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흔들며 팽창하는 트럼프…한·미동맹은 괜찮나

2025.03.03

경제적 개입과 군사적 관여 방향 적대세력서 동맹과 우방으로 옮겨져

한국, 동맹유지비 추가 지불하거나 ‘중국 견제’ 더 노골적 참여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연구소 정상회담에서 연설하기 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연구소 정상회담에서 연설하기 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AP=연합뉴스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좇는 ‘규칙기반 질서(rules-based order)’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라고 불린다.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규칙제정자(rule-maker) 역할을 하며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군사적 ‘개입’과 경제적 ‘관여’는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확장하고 단극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됐다. ‘영토’가 아닌 ‘영역’을 확장하는 미국식 ‘팽창주의’는 19세기 제국주의와 차별화하며 도덕적 정당성도 얻었다. 이른바 ‘세계주의’라고 불리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교체됐지만 대외정책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빌 클린턴(민주당)-조지 W. 부시(공화당)-버락 오바마(민주당)-도널드 트럼프 1기(공화당)-조 바이든(민주당)으로 이어진 미국 행정부는 표현과 정도가 달랐을 뿐, 미국식 ‘팽창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2003년 이라크 전쟁,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11년 리비아 내전, 2001~202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시작과 종료 등은 미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 유지 및 확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다.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유엔 또는 지역기구를 통한 다자주의적 개입과 관여로 수단만 달라졌다.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러한 미국 외교의 관성을 변화시킬 것처럼 보였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대한 개입과 관여를 줄이고 ‘고립주의’로 회귀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났다. 국제사회가 직면한 것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아닌 지난 반세기 동안 겪어 보지 못했던 강한 ‘개입과 관여’다. 기존 미국 대외정책에서 달라진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개입과 관여의 방향이 미국에 맞선 ‘적대세력’에서 ‘동맹과 우방국’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경제적 관여가 시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미국과 국경을 맞댄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약간의 고통이 있을 수 있으나 국민은 이해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 2월 3일 관세 시행을 하루 앞두고 한 달 유예가 결정됐지만, 국제사회가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미국이 우방을 상대로 ‘희생’을 감수한 총력전을 펼친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책 기조는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0일 모든 수입 철강 및 알루미늄에 오는 3월 12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월 13일에는 상호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2월 18일에는 “외국산 자동차는 관세율 25%, 반도체·의약품은 25%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4월 2일 국가별 상호관세 조치와 함께 자동차·반도체·의약품의 구체적 세율 발표가 예고됐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상호관세는 부가가치세, 디지털서비스세 등의 비관세 장벽, 환율, 보조금 등을 고려해서 결정할 수 있다. 개별국가가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내놓을 수 있느냐가 최종 관세도 결정할 것이란 의미다.

군사적 개입도 본격화했다. 지난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데 합의했다. 곧바로 2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미국의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참석한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가입한 유럽국가나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배제됐다. 회담 직후 미·러 정상은 각각 “매우 잘 진행됐다”, “높게 평가한다. 결과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전쟁 당사국 일방을 제외한 채 종전 협상의 물꼬를 텄다.

지난 2월 1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왼쪽에서 두 번째)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만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논의했다./AP=연합뉴스

지난 2월 1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왼쪽에서 두 번째)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만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논의했다./AP=연합뉴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시행된 경제적 관여, 군사적 개입은 미국이 동맹을 압박한다는 공통의 방향성을 갖는다. 실제로 고관세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대부분 국가는 미국과 무역이 활발한 우방국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을 제외하면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한국, 캐나다, 인도 순으로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모두 미국의 동맹 혹은 역대 미국 정부가 전략적 관계를 구축해온 국가다. 트럼프 행정부하에서는 이 순서대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반면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미국과 전통적으로 적대 관계였던 국가가 받을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해결 역시 미국은 우방국인 우크라이나와 군사동맹인 나토를 무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거 없이 집권 중인 독재자 젤렌스키가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국가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지난해 3월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임기가 자동 연장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러시아다. 나토의 동맹국인 미국이 나토와 대립하는 러시아와 의견이 일치했다. 전통적인 동맹 질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동맹은 무엇인가

