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라투-영화사 첫 고전 흡혈귀 영화의 통속적인 재해석

2025.01.26

이 102년 뒤의 리메이크 영화는 그 ‘주류적 해석’을 그대로 영화로 재현해 내놨다. 연출이나 연기는 비교적 훌륭하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나중에 하나하나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유니버셜 픽처스

/유니버셜 픽처스

제목: 노스페라투(Nosferatu)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32분

장르: 공포

감독: 로버트 에거스

출연: 빌 스카스가드,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애런 존슨, 윌렘 대포

개봉: 2025년 1월 15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노스페라투>.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감독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가 1922년 만든 무성영화다. 한국에서는 시네필(영화광)의 시대였던 1990년대 다른 초기 고전 영화들과 함께 비디오로 출시됐다. 이제는 <노스페라투>가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넘었으니 저작권이 풀려 다양한 버전의 영화 완전판을 유튜브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다(원래 필름은 독일에서는 저작권 소송에서 져 모두 사라졌고, 북미에 넘어간 판본과 남미에서 발견된 자투리 필름들을 모아 전체 영화가 복원됐다). 독일 표현주의를 말하자면 반드시 거론되는 게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독일의 사회상이다. 표현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추상과 상징이다. 돈이 없으니 많은 부분을 세트와 조명, 상징으로 때우는 와중에 완성된 연출기법이다. 영화 <노스페라투>의 대표적 장면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계단을 올라 희생자에게 다가가는 올록 백작의 괴기스러운 그림자다(박스 기사 사진).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암시로, 그림자 연출만으로 효과를 극대화했다.

독일 표현주의 대표작의 103년 후 리메이크

1월 15일 개봉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페라투>는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를 100여년 만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무르나우가 창시한 ‘그림자 기법’은 이번 리메이크 영화에서 최소 두 차례 변주된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 이어 절정부에서 도시 위를 나르는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 분)의 그림자가 나온다. 여자주인공 엘렌(릴리 로즈 뎁 분)의 방문 앞에 도달한 올록 백작의 손 그림자는 문의 손잡이 위에 머무는데 문은 요술처럼 활짝 열린다.

영화는 원작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가지고 와 해석한다. 엘렌의 침대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1922년 원작 무성영화에 삽화처럼 삽입된 ‘새 신부 엘렌이 고양이와 장난치는 장면’을 해석해 부연한 것이다. 원작 무성영화에는 꽃을 받은 엘렌이 무심한 듯 “불쌍한 꽃들을 왜 죽이느냐”고 받아치는 대사가 적힌 슬라이드가 삽입돼 있는데 많은 평론가는 이 대목을 근거로 ‘엘렌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흡혈귀 올록 백작은 실은 그의 우울증이 만들어낸 자아상’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103년 뒤의 리메이크 영화는 이 ‘주류적 해석’을 그대로 재현해 내놨다.

은유를 실재 사건으로 재해석하기

연출이나 연기는 비교적 훌륭하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나중에 하나하나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원작과 달리 이번 리메이크작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엘렌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은 배우 빌 스카스가드가 맡은 올록 백작이다. 통상 드라큘라라고 하면 완전히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빗은 벨라 루고시(1931년 작·토드 브라우닝 감독)나 크리스토퍼 리(1958년 작·테렌스 피셔 감독)가 떠오르는 것처럼 ‘짝퉁 드라큘라’인 올록 백작 하면 떠오르는 건 무르나우 영화의 창백한 얼굴에 깡마르고 어딘가 모르게 신경질적인 외모를 지닌 배우 막스 슈렉이다.

빌 스카스가드가 연기한 올록 백작은 히어로 영화의 빌런(악당)처럼 근육질에 썩어 문드러진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원작은 무성영화이다 보니 모든 연기가 거의 사백안이 되도록 부릅뜬 눈과 과장된 표정으로 특유한 기괴함을 만들어내는데, 리메이크작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컴컴한 어둠 속에서 진행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노스페라투’는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30분이나 지나서야 언급된다. 게다가 여기서 노스페라투는 그냥 역병이다. 단순한 은유다. 독일 표현주의에서 완성된 데포르메(회화 등에서 대상을 과장·왜곡·생략해 표현하는 기법)를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다시 실사로 되돌린 느낌이랄까. 노스페라투는 원작에서는 올록 백작을 만나러 가던 후터가 묵는 여관방에 뒹굴고 있던 싸구려 괴기 모음집에 실린 뱀파이어의 이름이었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베낀 노스페라투

/Wikipedia

/Wikipedia

<노스페라투>는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무단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의 제작자인 알빈 그라우는 뻔뻔하게도 자신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세르비아의 한 농부에게서 들었던 ‘자기 아버지가 흡혈귀가 돼서 다시 돌아온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드라큘라의 원작자 브램 스토커의 저작권을 상속한 미망인 플로렌스 스토커가 영화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브램 스토커는 1912년 사망했는데, 당시 독일은 저작권 관련 국제 협약인 베른협약에 가입한 상태였다.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이 보장되므로 <드라큘라>의 저작권은 1962년까지 살아 있어 여지없이 소송을 당할 판이었다. 그라우는 저작권 문제 해결 없이 영화제작을 강행했고, 소송을 피하고자 영화 제목을 <노스페라투>로, 백작 이름을 올록으로 변경했다. 1922년 영화가 개봉한 뒤 아니나 다를까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결국 그가 설립한 독일 무성영화사 프라나 필름은 이 영화 한 편을 끝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모든 사본을 거둬들여 파기하라는 법원의 판결이었고, 이는 철저히 이행됐다. 독일에선 <노스페라투>의 프린트가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1922년 작 <노스페라투>는 어떻게 된 것일까. 불행 중 다행으로 미국은 당시 베른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소설 <드라큘라>의 저작권은 풀려 있었다. 그렇게 <노스페라투>의 프린트가 여기저기에서 살아남았다. 극적으로 이야기를 과장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직 한 프린트만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이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가 재발견된 이후 군데군데 남아 있던 프린트 릴을 조합해 오늘날 1시간 28분 12초짜리 완전판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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