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국가부채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2025.04.14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부채는 기업에 대한 과세의 문제와 함께 재정정책 분야에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주제다. 우리는 국가부채를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관성적으로 한 방향에 고정된 시각에 의존한 정책은 국민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국가부채와 관련해 자명한 것은 우선 부채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문제라는 것이다. 재정지출에서 이자 부담이 커져 재정 운영이 어려워진다. 다른 한편 낮은 국가부채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억제하면 총수요의 부족으로 생산적 자원의 가동률이 낮아져 성장잠재력을 충분하게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적정한 국가부채비율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재정지출이라는 거시경제적 정책수단의 잠재력을 충분하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라 여건 따라 적정 국가부채비율 달라

어려운 점은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적정한 국가부채비율의 수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라들의 경제 여건에 따라 다르다. 또 국가부채가 발행국 국내에서 얼마나 소화되느냐 하는 것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부채가 발행국 국내에서 대체로 판매돼 정부의 국채에 대한 이자 지불이 내국인의 소득이 되는 나라와 미국과 같이 국가부채가 다른 나라에서 많이 판매돼 이자 지불액이 이전소득으로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나라의 국가부채비율을 같이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미국의 국가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가운데 미국 국가재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감세 기조는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목표와 상충한다. 달러 체제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나라가 달러의 대안을 찾고 있다. 최근 급등한 금 가격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국가부채는 약 130%다. 일본이 미국의 두 배 수준으로 G7 국가 중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일본은 문제가 없다. 왜 그런가? 국가부채가 그 나라의 거시경제 순환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가 중요하다. 일본 국민의 낮은 소비성향과 높은 저축성향은 총수요의 심한 부족 현상을 야기하는데 국가가 국민의 돈을 빌려서 사용함으로써 총수요의 부족함을 메우는 거시경제적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은 소비성향이 높고 저축성향이 극단적으로 낮은 나라임에도 국가가 부채를 통해 정부지출을 늘렸다. 거시경제적 균형점에서 더 멀어지는 것이다.

독일의 사례는 미국과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선거로 기독민주당(기민당)과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연정 형태로 새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기민당은 당초 총선에서의 공약과 달리 사회인프라 투자와 군비 확대를 위한 재정지출 대폭 확대, 그리고 이에 대한 헌법의 부채 브레이크 조항에 예외를 두는 것에 사민당과 합의하고 이를 의회에서 관철했다. 국가부채율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 예견되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성장률 전망은 0% 근처에서 2% 수준으로 바로 증가하고, 주식시장에서 자금의 흐름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쏠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 재정지출의 증가와 이로 인한 국가부채율의 상향 조정은 오히려 중장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높여줬다. 건전재정을 중시하면서 필요한 재정지출을 억제하던 이전 독일 정부의 메르켈 수상과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재정정책이 독일경제에 불리했음이 드러났다.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경제 규모 키워야

우리나라의 현재 국가부채비율이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선 대체로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고령화로 인해 미래의 의무적인 재정지출 증가요인이 크니 지금부터 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재정지출의 확대는 미래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일이므로 가능한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사회보험의 재정과 일반정부의 재정을 섞어서 판단하면 곤란하다. 연금 및 건강보험 분야로 크게 구성되는 사회보험재정에서는 미래에 고령화로 인한 재정지출 증가 요인이 크다는 것은 맞지만, 일반정부의 재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부가 추계하는 장기재정전망에서도 일반정부의 재정은 미래시기의 재정지출 증가 요인이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오히려 현재 시점에서 정부가 충분한 역할을 수행해 재정지출을 통해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살려주는 것이 미래의 사회보험재정에는 더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일반정부의 재정에서는 어느 정도의 국가부채율 증가를 감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시경제학에서는 통상적으로 이자율 수준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경우 국가부채로 조달되는 정부지출은 지속 가능하다고 본다. 즉 낮은 이자율로 국가부채가 조달되므로 이보다 높은 비율로 경제가 성장하는 경우 정부지출로 유도되는 추가적 경제성장은 조세수입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 지불도 상당 부분 커버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경우 국가부채를 통한 정부 활동은 중단돼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장기적인 산업정책적 시각은 국가부채를 통한 정부투자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장기적인 산업정책적 시각은 국가부채로 조달되는 정부지출이 사회인프라 투자를 늘려서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운다고 본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인프라 투자가 요구되는 경우, 현재의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이자율에 의해 조달된 국가부채를 통해서라도 투자는 이뤄져야 하며, 이러한 사회인프라 투자는 미래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여서 국민경제에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경제는 인구구조, 산업 및 기술체계, 그리고 경제사회구조의 전환이라는 중첩적인 변화의 과정에 있다. 미국의 거대 인터넷기업들과 국가자본이 뒤를 받쳐주는 중국기업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대·중·소 기업과 정부, 연구소의 협업적 플랫폼을 추구했다. 전 세계 국가가 추진하는 기후 친화적 에너지 수급체계의 구축은 거대한 정부투자가 필요하며, 이는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률에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전 세계 국가는 정부투자의 중요성을 깊이 인지하면서 큰 리스크를 수반하는 기술 및 에너지 전환, 디지털화 분야에서 정부가 맡아야 할 역할을 챙기고 있다.

재정 건전성이라는 관점에 매몰돼 소극적인 재정 운용으로 저성장을 고착화하기보다는 적극적 재정 운용으로 성장잠재력을 살려야 한다. 국민경제의 성장률이 높아지는 경우 그 누적된 효과는 크다. 0.5%포인트의 성장률 제고가 10년간 누적된다고 보면 10년 후 국민경제의 GDP는 성장률 제고 효과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경제와 비교할 때 5% 그 이상의 규모를 갖게 된다. 따라서 고령화 대비를 위해서라도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성장잠재력을 살려 경제 규모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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