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보수 민주당? 대선 패배 후 계속 ‘우클릭’했다

2025.03.17

종부세 등 과세정책 속절없이 후퇴 거듭…감세론 높아져

분배보다 성장 우선 움직임…진보적 가치 희석될 가능성

지난해 12월 10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해 12월 10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토보유세는) 무리했던 것 같다. 반발만 받고, 표는 떨어지고 별로 도움이 안 됐다.”

지난 2월 24일 경제·주식 유튜브 채널인 ‘삼프로 티브이(TV)’에 출연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국토보유세는 토지를 가진 사람에게 토지가격의 일정 비율만큼 세금을 물리는 것으로,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세수 확보 대책으로 국토보유세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이날 이 대표는 국토보유세는 물론 상속세 완화와 가상화폐 과세 연기, 1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의 불합리성 등 세금과 관련해 과거 행보에 비춰 상당히 유연한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크게 낮아진 다주택자 보유세를 두고 “부동산 세제는 더 이상 손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거나, 고가의 1주택 보유에 대해선 “돈 많은 사람이 비싼 집 살겠다는데 이상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등 앞선 문재인 정부의 과세 철학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달라졌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때와 달리)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는 책임이 커져서 생각이 바뀐 측면이 있다. 저의 위치가 바뀌었고, 인생을 살면서 더 배운 것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대표의 ‘우클릭’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중도층 끌어안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가짜 보수’, ‘보수 참칭’으로 이 대표를 공격하고, 당내와 진보진영에서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노선투쟁에 불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클릭이 과연 갑작스러운 것이었을까? 최근 이 대표의 중도보수 선언이 ‘결정적 장면’처럼 비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문재인의 민주당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넘어온 후 민주당의 정책 행보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노무현의 유산’에서 계륵이 된 종부세

2022년 3월 치러진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는 47.83%의 표를 얻었다. 겨우 0.7%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표차는 24만7077표에 불과했다. 마지막까지 높았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분석에, 후보의 개인 역량·자질 부족, 친문 세력의 소극적인 지원 등 여러 요인이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선 백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이를 흐지부지 덮었다.

반면 패배의 원인을 둘러싼 당 안팎의 분석은 활발했다. 당권 투쟁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분석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종부세가 중산층의 외면을 불러왔다는 내용이었다.

대선 당시 민주당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냈던 김종옥 전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장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 새로 종부세 대상이 되는 주택은 약 30만채, 소유자 기준으로는 약 19만명이었다”며 “종부세 대상을 축소하지 않으면 19만표가 떨어져 나간다고 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부동표를 다 잃었다”고 민주당 의원들을 직격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부동산가격 상승폭이 가장 가팔랐던 서울에서 민주당은 직전 대선에서의 압승을 지키지 못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민주당은 41.1%의 득표율로 국민의힘(24%)을 압도했지만, 2022년 대선에서 양당의 득표율은 47.8%, 48.6%로 오히려 뒤집혔다.

지난 대선 이후 한동안 민주당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비쳤다. 정권 교체 후 윤석열 정부는 가장 먼저 종부세 무력화를 시도했고, 민주당의 격앙된 반응과 강도 높은 구호는 여전했다.

하지만 이면에서 종부세는 서서히 무뎌져 갔다. 2022년 12월 국회는 종부세 다주택자 기본 공제를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1주택자는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150석을 넘는 다수당인 때였다. 이후 종부세 논쟁은 ‘강화 대 완화’가 아니라 ‘완화 대 폐지’의 구도로 재편됐다.

이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실패했다”며 고해성사를 하고, 이 대표가 “종부세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를 받으면서 ‘노무현의 유산’이던 종부세는 어느새 민주당에서 ‘계륵’으로 전락해버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속세 개편과 관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왼쪽 두 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크게 보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속세 개편과 관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왼쪽 두 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라진 증세, 감세 올인

성역에 가까웠던 종부세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다른 과세 정책 역시 속절없이 후퇴를 거듭했다. 2024년 4·10 총선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는 지난해 12월 10일 소득세법 개정안이 204명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폐기·유예됐다. 이 소득세법 개정안은 5000만원이 넘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얻은 소득에 매기는 금투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 소득 과세 시행일을 2025년 1월 1일에서 2027년 1월 1일로 2년 유예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두 세금 모두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원칙에 부합하게 설계된 세제였다. 조세정의라는 민주당의 그간의 기조와도 부합했다. 하지만 중도층을 향한 민주당, 특히 이 대표의 구애가 본격화되면서 추진 동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 국면까지만 해도 두 세금의 도입과 폐지 모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이 대표가 당대표 출사표에서 성장을 통한 민생회복인 ‘먹사니즘’을 앞세우면서 선회가 공식화됐다.

