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묻는 성별

2025.04.14

이혜리 기자

이혜리 기자

취재할 때 사람의 성별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배웠다. 기사에는 으레 성별이 기재됐다. 예전엔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 중 여성에만 성별을 표기했다고 한다. 남성은 ‘김모씨(28)’로 쓰지만, 여성은 ‘김모씨(28·여)’라고 쓰는 것이다. 여직원, 여판사, 여의사 식으로 직업 앞에 ‘여’를 붙이기도 했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여성을 특별한 사례로 보는 성차별적 인식이 언론에 있었다.

이런 성별 표기법은 많이 사라졌는데,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 속에서 성별 표기는 오히려 필요한 때가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가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임을 드러낼 때가 대표적이다. 미투 운동, n번방 텔레그램 사건, 딥페이크 사건 등 때마다 피해를 고발하고 문제를 제기한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은 사회현상에 대한 중요한 정보였다. 성소수자는 주변적으로 다뤄졌다. 남성에 대항하는 성별 주체로서의 여성이 강조된 것도 있지만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둘뿐이라는 이분법적 관점도 있었다.

성별 표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12·3 비상계엄 이후 나타난 ‘말벌 동지’들을 취재하면서다. 언론은 탄핵 촉구 집회를 ‘2030 여성’이 주도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광장에 여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성으로 단정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지개 깃발을 들고, 무지개 머리띠를 매고, 무대에 올라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밝혔다. 기자가 인터뷰한 16명의 말벌 동지 중에도 퀴어가 여럿 있었다. “기사에 성별을 뭐라고 기재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몇 명은 성별 표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성별 자체보다는 활동 내용에 더 주목해 달라는 취지였다.

한화 건물 앞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무지개 조선소에 모인 말벌 동지들은 모형 배인 연대투쟁호를 만들면서 ‘평등수칙’을 적용했다.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한다는 규칙을 만들고 시행한 것이다. 성별을 몰라도 광장에서 만난 말벌 동지들은 누구보다 깊은 연대감을 쌓고 있었다. 한 말벌 동지는 “어떤 사람을 볼 때 꼭 이름, 나이, 성별 같은 호구조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광장에서 만난 동지들하고는 그런 것 없이 같은 뜻으로 모였기 때문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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