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은 뒷모습

2025.06.02

지난 4월 28일 서울 성동구의 한 공원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 / 정효진 기자

지난 4월 28일 서울 성동구의 한 공원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 / 정효진 기자

온라인에서 탁상시계를 구매한 친구는 막상 받아보니 분침이 고장 난 시계였다고 했다. 배우자는 왜 이런 시계를 샀느냐며 핀잔을 줬고, 친구 마음엔 서운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 이리저리 비교해보고 구매한 것이었다. 그러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배우자의 뒷모습을 마주했다. 화원을 운영하는 부부는 당시 비수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친구는 생각했다. ‘그래,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해.’

부부 모두 눈물을 보이고는 잠들었다는 이 이야기는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영화에서 어린이인 양양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뒷모습이라 어딘지 쓸쓸한, 왠지 모르게 진실해 보이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누군가의 앞모습만 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이 일어난다.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 2주차에 접어들었다. 대선후보들은 전국 곳곳을 돌며 사람들을 만난다. 악수를 하고, 사인을 해주고, 사진 촬영을 한다. 많이 찾아가 얼굴을 알릴 것.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불변의 유세 공식이다.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로서 이재명 후보의 유세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이 후보를 보려는 시민들이 모이고, 후보는 이들을 향해 ‘잘사니즘’, ‘먹사니즘’ 등 조어를 언급하며 “색깔이 무슨 상관이냐”, “국익 중심” 등을 반복해 말한다.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그런데 국민이 ‘더 잘사는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어떤 가치들로 채울 것인지 불분명하다. 보수정당과 비교해 인권 의제에 목소리를 내던 이 후보는 12·3 불법 계엄 이후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로까지 뻗어나간 광장의 요구에는 답하지 않고 있다. 차별금지법, 임신중지 대체 입법 등에 관한 의견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거듭한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발의한 이후 올해로 19년째가 됐고, ‘낙태죄’는 2019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째 입법 공백 상태다. 합의가 아니라 설득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대선후보 중에선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권 후보는 지난 5월 18일 TV토론에서 산업재해 피해 사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그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의 고공농성 현장을 방문하는 등 정치권의 관심을 기다리는 이들을 만나고 있다. 권 후보는 “가장 아픈 곳을 우리는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이 언젠가 보았지만, 기억하지 못한 뒷모습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해 집 또는 시설에만 머무는 장애인, 더는 폭력과 차별은 안 된다고 말하는 여성과 성소수자, 위험한 환경에서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일하는 노동자, 이주민 등의 뒷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나. 반짝 이벤트성 유세에 그치지 않고 이들의 현실에 잠시나마 들어가 손을 뻗자.

지지자들의 열광하는 표정에서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기성 정치’에 등 돌린 시민들, 한국사회가 밀어내 그림자처럼 존재하게 된 이들을 바라볼 때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