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괴랄’함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것이 최선이다. 보통의 심령 공포영화처럼 전개되다가 절반 이후 코미디 활극으로 선회하는데, 이 부분이 ‘괴랄’함의 발생 지점이자 사실상 전부라 할 수 있다.
제목: 사유리(サユリ)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08분
장르: 공포, 코미디
감독: 시라이시 코지
출연: 미나미데 료카, 네기시 토시에, 콘도 하나, 카지와라 젠
개봉: 2025년 4월 1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최근 일본 영화의 동향을 바라보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양질의 다양한 상업영화가 쏟아져 나왔던 때를 반추하는 목소리를 종종 접하곤 한다.
때마침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됐던 당시 일본의 상업영화는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효율적인 제작 시도를 통해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흥행작을 선보였다.
<큐어>, <링>, <오디션>, <착신아리> 등으로 대표되는 공포 장르는 물론 <쉘 위 댄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춤추는 대수사선>, <스윙 걸즈> 같은 코미디 장르까지 흥행뿐 아니라 완성도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연이어 쏟아냈다.
이와 비교해 현재의 일본 영화는 거대한 수익을 기록하는 몇몇 유명 애니메이션 유(類)가 아니면, 흥행과 별개로 해외 영화제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소위 아트하우스 영화로 분류되는 저예산 예술영화 유로 양분돼 특화돼가는 분위기가 짙어진 지 오래다.
코로나19 이후 과거의 호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 영화시장의 침체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애초 특별한 취향이나 관심을 담보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다양한 영화 보기에 열려 있는 관객들에게나 소구되는 아트하우스 영화들이란 보통 관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최신 일본 흥행작 한국에 상륙?
이렇다 보니 <사유리>에 대한 평가와 홍보 포인트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2024년 8월 23일 일본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며 제작비의 7배 이익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32개국에 수출된 이 영화는 지난해 7월 제28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첫선을 보였는데, 공개 이후 영화가 지닌 ‘엉뚱한 재미’를 언급하는 나름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나 보다.
이에 고무된 이유인지 홍보사는 “J-호러의 대각성! 최강 괴랄 호러 탄생”이라는 저돌적 카피를 내세우고 정력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사용되는 ‘괴랄’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어떤 현상이 괴상함을 느낄 정도로 지나치다’란 뜻이라 설명하고 있다. 보통의 ‘기괴하다’나 ‘해괴하다’를 어감상 장난스럽게 희화화한 최상급 표현 정도의 인터넷 유행어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문제는 이 영화의 ‘괴랄’함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애초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심령 공포영화처럼 진행되던 전개가 절반을 넘어서며 이상한 코미디 활극으로 선회하는데, 이 부분이 ‘괴랄’함의 발생 지점이자 사실상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의 미덕을 부각한 홍보가 본의 아니게 그나마 일말의 재미마저 방해하게 된 형국이니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공포영화 전문 감독의 심기일전
시라이시 코지 감독은 1973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첫 비디오 영화를 만든 이후 꾸준히 영화 동아리와 제작 현장을 오가며 연출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공식 데뷔작인 <주령: 흑주령>(2004)은 비디오용으로 제작된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극장판 장편이었는데, 한 해 앞서 공개돼 화제를 모은 <주온>의 아류작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연출한 유사한 TV용 괴담 시리즈나 페이크 다큐멘터리들 역시 제목이나 기획부터 기존 유명작품들의 모방작이란 혐의를 벗기 힘들어 보인다.
그나마 <나고야 살인사건>이나 <사다코 대 카야코>, <불능범> 같은 작품은 비교적 중급 이상의 규모로 만들어져 국제적으로 그의 존재를 알린 그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1년에 3~4편씩 공포물만을 만들어왔다는 점에서는 한 우물만 판 연출가로서의 지구력과 열정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이번 작품 <사유리>는 만화가 오시키리 렌스케의 동명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모처럼 독창성을 확보했다. 시라이시 코지 감독과 오시키리 렌스케 작가는 한국 개봉에 발맞춰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내한해 무대 인사를 포함한 홍보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한 편의 발칙한 공포 코미디 신작
1990년대 이후 중화권 영화들 역시 힘을 잃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컴퓨터그래픽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본토의 상업 작품들은 어느 정도 시장을 키웠지만, 그 밖의 지역들은 여전히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홍콩과 대만은 꾸준히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 전성기의 영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 3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에 공개된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鬼才之道·Dead Talents Society·사진)는 작년 8월에 본국에서 개봉한 대만산 공포 코미디 영화다. 제목부터 그 유명한 <죽은 시인의 사회>를 패러디한 작정한 코미디인데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다양한 귀신 군상이 ‘잊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벌어지는 천태만상을 유쾌하고 애잔하게(?) 그려낸다.
동남아 일대에서는 오랫동안 혼령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만들어지고 있다. 감독 쉬한창(徐漢強)은 이런 시장성을 겨냥해 경쾌하고 코믹한 공포물을 기획했고, 2년에 걸쳐 20개가 넘는 각색 버전을 거쳐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는 익숙한 소재와 전개를 답습하지만 진백림, 장용용, 왕정 등 현재 대만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호감 가는 인물들과 빠른 전개로 지루할 틈이 없고, 고인을 대하는 대만 전통의 제사 형태나 관습 등을 적절히 반영한 코믹한 장면들이 의외의 신선한 웃음을 유발한다.
제작 발표 당시 ‘소니 픽처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이 전 세계 배급권을 조건으로 제작 예산의 절반 이상을 투자한 것도 화제가 됐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시체스 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다수 출품됐고, 대만 개봉 첫날에만 350만대만달러(TWD) 수익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