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사법 쿠데타, 부정선거론…형제국가 터키와 한국의 닮은꼴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2025.04.14

지난 3월 29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의 체포에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몰려든 튀르키예 시민들 / 공화인민당(CHP)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3월 29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의 체포에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몰려든 튀르키예 시민들 / 공화인민당(CHP) 페이스북 페이지

튀르키예 최대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2028년 대통령 후보 선출일을 나흘 앞둔 지난 3월 19일, 검찰은 단독 후보였던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을 부패와 테러 지원 혐의로 구금했다. 국내총생산(GDP) 40%를 차지하는 인구 1600만명의 초거대 도시의 시장이자, 지지율 1위의 야당 대선후보의 갑작스러운 구금 소식에 튀르키예 금융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종합주가지수 급락에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고,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이날 최종 주가지수는 8.72% 하락했다. 튀르키예 리라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14.5% 폭락했다. 외환당국은 80억달러(약 11조7000억원)를 투입해 외환 방어를 했지만, 속절없이 무너지는 환율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채시장 역시 튀르키예 정치 불안정을 우려한 외국 투자자들이 대거 매도하면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하루 만에 1.39% 치솟았다. 튀르키예 언론 ‘피에이 튀르키예’는 영국 외환전문거래기업 ‘모넥스 유럽’의 “이마모을루의 구금은 시스템에 대한 충격이며 튀르키예 국가 리스크가 급등했다”는 의견을 인용 보도했다. 정치 불안정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은 이마모을루에 대한 범죄 혐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강력한 야당 대선후보에 대한 비상식적인 일은 전날 3월 18일에도 벌어졌다. 이마모을루의 모교인 이스탄불대학 이사회가 30여 년 전 이마모을루가 학위를 취득하는 데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며 학위를 취소해버린 것이다. 튀르키예 헌법 제101조에 따라 대통령 후보자는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는 대학 졸업을 뜻한다. 대학 졸업장이 취소된 이마모을루는 대통령 출마가 위태로워진 것이다. 이마모을루 측은 부정행위에 대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이스탄불대학 이사회를 상대로 결정 불복 소송을 진행 중이다.

23년째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

이마모을루가 구금되자 시민들은 이스탄불 경찰청에 속속 모여들었다. 수백명이던 시위대는 대학으로 확산해 시간이 지날수록 수십만명으로 늘어났다. 경찰은 시위 진압을 위해 고무총으로 무장하고 물대포를 설치했다. 4일간 시민 1133명이 체포되고, 사진기자 10명이 구금됐다. BBC 특파원은 구금된 이후 강제 추방까지 당했다. 튀르키예 정부의 언론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튀르키예 방송통신위원회는 정치인·언론인들의 X(옛 트위터) 계정 700개를 폐쇄했다. 게다가 이마모을루 체포와 관련해 정부를 비난하고, 시위 현장을 중계한 TV 방송과 언론사에 막중한 벌금을 부과하고 방송 중지를 명령했다. 야당에 편파적인 방송이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고 대중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CHP의 대통령 후보 선출 일인 지난 3월 23일 검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금 상태였던 이마모을루를 구속·수감했다. 터키 내무부는 이마모을루가 테러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시장직에서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전국에서 수백만명이 정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AP 통신은 튀르키예 전체 81개 주 중 75%에 해당하는 55개 주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공화인민당은 이마모을루가 구금당한 사실을 전국에 알리고, 국민 여론을 끌어 올리기 위해 81개 주 전역에 5600개 투표함을 설치했다.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적용해 당원 이외에도 일반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공화인민당에 따르면 1500만명이 투표에 참여해 이마모을루를 대통령 후보로 최종 선출했다.

지지율 49.0%로 현직 대통령 압도

23년째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야당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이마모을루는 올해 55세로 튀르키예 정치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다. 43세까지 기업인으로 활동하다 2014년 이스탄불의 지역 구청장으로 정계에 입문해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로 불리는 이스탄불 시장으로 당선되는 대이변을 만들어냈다. 선거 과정 자체도 드라마틱했다. 이마모을루는 2019년 3월 여당이 25년 동안 빼앗긴 적이 없는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득표율 0.3%포인트(1만3729표) 차이로 승리했다. 전직 총리를 후보로 내세우고 공권력과 언론을 총동원해 선거에 임했던 집권당은 겨우 0.3%포인트 차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검표를 요구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에르도안 정부의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튀르키예 최고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소 감시원 자격요건 위반 사례를 이유로 선거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실시했다. 하지만 재선거 결과는 84% 투표율에 이마모을루의 78만여표 차이 대승. 에르도안 정부가 억지로 시행한 재선거 결과는 새로운 야당 지도자를 탄생시키고 에르도안 대통령 몰락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에르도안 정권은 이마모을루를 주저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이마모을루가 2019년 시장 선거를 무효화한 사람들을 ‘멍청이’이라고 공개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아 ‘공직자 모욕’ 혐의로 기소했다. 대통령선거를 5개월여 앞둔 2022년 12월 1심 법원은 징역 2년 7개월을 선고했다. 사법리스크 때문에 2023년 5월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이마모을루가 후보로 나서지 못하게 하기 위한 사법부의 정치 개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 국무부도 “부당한 선고 결과는 기본적인 자유, 법치주의와 관련된 인권 존중과 어긋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권을 포기한 이마모을루는 2023년 3월 이스탄불시장 선거에서 100만표 차 대승을 거두며 야권의 확실한 차기 대선후보로 인식됐다. 2024년 10월 튀르키예 여론조사기관 메트로 폴이 실시한 지지도 조사에서 49.0% 지지를 확보해 현직 대통령인 에르도안의 30.6%를 압도했다.

의원내각제 시절 총리부터 현재까지 23년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에르도안은 개헌을 통해 영구 집권을 노리고 있다. 에르도안은 의원내각제 시절인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를 역임한 후 2014년 대통령에 선출됐다. 2017년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필요하다며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로 전환해 2018년, 2023년 연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헌법에 따라 직선 대통령으로서 재선 임기를 끝으로 2028년에는 대통령에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최근 여당에서 또다시 개헌론을 꺼내 들고 3연임을 노리고 있다. 야당이 2028년 대통령 후보를 일찍 선출하는 이유는 에르도안이 개헌을 명분으로 조기 대선을 치를 수 있는 만큼 사전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 의혹 제기’, ‘방송통신위원회의 억지 논리 언론 탄압’, ‘부당한 법 적용으로 야당 지도자에 사법리스크 씌우기’ 등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와 한국이 서로 함께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공유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2025년 4월 4일, 한국 헌법재판소는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고 권력에 대한 법의 심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정의로움이 곧바로 튀르키예에도 공유되기를 희망한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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