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이션 소개팅

2025.02.09

로테이션 소개팅에서 참가자들이 1 대 1로 대화를 하고 있다. / 토크블라썸 제공

로테이션 소개팅에서 참가자들이 1 대 1로 대화를 하고 있다. / 토크블라썸 제공

20·30세대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로테이션 소개팅’에 관해 취재했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남녀 여러 명이 한 공간에 모여서 모든 상대와 돌아가며 1 대 1로 대화를 하는 소개팅이다. 대화 시간은 딱 10분. 인원은 남녀 각각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 참여한다. 가령 20 대 20 소개팅이면 200분 동안 20명의 이성과 10분씩 대화를 할 수 있는 셈이다.

‘다(多) 대 다’라는 것보다 특이한 점은 로테이션 소개팅을 주최하는 업체에서 참가자들의 신분증과 사원증을 확인한다는 점이었다. ‘신분증과 사원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날 소개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경고 문구를 써둔 소개팅 업체도 있었다. 번듯한 직장이 있는 사람만 오라는 듯해 경고 문구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좀 기괴한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20명을 만나면 얼굴이랑 이름을 다 기억이나 할까? 급하게 10분씩 대화하는 소개팅에서 과연 짝이 맺어질 수 있을까? 우리 세대는 연애도, 결혼도 안 하는 세대인 줄 알았는데 짝을 찾는 데 다들 이렇게 열심이라니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가자들을 인터뷰할수록 로테이션 소개팅이 왜 유행하는지 알 수 있었다. 참가자들이 꼽은 로테이션 소개팅의 장점은 ‘극강의 효율성’이었다. 일반적인 소개팅에서는 딱 1명의 이성을 만나보는 데 주말 하루를 다 쓴다. 밥 먹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돈도 적잖이 들어간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5만원 내외의 참가비만 내면 한 번에 여러 명의 이성을 만나볼 수 있다.

게다가 로테이션 소개팅 업체에서 이런저런 조건까지 대신 확인해준다. 한 로테이션 소개팅 업체는 “결혼정보회사(결정사)보다는 가볍고, 데이팅앱보다는 무겁다”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있었다. 결정사처럼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데이팅앱과 달리 나름 여러 가지 조건을 확인한 후에 상대를 소개해준다는 것이다.

로테이션 소개팅이 유행하는 이유까지는 납득이 됐지만, 소개팅에서 효율을 따지는 세태는 여전히 좀 씁쓸하다. 20·30세대가 연애에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가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대에 취업해서 30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집을 사야 한다는 유·무언의 압박을 탈출하기란 쉽지 않다. 해가 넘어갈 때마다 재촉을 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때가 많다. 그 와중에도 어떤 친구는 오는 3월엔 퇴사하고 대학원에 갈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각자의 속도대로 살고 싶은 친구들과 ‘한국사회는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는 불평을 나눴다.

로테이션 소개팅이 유행하는 원인을 두고 색다른 시각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로테이션 소개팅이 유행하는 이유가 “20·30세대가 능동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소개팅을 주선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땐 스스로 나서는 적극성이 있는 세대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명절에 만날 일가친척들께도 미리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냥…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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