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무슨 소용이람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2025.05.12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지난 4월 11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이재명 후보의 비전발표회. 한 기자가 이 후보에게 “응원봉을 들고 광장을 주도했던 2030 여성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2030 여성 유권자를 위한 비전은 어떻게 구성하고 있느냐”라고 묻자 이 후보는 “빛의 혁명은 모든 국민이 함께했다. 국민이라는 거대 공동체 모두의 성과”라고 답했다. 탄핵이 국민 모두의 성과라는 이 후보의 답변은 옳다. 그러나 이 답은 2030 여성이라는 질문의 강조점을 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오히려 질문의 주어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말하기가 난해하고 부자연스럽다는 점에서 답변의 요지는 젊은 여성의 활약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현으로 읽힌다.

며칠 뒤 같은 당 김동연 후보가 이를 비판했다. 김 후보는 “민주당이 빛의 혁명에 참여한 2030 여성들의 호명조차 꺼리고 있는 상황은 반성해야 할 일”이라며 “비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질문에는 “법으로까지 가는 것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차별금지법을) 생산적으로 토론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말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이재명 후보의 비겁함을 비판할 정도까지는 성숙했으나 아직 모든 사람에게 존엄할 권리를 보장할 만큼은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본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 시민들의 수준을 제멋대로 키 맞춤 해놓은 김 후보는 상대 후보보다 얼마나 덜 비겁했을까.

시민들은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엄청난 혁명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별을 따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눈을 똑바로 뜨고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일본 가수 가토 도키코는 “혁명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태도를 취한다고 할 수 있다. 탄핵 광장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2030 여성들과 다양한 정체성의 소수자들이 사회개혁 의제를 주도하며 정치적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통신사 중계기에 잡힌 통계에 따르면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앞에 모였던 42만명 중 3분의 1이 2030 여성이었다. 이들은 탄핵 정국 내내 곳곳의 소외된 농성 현장에 후원금과 후원 물품을 보내며 광장의 에너지를 주도했다. 그것은 탄핵이라는 정치 상황에 대한 요구에 그치지 않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정 요구였다. 정치권은 탄핵의 성과를 빛의 혁명이라고 공치사하면서도 정작 혁명의 ‘내용’에 관해서는 눈을 감는다. 시민의 요구를 정권 교체라는 사소한 요구로 바꿔치기해 집권의 도구로만 활용하려 든다.

시민들은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엄청난 혁명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별을 따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눈을 똑바로 뜨고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저 사람들은 자꾸만 시민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성숙한 사람의 시야에는 성숙한 세계가 보이지 않으니까. 도대체 본인들은 언제쯤 성숙할 생각인가.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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