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쿠팡의 질주가 드리운 그늘

2025.05.26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차량이 주차돼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차량이 주차돼 있다. 권도현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5월에 공개하는 ‘대기업 집단 현황’을 보면 기업들의 매출액 순위를 알 수 있다. 비금융보험사로 한정하면 최근 5년간 매출액 상위 5대 그룹이 바뀐 적은 없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SK, LG, 포스코로 이어지는 순위도 그대로다. 새로운 기업의 출현이 없었다는 점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만 10대 그룹으로 넓히면 한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20년만 하더라도 매출액이 15조2000억원이었던 쿠팡은 지난해에는 48조2000억원으로 뛰었다. 5년 만에 매출액이 217.3% 성장하며 매출액 순위도 16위에서 10위로 올랐다.

같은 기간 ‘유통 맞수’인 신세계그룹 매출액이 20.5% 증가한 것에 비하면 10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쿠팡은 이미 2023년에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을 거느린 신세계그룹을 앞지르면서 유통기업 가운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쿠팡은 올해 1분기에도 역대 최대 매출인 11조5000억원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그동안 저조했던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쿠팡의 영업이익은 6023억원에 그쳤지만, 올해 1분기에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40% 넘게 뛴 233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연간 ‘1조원 영업이익’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5년 만에 매출액 200% 넘는 성장

더 눈에 띄는 것은 매출원가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매출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입된 비용인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이 비율이 낮을수록 수익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쿠팡 감사보고서를 보면 2020년에 83.3%였던 매출원가율이 2024년에는 70.2%로 낮아졌다. 매출액 중 인건비나 물류비 등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10%포인트 넘게 줄어든 셈이다.

매출원가율을 낮추는 요인은 물류 효율 개선도 있지만, 납품업체로부터 물건을 싸게 사는 방법도 있다. 쿠팡은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사업을 한다. ①다른 업체와 함께 자체 상품을 직접 만들거나 ②다른 제조업체로부터 물건을 직접 매입해 배송한다. ③다른 업체의 물건을 팔지만 직접 매입하지 않고 수수료 계약만 맺는 방식도 있다. 이 경우에는 쿠팡이 재고 부담을 떠안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④일반 오픈마켓처럼 업체가 직접 배송하고 쿠팡은 수수료만 가져가는 형태도 있다. 다만 쿠팡의 매출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점을 보면 다른 업체와의 가격 협상을 통해 매출원가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6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쿠팡이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체 상표(PB) 상품 등의 검색 순위를 끌어올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쿠팡은 “사업상 필요에 따라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유통업의 본질”이라며 이에 반발했다. 연합뉴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6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쿠팡이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체 상표(PB) 상품 등의 검색 순위를 끌어올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쿠팡은 “사업상 필요에 따라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유통업의 본질”이라며 이에 반발했다. 연합뉴스

쿠팡의 비약적인 성장은 경쟁 당국인 공정위에도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해 말 펴낸 ‘이커머스 시장연구’라는 정책 보고서를 보면 쿠팡에 대한 우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정위는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은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며 산업 전반에 걸친 혁신을 촉진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서도 “규모의 경제를 갖춘 소수 상위기업이 살아남는 시장 전반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커머스가 다른 시장에 비해 소수의 기업이 독주할 수 있는 여지가 큰 시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으로의 시장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결제금액 기준, 쿠팡과 네이버의 월평균 순결제금액 합계는 2018년 2조~2조5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에는 8조~9조원 수준으로 6년 만에 4~5배쯤 늘었다. 순결제금액은 결제 취소로 환불되는 금액을 제외한 결제 금액이다.

반면 2018년 4조~5조원 수준이던 11번가와 옥션, SSG 등 상위 3~10위 사업자의 월평균 순결제금액 합계는 비슷하거나 감소 추세에 있다. 월평균 총결제 횟수도 쿠팡의 경우 큰폭으로 늘어나면서 영업이익은 개선됐지만, 대다수 이커머스 기업은 총결제 횟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계속 머물면서 영업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시장 쏠림 현상’ 뚜렷···기울어지는 운동장

이 같은 쏠림 현상은 자연스러운 경쟁의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자칫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출을 방해하거나 불공정 거래행위를 유도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실제 온라인 쇼핑몰 업체가 ‘최혜 대우 조항’을 요구하는 사례는 빈번했다. 최혜 대우 조항은 온라인 쇼핑몰은 최저가 보장제를 시행하면서 판매자에 대해 타 쇼핑몰을 통해 판매하는 것보다 자신의 쇼핑몰에서보다 낮거나, 최소한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어길 시 일정한 패널티를 부여하기도 한다. 공정위 판매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판매자의 39.4%(297개 사업자 중 117개)는 최저가 보상제에 따른 가격 인하 요구 등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입점 업체로서는 시장점유율이 높은 온라인 쇼핑몰의 눈치를 상대적으로 더 볼 수밖에 없어 온라인 쇼핑몰 간의 가격 경쟁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곳에 싸게 팔아야 하는 만큼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도 막을 수 있다. 최저가 보장제로 인해 타 온라인 쇼핑몰의 입점 또는 할인행사 참여가 어렵다고 응답한 판매자 비율은 92.3%에 달했다.

‘최혜 대우 조항’ 덕분에 쿠팡의 지위는 더 공고해졌지만 제재는 쉽지 않다. 공정위는 2021년 경쟁 온라인몰의 판매가격을 올리라고 납품업자를 압박한 쿠팡에 3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서울고법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거래 당사자 사이에 거래 조건에 관해 요청·교섭·협의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쿠팡 손을 들어줬다. 또 LG생활건강, 유한킴벌리, 매일유업 등 8개 대기업 납품업체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없다고 한 쿠팡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알고리즘을 설계할 때 인위적으로 경쟁사를 배제하거나 자사 우대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도 공정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쿠팡처럼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알고리즘 조정을 통해 이들 상품을 우선 노출할 수 있다. 앞서 쿠팡은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체 상표(PB) 상품의 검색 순위를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16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그러나 쿠팡 측은 “유통업자가 자기 쇼핑몰 내에서 사업상 필요에 따라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유통업의 본질”이라며 항소했다.

새로운 규제 도입도 쉽지 않다. 공정위는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신속한 제재를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에 나섰지만, 시장점유율 등 규제 대상 기업에 대한 조건이 높아지면서 쿠팡은 대상에서 빠졌다. 쿠팡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 깔린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그 부담은 종국적으로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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