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췌장이식을 했다. 서울에서 뇌사자가 생겼는데, 그 병원의 후배 교수에게 췌장 적출을 부탁했다. 그 교수는 흔쾌히 췌장 적출을 해준다 했고, 간호사 한 명만 장기이송을 위해 뇌사자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우리 병원에서 쉬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새벽 한 시쯤 이식할 췌장이 도착했다. 바로 수술에 들어가 무사히 끝낸 시간이 새벽 4시쯤이었다. 서울에 있는 그 교수가 장기 적출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장기 적출을 하러 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전날 낮 12시쯤 앰뷸런스, KTX, 앰뷸런스를 타고 뇌사자가 있는 병원으로 간 뒤, 뇌사자 적출 수술을 하고, 다시 앰뷸런스, KTX, 앰뷸런스를 타고 새벽 1시에 우리 병원에 도착해서 다시 수혜자 수술까지 진행해야 했을 것이다.
모든 수술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장시간 여독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받으며 수술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경우에는 훨씬 몸이 가뿐했고, 수혜자 수술에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전공의가 모두 사직해 경험이 부족한 간호사 둘과 같이 수혜자 수술을 해야 했다. 그것도 별도리 없는 노릇이다. 수술방에서 나와 같이 많은 경험을 쌓은 간호사만 당직을 시킬 수도 없으니까.
생체 간이식 수술은 외과 수술의 꽃
간단한 타이(수술할 때 손으로 시행하는 결찰법)도 하지 못하는 간호사 둘과 수술할 때는 나 혼자 ‘원맨쇼’를 할 수 있도록 수술 중에도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보면 뛰어난 주인공도 조수로 전문의를 데리고 수술할 수 있던데, 오히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증자 수술을 하지 않고, 수혜자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췌장을 수혜받은 환자분은 잘 회복했고, 인슐린을 바로 끊을 수 있었다.
췌장이식을 하고 며칠 뒤, 생체 간이식 수술을 하게 됐다. 생체 간이식 수술은 외과 수술의 꽃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외과 술기의 정점이라 할 만큼의 수술자의 술기적 능력이 필요하고, 원래라면 절대 전신마취를 해서는 안 되는 말기 간부전 환자들을 완치시키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간이식 수술에는 나는 주로 수혜자 수술의 제1조수로 들어간다. 우리 병원 생체 간이식의 집도의는 양광호 교수다. 양 교수는 600례 이상의 간이식에 참여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며, 나도 장기이식으로는 잔뼈가 굵은 편이다. 수혜자는 평소의 간이식과 달리 거대해진 비장을 적출하는 수술이 추가로 필요했다. 비장의 기능 중 하나는 오래된 적혈구 등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환자의 지나치게 큰 비장은 몸의 혈구 세포를 모두 파괴해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의 숫자가 모두 바닥을 치고 있었다. 원래 주먹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크기의 비장이 너무 커져서 간보다 훨씬 커졌고, 비장에서 배액 되는 정맥은 우리 몸에서 가장 굵어야 하는 하대정맥보다 더 굵은 상태였다. 저 혈관이 터지면 그 출혈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우선 비장으로 가는 동맥을 찾아 묶고 잘랐다. 이제 비장의 정맥만 처리하면 된다. 대정맥보다 커진 비장 정맥을 하나하나 박리하는 도중 그만 혈관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놔두면 엄청난 출혈이 나지만, 양 교수와 나는 둘 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즉시 손으로 혈관을 꼬집어 출혈을 막았고, 양 교수는 손가락을 정맥의 뒤로 넣어 정맥을 든 뒤 피가 나는 부위를 지혈했다. 의학 드라마에서처럼 비명을 지르고 당황하는 모습은 없었다. 정맥을 지혈한 후 무사히 비장절제를 마쳤다.
그 뒤에 이어지는 간이식이야 매번 하던 대로 하면 되는 어렵지 않은 케이스였다. 큰 문제 없이 간이식 수술이 끝나고 간이식 환자도 잘 회복했다.
전공의가 그만두니 술기 전수할 사람도 없다
전공의들이 없지만, 대형병원은 이렇게 저렇게 돌아간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하루하루를 어찌어찌 막고 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환자들은 운이 좋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환자의 나이가 되거나 병이 생겨서 우리가 췌장이식 또는 간이식을 받게 된다면 누가 해줄까? 필수의료에 종사하고자 하는 전공의들이 모두 그만두었고, 우리가 가진 술기를 전수할 사람은 이제 없다.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때는 백제 말기였다.
“6월 왕흥사 스님들이 배가 노를 저어 큰물을 따라 절 문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들에 있는 사슴과 같은 큰 개가 서쪽으로부터 사비 언덕에 이르러 왕궁을 향해 짖다가 갑자기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성안에 여러 개가 길 위에 모여 혹은 짖고, 혹은 곡하다 잠시 후 흩어졌다. 한 귀신이 궁중에 들어와 크게 외치기를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하고는 곧 땅에 들어갔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곳을 파게 했더니 깊이 석 자 정도에 한 거북이 있고, 그 등에 문자가 있었는데 ‘백제는 온달(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했다. 왕이 그것을 무당에게 물으니 무당이 말하기를 ‘온달(보름달)은 가득 찬 것인데 가득 차면 곧 이지러지게 됩니다. 초승달과 같다 하는 것은 아직 차지 않은 것입니다. 아직 차지 않은 것은 곧 점차 차게 됩니다’ 했다. 왕이 노하여 무당을 죽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온달(보름달)은 성대한 것이고, 초승달은 미미한 것입니다. 국가(백제)는 성대해지고, 신라는 점차 미약해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했다. 왕이 기뻐하였다.”
최근 의료계 뉴스를 보니 의료대란에도 불구하고 연령을 보정하면 2024년의 초과 사망자 수가 예년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가 보름달이라서가 아닐까? 이제 이지러지는 일만 남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제는 정말 큰 병에 걸리면 안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병에 걸리고 싶어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는 10년, 20년 후에도 췌장이식, 간이식을 원활히 받을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게 될까.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