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라며 주 4일제 화두를 던졌다. 조기 대선을 겨냥해 큰 선거에 걸맞은 ‘노동시간 단축’ 이슈를 던진 것이다. 2021년 말 20대 대선을 앞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주 4일제 공약을 발표하자, 나는 이 지면에 ‘주 4일제와 노동양극화’라는 글을 실어 반대를 표명했다. 2003년 9월, 참여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 만에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됐고, 그 후로 22년이 흘렀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찬성한다. 그러나 법정 근로시간을 주 25시간 이하로 단축하기 전에 주 4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결사반대다. 아무리 외국 사례를 들먹여도 소용이 없는, 명백한 한국 고유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주 4일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OECD 1위에 빛나는 최장의 출퇴근 시간이다. 주 40시간·주 35시간과 병행하는 주 4일제는 퇴근 시간의 연장을 의미한다. 유럽연합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2019년 기준 EU 27개국 15~64세 임금노동자의 평균 통근 시간은 편도 25분이다. 반면 국토교통부 산하 대도시권 광역교통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대도시권 광역교통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대도시권 평균 통근 시간은 왕복 116분, 수도권은 평균 120분에 이른다. 둘째, 상대적으로 긴 점심시간이다. 미국, 영국, 북유럽 국가들은 점심을 일터에서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영국 노동법은 무급 점심시간이 아닌 20분의 유급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때문에 20분 동안 점심을 해결하고 5시 칼퇴근할 수 있다. 즉 같은 주 40시간제라도 한국의 퇴근 시간이 1시간 30분, 길게는 2시간까지 늦는다. 주 4일제를 섣불리 말하는 게 무지해 보이는 이유다.
국가는 일을 택하라고 등 떠밀지 말고, 돌봄과 일 중에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 돌봄 시간 쟁취를 원한다. 주 4일제는 아직 멀고 먼 얘기다.
“시간 거지.” 돌봄과 일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엄마들이 스스로 붙인 자조 섞인 별명이다. 부족한 엄마라는 자책, 저급한 노동자라는 평가 속에 돌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멸시와 혐오를 뼈저리게 체감한다. 공적 돌봄·아동수당 등 양적 확대에 매몰된 정부를 향해 ‘정치하는엄마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제1 요구안으로 꼽았다. 서로 돌볼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해결하겠다면서 정부는 여성 고용단절 문제에 전혀 손대지 않는다. 어린이집은 12시간 운영, 초등 돌봄교실은 저녁 8시까지 운영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아니 그럼 우리가 대를 이으려고, 종족을 보존하려고, 인구절벽에 대응하려고 출산했을까? 아니다. 우리는 서로 돌보고자, 그 안에서 행복하고자 출산했다. 여성 임금노동자들이 고용단절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적 정리해고다. “어린이는 국가가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일하라”라는 말에 모든 모순이 담겨 있다. 국가는 일을 택하라고 등 떠밀지 말고, 돌봄과 일 중에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5일치 밥을 4일에 먹이고 하루 굶길 수 없는 것이 돌봄이다.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 돌봄 시간 쟁취를 원한다. 주 4일제는 아직 멀고 먼 얘기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