특히 조기 대선이 현실로 닥쳐오면서 민주당의 감세 급변침은 한층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지난 2월 22일 이 대표는 “웬만한 집 한 채 소유자가 사망해도 상속세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게 하려 한다”고 밝혔고, 당에서는 곧장 과세표준 18억원까지 상속세를 면제하는 상속세 개편안을 내보이며 호응했다. 소득세에 관해서도 ‘근로소득세 개편’ 이슈를 전면에 띄우며 직장인 표심 공략에 나서고 있다. 역시 이 대표가 “월급쟁이가 봉이냐”는 신호탄을 쏜 뒤 당에서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금액 조정과 ‘소득세 물가연동제’ 등의 감세 방안이 쏟아지고 있다.

일찌감치 큰 이견 없이 보폭을 맞춰왔던 대기업 감세의 경우 애초부터 여야 원팀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2022년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로도 한 차례 합을 맞춘 바 있는 여야는 지난 2월 27일 반도체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5%포인트 확대하는 ‘K 칩스법’을 합의 처리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대·중견기업이 15%에서 20%로, 중소기업이 25%에서 30%로 높아지게 됐다.

연일 쏟아지는 감세정책에 부족한 세수를 어떻게 메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 대표는 “세제를 조정해야 한다”거나 “초부자 감세를 조정해야 한다” 등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상황의 절박성을 내세워 즉답을 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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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무게추 분배→성장으로?

민주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략산업 국내생산 촉진세제’처럼 대기업의 국내 투자에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자체 대기업 감세 법안까지 준비 중이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 대비해 우리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지킬 우리만의 무기를 마련해야 한다”(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는 취지다. 법안에는 국가전략산업 분야에서 국내에서 최종 제조한 제품을 국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경우, 국내생산·판매량에 비례해 법인세 공제혜택을 최대 10년 동안 부여하는 내용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생산·소비되는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에 비례해 법인세를 깎아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또 다른 형태의 대기업 특혜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관심은 이제 민주당의 이런 광폭 행보가 정권 획득을 위한 일회성 전략인지 전면적인 체질의 변화인지 여부에 쏠린다.

여당 일각의 시선처럼 이런 움직임이 중산층을 겨냥한 ‘가짜 보수’ 행보라면 대선 이후 민주당의 움직임은 지금과 또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 만약 그게 아니라 민주당의 철학 자체가 분배보다 성장 우선으로 선회한 것이라면 보다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진다. 현실적으로 집권 가능한 양당의 경제 성향이 ‘보수 대 보수’ 형태로 재편될 경우 진보의 의제를 대변할 권력의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균형추를 맞출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증이 커질 수도 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틈새를 겨냥하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당장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진보진영 단일 대오를 형성했던 야권에서도 견제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는 2월 27일 국회에서 가진 야 4당 공동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호응하더니 이제는 감세 경쟁에 나서고 있다”면서 “기득권을 대변하는 윤석열 정부 감세정책에 이어 이제는 민주당표 감세냐”고 직격하기도 했다.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올 초 민주당의 신년 세미나를 보면 당의 철학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집권플랜본부 신년 세미나의 주제는 분배가 아닌 ‘성장 우선’이었다.

주형철 민주당 K먹사니즘 본부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지금의 성장으로는 현 수준의 복지 유지도 난망하다”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장우선 전략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특히 향후 5년을 성장의 골든타임으로 상정하고, 성장률 제고를 위한 국가 직접 지원과 투자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1080조원, 유럽연합(EU)의 ‘그린딜’ 1510조원, 중국의 ‘제조2050’ 1800조원 등 정부 직접투자를 통한 성장률 반등을 시도했던 국가들을 소개하며 전략산업 성장을 위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 ‘전략산업 국내생산 촉진세제’ 도입 등 최근 민주당의 움직임이 즉흥적이기보다 오랫동안 고민한 로드맵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선거 승리라는 목표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반복되면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 자체도 변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당장의 선거에서 이겨도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평등과 복지, 약자 배려라는 진보적 가치가 민주당에서 희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산토끼를 잡으러 나간다면서 반윤으로 결집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달라진 민주당이 현 지지층으로부터 계속 지지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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