국제정치에서 동맹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없다. 학자마다 조금씩 차별화된 해석을 내놓는데 이중 다수가 지지하는 정의만 있다. 좁은 의미의 동맹을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은 글렌 스나이더(Glenn Snyder)의 ‘특정한 상황에서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 군사력을 사용할 것에 대한 회원국 간 합의’라는 것이다. 동맹이 공식적 합의로 성립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 목적과 역할이 분명하다. 과거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맞설 안보협의체로 출발한 나토나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전통적인 한·미동맹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냉전 해체 이후 좁은 의미의 동맹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공식적 동맹이 아니지만 그 이상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 공동의 적이 사라진 나토는 해적 소탕에 나서는 중이다. 이로 인해 넓은 의미의 정의가 등장한다. 공식적·비공식적 협력을 모두 동맹의 틀 안에 넣고, 목적도 외부위협에 대한 군사력 사용에서 안보 문제 전반으로 확장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가치동맹’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성과로 강조한 “한·미동맹이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했다”는 주장 역시 넓은 의미의 동맹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동맹의 목적, 특성이 광범위해지자 되레 특별함을 찾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즉 현대사회의 동맹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무력화하거나 와해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지난 한 달간 추진한 정책은 이러한 동맹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보를 스티븐 M. 월트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한 동맹의 세 가지 쇠퇴 요인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우선, ‘위협인식의 변화’다. 러시아가 미국에도 위협이냐는 물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둘째로 ‘신뢰성 감소’다. 미국은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동맹인 나토를 배제하고 러시아와 직접 협상에 나섰다. 셋째로 ‘국내 정치 요인’이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는 것이 미국 국내 정치에 도움이 되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겨냥해 “적당히 성공한 코미디언이 미국이 3500억달러를 쓰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상의 요건만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특별하다기보다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동맹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결과, 전쟁은 이들을 배제한 채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만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미·러 사이 협상만으로 전쟁이 끝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들 국가는 그럴 능력이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며 “우크라이나가 사용하는 무기의 65% 이상이 미국이 지원한 것인데, 미국이 전쟁에서 빠지면 우크라이나는 나머지 35% 전력만으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영토를 뺏길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부분에서 우크라이나가 종전에 참여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이익이 동맹에 우선하는 상황에서 예측되는 변화는 분명하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붕괴, 강대국 정치의 귀환이다. 이를 두고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두고 신제국주의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과거 제국주의 시절처럼 영향력 있는 몇몇 강대국끼리 모여 국제 문제를 협의하고 결정해 버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가 한·미동맹만 비껴갈 리는 없다.

한·미동맹은 어떻게 변하나

우크라이나와 한국은 다르다. 미국에 한국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갖는 위상 차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중국은 미국의 최대 위협이다. 대중국 견제 측면에서 한국은 단단한 린치핀(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 외교가에선 공동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동반자 등을 의미)이 된다. 문제는 한·미동맹이 표면적으로 밝히고 있는 공동의 위협이 중국이 아닌 북한이라는 점이다.

지난 2월 8일 울산 태화강역 광장에서 세이브코리아 울산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월 8일 울산 태화강역 광장에서 세이브코리아 울산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월트 교수가 밝힌 동맹의 세 가지 쇠퇴 요인에 한·미동맹도 넣어볼 수 있다. 첫째로 북한이 미국에도 위협이냐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언급한 사례가 윤석열 대통령을 언급한 경우보다 많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통제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위협이 될 수 없다. 둘째로 ‘신뢰성 감소’다.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믿음은 확고하다. 반면 미국의 속내는 알 수 없다. 마지막 ‘국내 정치 요인’이다. 주한미군 유지 및 전략 자산 전개에 필요한 비용이 트럼프 대통령이 감내할 수준이냐는 문제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16일 “만약 내가 지금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은 우리에게 연간 100억달러를 지불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미 양국이 타결한 방위비 분담금의 9배 수준이다.

이상의 요건을 종합하면 한·미동맹 강화의 필요조건이 나온다. 한국이 동맹 유지를 위한 비용을 추가 지불하거나 동맹이 공동의 위협으로 삼는 목표를 변경해야 한다. 더욱 노골적인 대중국 견제망 참여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이제 누가 미국의 동맹이냐가 아닌, 누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시대”라며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협상을 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사례가 주는 교훈은 이제 미국과의 관계는 거시적·추상적 가치보다 당장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미시적 가치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 위원은 “트럼프 행정부하의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려면 동맹에 명확한 위상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한·미동맹의 구조가 중국을 견제하는 용도로 변했는데 우리는 이를 수용만 할 뿐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지 고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이 북한과 대중국 포위를 모두 담당하는 이중용도가 될 경우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받는 불이익을 미국에 보상받을 수 있게 동맹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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