화인 타치오를 연기할 완벽한 소년을 찾기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오디션을 진행했다.

마침내 그는 스톡홀름에서 수줍음 많은 15세 소년 비에른 안드레센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후 평생 비에른을 따라다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는 찬사는 그의 삶에 가장 큰 올무가 된다.

공교롭게 <베니스에서의 죽음> 개봉 후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공개된 이 작품은 지금의 관점에선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당시의 영화제작 환경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서도 가치가 크다. 2022년 스웨덴 굴드바게 시상식 편집상을 받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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