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미 전 여가부 여성정책국장이 전하는 ‘비동의 강간죄 검토 철회’ 사태 전말
유엔 도입 권고에도 여가부는 ‘검토’ 발표했다가 철회…“성평등 후퇴 한 장면”
2023년 1월 26일, 여성가족부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한 뒤 논란이 일었다. “형법 제297조의 강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 검토”, 즉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형법의 소관 부처인 법무부가 돌연 “법 개정 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올렸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전 국민의힘 대표)은 “뭐? 비동간?”이라고 썼다. 여가부는 발표 9시간 만에 “법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정부·여권이 반발하자 비동의 강간죄 도입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위축된 여가부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주간경향은 당시 기본계획을 총괄, 담당한 김종미 전 여가부 여성정책국장(60)을 지난 1월 23일과 2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기본계획 수립 과정부터 발표 철회, 그 이후까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물었다. 김 전 국장은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 발표와 관련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로부터 감찰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이 건으로 직원들에게 경고·주의 조치를 했다.
김 전 국장은 “여가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부처 간 조율도 거쳐 만든 기본계획인데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안 되냐고 물었지만 장·차관은 답이 없었다”며 “제가 겪은 일들은 이 정부 안에서 여성정책이 어떻게 말살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당시 전말이 밝혀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숙원과제 논란되자 철회한 여가부
양성평등기본법은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여가부 장관이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라고 규정한다. 여가부 내부에선 2023~2027년 적용되는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2022년 1월부터 사전 준비에 돌입했다. 각종 의제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용역이 시작됐다.
2022년 9~10월 여가부 내에서 1·2차 회의, 11월 3차 회의가 진행됐다. 의제 중 하나로 비동의 강간죄가 들어갔다. 현재 대법원 판례는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항거불능)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최협의설)이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가 강제로 이뤄지더라도 강한 수준의 폭행·협박이 입증되지 않으면 범죄로 처벌되지 않는 것이다. 2018년 미투운동(#MeToo·나는 고발한다)이 전개되면서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강간죄 성립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는 2015~2017년 적용된 제1차 기본계획에도 이미 포함됐다.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8년부터 한국 정부에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국제인권 기준에 따라 부부 강간 등 합의되지 않은 모든 성적행위를 포괄하는, 적극적이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가 없는 성적행위를 강간으로 정의하도록 형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국회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법무부는 비동의 강간죄로 개정하는 안에 대해 ‘수정의견’으로 “개정 검토”라고 기재했다. 법무부는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며 “성폭력 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법무부는 가정폭력처벌법상 가족구성원 범위 개정에 대해서는 ‘삭제’, 온라인상의 성적 괴롭힘 표현을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라는 표현을 썼다. 이와 달리 비동의 강간죄 부분엔 ‘개정 검토’, ‘종합적인 검토’라고만 돼 있다. 이에 여가부는 법무부 의견을 수용해 ‘개정’에서 ‘개정 검토’로 안을 바꿨다. 2022년 12월 여가부 내 4차 회의와 외부 공청회, 2023년 1월 초 여가부 실무위원회가 진행됐다.
당시 여가부 내부 회의에선 돌봄, 가족정책이 주된 논의대상이었다고 한다. 비동의 강간죄가 화두가 되진 않았다. 김 전 국장은 “여성폭력 담당인 권익정책국 쪽이나 장·차관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를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한 적은 없다”며 “대통령실에도 기본계획을 서너 번 서면보고했다”고 말했다.
막상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해야 하는 양성평등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김 전 국장은 “여가부 쪽에서 양성평등위원회에 회의를 열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정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폐지될 부처’ 처지인 여가부의 발언권이 크지 않은 터였다. 2023년 1월 12일 이기순 당시 여가부 차관과 김 전 국장 등이 양성평등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찾아가 기본계획을 보고했다. 김 전 국장은 “국무총리가 한국의 저출생에 돌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가부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돌봄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양성평등위원회는 1월 16~18일 서면으로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1년여 과정을 거쳐 기본계획이 발표됐는데 갑자기 비동의 강간죄 논란이 벌어졌다. 발표부터 철회까지의 9시간 동안 여가부 내 대책회의에선 ‘대통령실에서 자꾸 전화가 온다’, ‘대통령 공약이 무고죄 처벌 강화인데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김현숙 당시 여가부 장관은 국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통화로 협의했고, 상호 간 동의해 그런 의견(법 개정 계획이 없다)을 냈다”며 “한 장관의 입김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 전 국장은 “부처 간 조율과 절차, 양성평등위원회 심의 결과를 무시한 법무부의 통보였다”며 “비동의 강간죄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지키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 전 국장은 “향후 5년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가부가 왜 존재해야 하느냐, 추진도 아니고, 검토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2030 세대의 의식수준과 사회적 감수성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할 수 있는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광화문 청사 사무실서 경위 조사
그 직후인 2023년 2월 초 김 전 국장은 기본계획을 담당한 과장으로부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조사를 받고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과장은 김 전 국장과 사무관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여가부 장·차관에게는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상태였다. 김 전 국장은 2월 6일 오후 1시부터 8시 30분까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7층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나온 검사”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남성 한 명과 여성 한 명이 김 전 국장을 조사했다. 이들은 “변호사를 대동할 수 있다”고 고지한 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마음대로 추진하려고 했느냐’고 추궁했다. 조사가 끝난 뒤엔 조서를 열람하고 날인했다. 수사절차와 흡사했다. 김 전 국장은 “(조사관들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나 신념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물었다”며 “그래서 ‘개인적 신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정책국장으로서 절차대로, 문제없이 했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는 “(조사관들이)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난 적 있느냐며 야당과의 관계를 질문하기도 했다”고 했다. 백 의원은 21대 국회 때 비동의 강간죄 법안을 냈다.
