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서화가 신명연(1808~1886)이 그린 꽃그림을 기념우표로 만나볼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3월 7일 신명연의 대표작품인 ‘화훼도 병풍’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총 10종의 기념우표에는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피어나는 꽃이 담겼다. 각 폭에 담긴 꽃의 종류도 다양하다. 1폭에는 매화와 동백, 2폭에는 수선화와 남천, 3폭에는 등꽃, 4폭에는 백목련, 5폭에는 양귀비와 자목련, 6폭에는 모란, 7폭에는 수국, 8폭에는 연꽃, 제9폭 황촉규(닥풀), 10폭에는 국화가 담겨 있다.
원본 병풍 그림의 여백에는 해당 꽃과 관련된 고전 시구와 청나라 시대의 백과사전인 <광군방보>를 인용한 문구가 정갈한 해서체로 쓰여 있다. 이를 통해 19세기 선비들이 화초와 원예에 깊은 관심을 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명연은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의 부친인 신위도 유명한 서화가다. 신위는 직접 중국 북경을 오가며 중국 화가들과 교류해 청대 화풍을 받아들였다. 신위는 그림에 유려한 문체의 시를 적어넣는 ‘시서화일치론’과 그림에 담긴 정신을 중시하는 사의적(寫意的) 화풍 등을 강조했는데, 신명연의 작품에도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했던 신명연은 13세 때부터 그림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배운 애들이 무슨 잘하는 것이 있길래 그림 그려 달라는 비단이 저리도 많이 와서 쌓이는고”(<신위전집>)라는 내용의 시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의 형인 신명준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서화가로 활동했다. 일종의 ‘화가 집안’이었던 셈이다.
다만 신명연의 사회적 직업은 따로 있었다. 그는 17세에 무과에 합격해 관직을 맡았다. 종6품 주부, 홍원 현감 등 무신으로 활동했다. 60대 이후에도 주요 지역의 부사를 지내면서 장수로 활동했다. 1872년에는 전라도 지방군대를 담당하는 정3품 당상직을 지냈다. 그는 1881년까지 경기 지역 등에서 근무했다.
신명연은 평생 관직에 있으면서 틈틈이 작품을 그렸다. 화훼화, 화조화, 산수화, 사군자, 인물화 등을 두루 남겼다. 세밀하고 사실적인 화풍이 그의 특징이다.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은 꽃과 새를 소재로 한 ‘화조화’다. 그가 남긴 114점의 작품 중 48점이 화조화다. 특히 매화를 많이 그렸다.
그가 아버지의 유산을 계승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나가려고 했다. 식물 백과사전을 뒤적여가며 꽃에 관한 지식을 쌓았다. 밖으로 나가 나비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쏟기도 했다. 그는 사대부 화가 윤정, 이건필 등과 교류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산수화훼화첩’, ‘화훼병풍’, ‘산수화첩’ 등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기념우표는 가까운 총괄우체국을 방문하거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서 구매할 수 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