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이 피해자인가?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2025.03.10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6일이 지난 2024년 12월 9일, 한 군인이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현태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이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과 부하들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 규정하며 울먹였다. 그가 지휘했던 707특임단은 12월 3일 밤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고 안으로 진입한 부대다. 많은 이들이 김 단장을 진실을 얘기하는 용기 있는 군인, 참군인이라 추켜세웠고 공익제보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뒤 김현태 단장이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그는 몇몇 국민의힘 의원과 보조를 맞춰 자신과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야당에 의해 이용당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회 안에서 소화기를 뿌려가며 계엄군을 막았던 야당 보좌진들을 두고 “마치 저희를 이용해 폭동을 일으키려는 느낌을 받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번에도 그는 ‘피해자’였다. 가해자가 김용현에서 야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젠 아무도 김현태를 참군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진실을 얘기하는 공익제보자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그는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거짓말을 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 위증죄로 처벌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이처럼 180도 뒤바뀐 그의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는 원래부터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였다. 중무장한 김현태의 부하들이 국회 창문을 깨고 의사당으로 난입하던 모습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누가 이용했건, 회유했건 시작부터 김현태는 내란의 주요 임무 종사자였다. 다만 기자들을 불러놓고 눈물을 흘리던 내란죄 피의자 김현태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모두 농락당했을 뿐이다.

아무한테나 참군인 딱지를 붙여주고, 계엄군을 피해자처럼 딱하게 여기다 보면 내란 가담은 김현태 주장처럼 ‘어쩔 수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국민에게 총을 들이대라는 끔찍한 명령을 따라놓고 자기도 피해자라 생각하며 사는 군인이 가득한 군대는 얼마나 위험한가.

계엄군의 트라우마를 관리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언론인들의 문의를 종종 받는다. 12월 3일 직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받고 있는 이 문의는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의식이다. 계엄에 관여한 군인 개개인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는 하나하나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수사도 해보지 않고 섣불리 계엄군을 피해자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에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윤석열과 상관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이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묻는다. “끌려갔는지 따라갔는지 어떻게 아시나요?”

12·3 내란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기소된 사람이라 해봐야 고위급 장성 몇몇이 고작이다. 계엄군을 지휘했던 영관급 장교들은 기소는 고사하고 대부분 직무배제조차 되지 않은 채 버젓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밝혀진 건 적고 갈 길은 멀다. 이 와중에 아무한테나 참군인 딱지를 붙여주고, 계엄군을 피해자처럼 딱하게 여기다 보면 내란 가담은 김현태 주장처럼 ‘어쩔 수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국민에게 총을 들이대라는 끔찍한 명령을 따라놓고 자기도 피해자라 생각하며 사는 군인들이 가득한 군대는 얼마나 위험한가. 지금은 용서와 이해의 시간이 아니다. 정상참작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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