2023년 3월 말 김 전 국장은 여가부 장관 명의로 경고조치, 담당 과장은 주의조치를 받았다. 경고장에 적힌 경고 이유는 세 가지였다. ‘신중하게 기본계획을 수립했어야 하나 관리 및 검토를 소홀히 했다’, ‘중요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장·차관에게 보고했어야 했다’, ‘정책 발표 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는 것이다. 부처 간 소통 미흡이 문제였다면 법무부도 감찰대상이지만 법무부가 이 건으로 감찰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고·주의는 공무원법상 징계는 아니지만 불이익한 처분에 해당한다. 기본계획을 담당했던 사무관은 사표를 내고 여가부를 떠났다.
여가부는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 발표 관련 대통령실의 감찰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2023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최근 2년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여가부 직원을 직접 감찰한 사례는 이 건이 유일했다. 여가부는 대통령실이 조사 결과에 대한 조치방안 마련을 요청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실의 감찰 여부에 대해 “몰랐다.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장관 모르게 소속 직원을 감찰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김 전 장관은 “통보 안 하고도 할 수 있다. 결정은 대통령실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경고·주의 조치는 대통령실 감찰과 별개로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기본계획이 엄청 길어 장관이 다 읽을 수 없는데 비동의 간음죄(강간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며 “중요한 내용인데 장관이 모르고 기본계획이 나갔기 때문에 (경고)조치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국장은 “정책 추진 절차엔 아무런 하자가 없고, 언론에 혼돈을 준 것도 없었다”며 “공무원이 보고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국장이 사실상 업무배제를 당한 정황도 있다. 김 전 국장은 “한 번은 외교·국방 분야 등에 여성인재 풀을 넓히기 위한 회의 주재를 위해 회의장에 도착했는데, 회의장 앞에서 여가부 차관실로부터 참석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회의에 참석하지 말아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명령을 따르라’는 것뿐이었다”고 했다.
김 전 국장은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여성정책국장의 업무를 제한하면 여가부 정책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했다. 여성정책국은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며 성별영향평가 관리,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 해소, 경력단절 여성 지원 등을 담당하는 핵심 부서였지만 현 정부 들어 힘이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기순 전 차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적(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며 “여성정책국장 위에는 실장 라인이 없어 일일이 차관과 의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기획조정실장과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비리 혐의가 포착된 것도, 부처 내부 감사도 아니고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개입해 여가부의 정책 추진 과정을 조사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와 반성평등 정책기조를 드러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죄를 정리하라고 권고했고, 관련 부처가 그 이행계획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역할인데 감찰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성평등 정책 후퇴의 장면 중 하나”라고 했다.
여가부 업무를 잘 아는 한 인사는 “비동의 강간죄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계속 (도입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달성하지 못한 몇 가지 중 하나”라며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세울 때 각 부처가 동의하지 않으면 (의제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인데, 직원에게 감찰로 내려올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다른 인사도 “감찰까지 갈 사안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일선 부처의 정책 추진 과정과 관련해 감찰조사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논란은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대통령실 직제 제7조 제2항은 감찰업무에 대해 “비리 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으로 한정한다”고 규정한다. 장동엽 참여연대 간사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직접 감찰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고, 어떤 근거로 어떤 과정에서 감찰이 이뤄졌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장관 선에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에 대통령실이 나선 것은 (그 대상이) 여가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어떤 정부든 여성 문제는 중요과제”
2020년 11월 개방형 직위로 여성정책국장에 임용된 김 전 국장은 문재인 정부 말기와 윤석열 정부 초기를 모두 경험하면서 여가부 안팎의 변화를 누구보다 크게 체감했다고 했다. 김 전 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기능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에 보내려고 했지만,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이 막히자 내부적으로 서서히 고사시키려 시도했다”고 했다. 그는 “부처로서 예산과 행정적 집행을 할 수 있는 조직적인 틀, 20년 넘게 축적된 여가부의 경험만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 버텼다”며 “울면서 상담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뜻이 있어 여가부를 선택한 직원들이 고민이 많았던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국장은 “결국 여성혐오와 젠더 갈라치기, 극우 유튜브를 지지대로 삼은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라는 반성평등 정책을 시작으로 계엄이라는 극단적이고 반민주적인 결말과 조우한 셈”이라며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여성 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이 그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다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2건이 각각 5만여명 동의를 얻어 지난 1월 20일과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안건으로 회부됐다. 청원을 올린 A씨는 청원서에서 스스로 성범죄 피해자라고 밝히며 “너무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법원이 A씨 동의를 받지 않고 성관계한 피고인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비동의 강간죄가 없다는 것 때문에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A씨는 “피해자는 고통 속에 피눈물을 흘리는데 (가해자는) 이런 형법의 허점을 이용한다”며 “법이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민주주의를 믿고 살겠느냐”고 호소했다. A씨는 이어 “먹기 싫은 밥도 동의 없이 억지로 먹이면 명백한 학대인데, 술에 만취한 상대의 동의 받지 않은 성관계는 분명 성폭행”이라고 했다. 지난해엔 교제폭력(데이트폭력)으로 죽거나 다친 여성들의 사건이 사회이슈로 떠오르면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의 필요성이 더욱 크게 제기됐다. 교제폭력은 친밀하고 신뢰하던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겉으론 동의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론 강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논의를 미루고, 정치권은 소위 ‘젠더갈등’만 부추기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