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공무원 줄이고 민간 기업 육성,베트남 도이머이 2.0

호찌민|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2025.06.16

베트남은 1986년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를 선언했다. 베트남 공산당 홈페이지

베트남은 1986년 제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를 선언했다. 베트남 공산당 홈페이지

베트남에 개혁 태풍이 불고 있다. 첫 번째 개혁은 중앙부처 통합과 공무원 20% 감축이다. 2024년 12월 시작해 5개월 만인 2025년 4월 30일에 10만명의 공무원과 공공 인력 감축을 완료했다. 베트남 정부는 일선 공무원, 국영 언론인, 경찰, 군인까지 대거 인력을 감축하면서 향후 5년간 113조동(약 6조원) 예산을 감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 관료제는 권한 중복과 만연한 행정 지연으로 비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2024년 11월 25일 베트남 최고 권력자 또 럼(To Lam) 총비서는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정부 조직 구조를 축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베트남의 복잡한 관료 시스템과 부정부패, 느리고 불친절한 행정 절차 때문에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어서 베트남이 더욱 성장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부처 20% 감축은 단순한 인력 축소가 아니라 정부 조직의 기동성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전략적 구조조정이다.

지방정부 통합을 통한 효율성 강화, 관료주의 축소

중앙부처 개혁을 마무리한 베트남에 올해 4월 ‘지방정부 통합’이라는 두 번째 개혁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기존 63개 성과 중앙직할시를 통합해 34개로 줄이고, 기존 3단계 지방 행정 체계를 2단계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 개편안의 핵심 목적은 ‘지방 행정 효율성 향상’과 ‘관료주의 축소’에 있다. 이해하기 쉽게 한국식으로 바꾸어 보면 ‘경기도-OO시-XX동(읍·면)’이라는 3단계 구조에서 ‘OO시’를 없애고 광역자치단체가 읍·면·동을 직접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제조시설을 짓기 위해 인허가를 받을 때 2단계 행정 체계에서 행정 지연과 인허가를 둘러싼 부정부패 사건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 통합은 행정 절차 간소화를 통한 관료주의 축소와 정책 집행의 효율성 향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을 적극 유치하기 위함이다. 지방 행정 조직 축소를 통해 약 13만명의 지방공무원과 공공인력을 줄여 향후 5년간 130조동(약 6조9000억원)의 예산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정부 통합 개혁의 또 다른 목적은 내륙 지역과 해안 지역 통합을 통해 항만 인프라 효율성을 꾀하고자 함도 있다. 예를 들면 베트남 남부 최대 산업 지대인 빈즈엉성의 경우 64개국 이상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제조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항만이 없다. 수출하기 위해서는 인근 다른 행정구역에 있는 항만을 통해 수출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물류비용도 높아지고 여러 행정 절차가 수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한 바리어붕따우성에는 대형 선박이 접안 가능한 깊은 수심의 항만이 있지만, 제조 산업은 없다. 빈즈엉성과 바리어붕따우성의 통합으로 산업단지와 항만시설 모두를 갖춘 경쟁력 있는 지방정부가 탄생해 물류 효율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또한 지방정부 예산 역시 통합되니 적극적으로 항만 개발에 나서고 투자 유치 역시 탄력을 받게 됐다. 통합 개혁 이전에는 베트남 전체 지방정부의 44%만이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통합으로 62%가 해안선과 항만을 갖추게 됐다. 이 지방정부 통합 개혁안은 공산당 총비서,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 등 베트남 국가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 중대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회의체인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의했다. 5월 5일에는 국회에서 지방정부 구조 개편과 새로운 행정 체계 도입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며 올해 12월까지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간 중심의 시장경제체제로

세 번째 혁신은 베트남 대내외에서 혁명으로 불리는 초특급 태풍이다. 2025년 5월 4일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은 결의안 제68호를 통해 ‘민간 부문을 국가 경제의 중심축’으로 명시했다. 1986년 도이머이 개혁개방 선언 이후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와 민간 중심의 시장경제가 뒤섞인 혼합경제 체제를 유지해온 베트남이다. 하지만 이제 자유시장경제에 무게를 둔 체제로의 전환을 과감하게 선언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현재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차지하는 민간 부문의 기여도를 2030년까지 70%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같은 기한으로 현재 94만여개인 민간 기업을 200만개까지 대폭 늘릴 수 있게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행정을 간소화하기로 했다. 사업 허가 간소화를 위해 기업 운영 자격 조건을 올해 내로 최소 30% 줄여 민간 기업 활동을 적극 장려하기로 했다. 또한 베트남 민간 기업의 98%가 중소기업인 현실을 적극 타개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어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대형 민간 기업을 20개 이상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베트남 사업의 큰 걸림돌 중 하나였던 ‘법적 모호성’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행정지침의 일관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모호한 법규 때문에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해석에 의한 법 집행으로 벌금이 부과되는 경우도 있어 공무원의 권한 남용을 규제하는 법도 마련 중이다. 경제 범죄에 대해서도 기업이 의도 없는 과실을 저질렀을 때는 처벌을 완화할 수 있게 관련 조항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처벌보다는 교육과 행정 지도를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자 함이다.

개혁의 원동력은 베트남 국민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 5월 22일자 커버스토리에서 또 럼 총비서를 조명하며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 선언에 이어 ‘두 번째 기적(second miracle)’을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에 따르면 또 럼은 과거 공안부 장관 시절의 강경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경제개혁과 균형외교를 주도하는 실용주의 리더로 변모했다고 분석했다. 민간 부문 강화, 외자 유치, 국영기업 개혁 등 전방위적으로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정권 교체나 정책 변화보다 더 큰 체제 전환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베트남은 지금 선진국 문턱을 넘기 위한 담대한 도전에 나섰다”고 진단했다. 이 특집 기사는 한 명의 베트남 지도자에 대한 평가를 넘어 서구 자본이 베트남의 구조적 전환에 주목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베트남의 개혁 성공 여부가 또 럼 총비서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평가했지만, 이는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또 럼 총비서가 개혁의 선봉에 서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빠르고 거대한 개혁이 국민적 저항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또 럼 총비서의 개혁 의지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베트남 국민의 역동성에 기반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 없이 지도자의 의지만으로는 국가 개혁을 이끌 수 없다. 국가의 방향을 단호하게 설정하는 지도자와 이를 과감하게 수용하는 국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베트남의 기적’은 이 순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베트남의 진짜 힘이다.

<호찌민|유영국 &amp;lt;베트남 라이징&amp;gt;·&amp;lt;왜 베트남 시장인가&amp;gt;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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