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00일. ‘비상계엄’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를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불과 두 달(지난해 11월~올해 1월) 만에 자영업자 20만명이 폐업했고, 성장률 전망치는 1%대로 추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위축됐던 자영업 시장은 갑작스러운 계엄령으로 더욱 흔들렸다.
충격은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지수는 32위까지 하락했다. 해외 언론과 학계에서도 ‘한국이 쌓아온 민주주의적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때 ‘소프트파워 1위’로 평가받던 국가가 단숨에 외교 무대에서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스웨덴 총리의 정상회담 취소, ‘포브스’의 경고성 칼럼 등은 국제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급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적 갈등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계엄 이후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해 분노보다 역겨움을 느낀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는 계엄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깊이 분열시켰는지를 방증한다. 극단적 배제가 일상이 되면 대화의 가능성조차 사라진다. 탄핵심판 이후에도 이 갈등의 골이 쉽게 메워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모두 ‘비상계엄’이라는 반헌법적 정치 행위가 초래한 복합적 비용이다. 경제지표, 민주주의 위기, 국가위상 추락, 시민사회의 심리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렸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 불안 속에서 퇴행하는 주변국들의 사례를 보며, 한국 역시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커진다.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이 초래한 혼란과 그 후유증을 결국 국민 전체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뼈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계속된다.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한 순간에도 시민들은 회복을 위해, 각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추운 날씨 속에서도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모여 연대하고 있다. 늘 그랬듯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는 일은 다시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