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예보가 달러화 투자? 이게 말이 될까

전성인(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2025.05.23

예금보험공사가 은행의 외화 표시 예금 급증으로 환위험 노출을 막기 위해서 예금보험기금의 10%를 달러화 표시 자산에 투자하기로 했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한수빈 기자

예금보험공사가 은행의 외화 표시 예금 급증으로 환위험 노출을 막기 위해서 예금보험기금의 10%를 달러화 표시 자산에 투자하기로 했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한수빈 기자

최근 일부 언론에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예금보험기금의 10%를 달러화 표시 자산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등장했다. 주지하듯이 예보는 은행 같은 부보 금융기관의 예금등에 대해 개별 금융기관 단위로 예금자 1인당 5000만원(오는 9월부터는 1인당 1억원)까지 그 지급을 보장해주는 기관이다. 그런데 그런 예보가 달러화 표시 자산에 투자한다고? 이게 말이 돼?

위 질문에 대한 즉답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예보가 예금자에게 지는 채무는 모두 원화 표시 채무다. 예금자 1인당, 개별 금융기관당 5000만원이기 때문이다(즉 예금자 1인당 3만5000달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채무에 대한 준비자금을 달러화 표시 자산으로 구축하면 예보는 원화 채무와 달러화 자산 보유라는 ‘통화의 미스매치’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환위험에 노출된다. 흠. 뭔가 냄새가 난다.

예보, 외화 예금 증가로 환위험 노출 증가?

언론 보도에 나타난 달러화 자산 보유의 논거를 살펴보자. 언론에 따르면 최근 들어 은행의 외화 표시 예금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예보가 자칫 환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이다(특히 원화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위기 시에 더욱 그러하단다). 그래서 환위험 노출을 줄이고, 환헤지를 하기 위해 예보기금 내의 달러화 자산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 이게 말이 되는 논거일까?

최근 들어 은행의 외화표시 예금이 증가하고 있다는 건 팩트다. 문제는 그다음 논리적 고리다. 외화 예금 증가가 자동으로 예보의 환위험 노출을 증가시킬까? 기본적으로 아니다. 왜냐하면 예보의 채무는 이 글의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원화 채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율이 어찌 되건 간에 예보는 예금자 1인당 5000만원의 채무를 질 뿐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예금자가 해외 주식 투자를 위해 5만달러의 외화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그럼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이면 이 외화 예금의 원화 환산액은 5000만원이 된다. 이제 원화 가치가 폭락해서 환율이 1달러당 1500원이 됐다고 하자. 그럼 이 외화 예금의 원화 환산액은 7500만원이 된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모두 예보의 이 예금자에 대한 채무는 5000만원일 뿐이다.

즉 원화로 5000만원 이상을 해외에 투자하는 예금자의 경우 외화 예금의 원화 환산액은 환율 변동에 따라 등락하겠지만, 예보의 채무는 대부분 5000만원으로 고정된다. 특히 원화 가치가 폭락하는 상황을 상정하면 주어진 외화 예금의 원화 상당액은 급증하겠지만, 그렇다고 예보의 부채가 그에 따라 동일하게 증가하지 않는다.

물론 혹자는 소액 외화 예금의 경우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 동일한 외화 예금의 원화 상당액이 증가하고, 이때 그 수준이 5000만원 이하이면 예보의 부채가 일대일로 환율 변동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맞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예금자의 외화 예금 잔액이 1000달러라고 해보자.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이면 원화 상당액은 100만원이고, 전액 보장 대상이다. 이제 환율이 급등해 1달러당 2000원이 됐다고 해보자. 이 경우 이 외화 예금의 원화 상당액은 200만원이 되는데 이 역시 5000만원에 미달하므로 전액 보장 대상이다. 이 경우 예보의 채무는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환율 상승률과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게 된다. 즉 예보가 환위험에 노출된다.

물론 현실은 이와 조금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예보의 보장 한도는 ‘특정 예금자가 당해 금융기관에 보유 중인 모든 부보 예금등의 합계액’이기 때문이다. 즉 위 예금자가 원화 표시 예금으로 5000만원을 별도로 보유 중이라면 외화 예금의 존재나 환율의 등락은 예보의 채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소위 주거래 은행은 고객에게 우대 환율을 적용해주는 경우가 많아 외화 예금 보유자는 동일한 주거래 은행에 별도의 원화 예금을 함께 보유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어떤 예금자가 소액 외화 예금의 예치 금융기관을 지금까지 전혀 거래 관계가 없던 금융기관으로 정하면 위의 반례가 성립하게 된다. 그럼 예보는 환위험에 노출된다.

그렇다면 예보가 달러화 자산을 편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금보험료를 원화로 받지 않고 외화 예금에 대해서는 당해 예금의 표시 통화(달러화 또는 엔화 또는 유로화 등)로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금보험료율을 예금 잔액의 1만분의 8이라고 가정하면 1만달러의 외화 예금 잔액에 대해서는 8달러를 징수하고 2만유로의 외화 예금 잔액에 대해서는 16유로를 보험료로 징수하면 된다. 이때 은행은 이미 외화로 예금 대금을 수령했으므로 그중 일부를 예금보험료로 납부하는 데 외화 유동성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예보 역시 이런 방식으로 외화 자산을 축적하게 되면 외화 예금 잔액 및 그 표시 통화와 정확하게 매치되기 때문에(예금보험료율이 정확하게 산정된 것이기만 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예보 속내 국정감사 통해 명확히 밝혀야

그럼 예보는 왜 이렇게 하지 않고 임의로 달러화 자산을 매입하겠다는 것인가? 도대체 외화 표시 예금에 대한 보험료는 원화로 걷는가, 아니면 해당 통화로 걷는가? 놀랍게도 정답은 ‘한 푼도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권별 예금보험료율은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의 [별표 1]에 규정돼 있다(은행에 적용되는 1만분의 8이라는 비율은 이 별표의 제1호에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 별표의 각주 2를 보면 “은행이 조달한 금전 중 외국환거래법에 따른 외국 통화로 표시된 예금의 경우에는 위 표 제1호에 따른 비율을 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즉 보험료율이 0인 것이다.

결국 예보는 외화 예금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외화 예금에 대해 해당 표시 통화로 예금보험료를 걷는 것은 포기하고, 그 대신 원화 예금에 기대 걷은 보험료 수입을 재원으로 달러화 투자를 하고 있고, 이걸 향후 10%까지 늘리고 싶다는 것이다.

예보가 이런 일을 벌이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고, 여러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모피아들이 자신들의 과거 논리를 번복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금융안정 계정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저물어 가는 이번 정권이 미국 국채를 던지고 있는 중국 앞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한다는 제스처로 미 국채를 매입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미국에 들키지 않고 한국은행 대신 외환 조작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채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착각일 수도 있다. 그 속내가 무엇인지는 정권이 바뀐 후 국정감사를 통해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외화예금에 대한 예금보험료와 관련해 예금보험공사는 26일 “예보법 시행령에 따라 2009년 7월 1일부터 외화예금에 대해 원화예금과 동일한 0.08%의 보험료율을 적용하여 원화로 예금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며 “기고문에서 인용한 예보법 시행령 별표1의 각주2는 2009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전성인(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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