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중의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 속속 석방
지난 5월 9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체포·구금 적법성을 따지는 뉴저지주 연방법원에서 미국 법무부 측 변호인단은 7개의 법 적용 사례를 제출했다. 컬럼비아대 졸업생 마흐무드 칼릴에게 적용한 이민국적법 조항의 선례를 내라는 법원 명령에 따른 결과였다. 미국 국무장관에게 ‘잠재적으로 심각한 외교적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외국인’을 추방할 수 있게 한 해당 조항은 1990년 법 개정으로 추가된 후 거의 쓰이지 않았으며, 자의적 집행 또는 남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비판받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민자 추방 정책이 어떤 법적 합리성에 기반했는지 가늠할 실마리였기에 칼릴의 변호인뿐만 아니라 미국 내 이주민 인권을 위해 싸워온 이들 모두 정부가 내놓을 선례에 주목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7개 사례 중 하나는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의 매부 무함마드 자말 칼리파였다. 요르단 폭탄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칼리파는 1995년 미국에서 체포돼 사우디아라비아로 추방됐다. 이외의 사례는 아이디 준군사조직 지도자(1995년), 10건의 테러 사건에 연루된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수장(1997년), 소말리아에서 폭력적 정치 활동에 가담한 아프리카인(2004년), 돈세탁 등 부패 혐의를 받았던 마리오 루이스 마시우 전 멕시코 법무차관(1995년)이었다.
나머지 두 사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법무부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결정한 ‘모흐센 마흐다위 사건’과 ‘뤼메이사 외즈튀르크 사건’을 들었다. 컬럼비아대 학생인 마흐다위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조직했고, 4월 14일 구금됐다. 터프츠대 대학원생인 외즈튀르크는 대학 신문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지난 3월 25일 구금됐다. 컬럼비아대 대학원생인 칼릴 역시 가자지구 반전 시위에 앞장서다 지난 3월 9일 이민당국에 체포돼 지금껏 갇혀 있다.
150명 이상의 법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이민국적법 개정 후 있었던 약 1170만건의 추방 사건 중 해당 조항을 적용한 사건은 15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법정 의견서는 칼릴 등의 재판에 제출됐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매체 더 인터셉트는 “정부가 제출한 과거 사례만 봐도, 해당 법 조항을 칼릴에게 적용하는 것은 전례 없는 남용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무차별 추방, 번번이 제동
“칼럼 잘못 쓰면 잡혀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트럼프 행정부는 강도 높은 이민자 추방 정책을 펼쳤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다. 쫓겨난 이도, 풀려난 이도 모두 트럼프 행정부 이민 행정의 부당성을 다투며 싸우는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선례로 든 외즈튀르크는 구금 45일 만에 풀려났다. 마흐다위도 16일 만에 석방됐다. 지난 3월 체포된 조지타운대 연구원 바다르 칸 수리도 58일 만에 돌아왔다. 재판은 각기 다른 곳에서 열렸지만, 재판부가 밝힌 석방 이유는 비슷했다. 외즈튀르크 사건의 판사는 “칼럼 외에 정부가 제출한 증거는 없다”며 “(외즈토튀르크 구금이) 수백만명 비시민권자의 발언을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마흐다위 사건의 판사는 “피고는 지역사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공중의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라며 “발언을 차단하려는 정부의 의도로 유발된 위축 효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리 사건의 판사는 “피고의 발언 중 미국에 위협이 되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라며 수리의 구금 중단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미칠 “위축 효과”를 막는 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구잡이식’ 추방이 빚어낸 파열음은 이뿐만이 아니다. 컬럼비아대 학생인 한인 영주권자 정윤서씨의 변호인들은 이민당국이 정씨를 체포하려 허위의 혐의를 적은 영장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영장이 없어 정씨에게 접근할 수 없었던 ICE가 법원에 “컬럼비아대가 불법체류자를 은닉한 혐의가 있다”며 제출한 신청서로 영장을 발급받아 기숙사 등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컬럼비아대 관계자는 영국 가디언에 “법원 영장이나 소환장이 요구될 경우, 대학은 이를 준수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지구 반전 시위에 참여한 정씨를 구금하고 영주권을 박탈·추방하려 했지만, 법원이 이를 멈춰세웠다.
뉴욕경찰(NYPD)은 팔레스타인 출신 유학생 레카 코르디아의 체포 기록이 국토안보부로 넘어간 경위에 대해 수사 중이다. 뉴욕은 ‘피난처 법’에 따라 연방 정부 이민행정에 응하지 않는 대표적 도시로, 형사 사건 등 특정 범죄를 제외하고는 정보 공유·협조 등이 금지돼 있다. 제시카 티시 NYPD 국장은 연방 정부가 ‘자금 세탁 관련 수사’를 거론하며 관련 자료를 요청했고, “내부 조사와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코르디아의 변호인은 “(자금 세탁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법정에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싸움은 계속된다
탄압에 못 이겨 자진 귀국을 택한 이들도 있다. 인도 국적의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생 라자니 스리니바산은 국무부가 학생 비자를 취소하고, ICE 요원들이 기숙사를 찾아오는 일이 반복되자 캐나다로 떠났다. 크리스티 노엠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 3월 14일 스리니바산이 공항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엑스(X)에 올리며 “테러리스트 동조자 중 한 명이 ‘자진 추방’하는 것을 보니 반갑다”라고 적었다. 이란 출신 앨라배마대 박사과정생 알리레자 도루디는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다”며 귀국을 택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코넬대 대학원생 모모두 탈도 같은 선택을 내렸다. 스리니바산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정치적 발언이나, 모두가 하는 SNS에서의 외침조차 누군가는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생명과 안전을 걱정케 하는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게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칼릴의 아내 누르 압달라는 지난 5월 18일 컬럼비아대 졸업을 앞둔 남편을 대신해 뉴욕에 있는 팔레스타인 인민대학의 대체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았다. 남편이 구금 중이던 4월에 태어난 아들 딘도 함께했다. 딘을 품에 안은 압달라는 “지식과 정의, 진실을 추구했던 컬럼비아대는 연대 대신 침묵을 택했다”며 “기관은 버릴지 몰라도 사람들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일깨우셨다. 감사하다”고 했다. 이틀 뒤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진짜’ 졸업식에서는 “마흐무드를 석방하라”는 외침과 클레어 시프먼 컬럼비아대 총장 직무대행을 향한 야유가 쏟아졌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