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다극화 시대가 오는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2024.12.02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2009년 금융위기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실패했음을 알리는 최종 선고였다. 북반구의 많은 시민이 집을 잃고, 마이너스가 된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했다. 남반구는 말할 것도 없다. 세계은행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약 9000만명이 극빈층으로 전락하리라 예상했고, 국제노동기구는 2009년 세계 실업자 수가 2007년 대비 3400만명 증가했다고 추정했다. 그중 대다수는 남반구에 쏠려 있다.

세계화와 효율성이 우리에게 찬란한 미래를 안겨다줄 것이라는 맹신론자들의 주장은 틀렸다. 물론 소수의 부자에게 신자유주의 체제는 엄청난 선물을 가져다줬다. 1970년에 전 세계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16%였으나, 2020년에는 21%로 증가했다. 반면 하위 50%의 소득 점유율은 1970년 이후 반세기 동안 6~9% 수준에 정체돼 있다. TV에 등장하는 온갖 성공신화가 누구의 이름으로 됐는지만 떠올려도 이 세계가 부유하고 힘센 자들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격차는 더 벌어졌다. 국제불평등연구소 프란시스코 페레이라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크게 늘었지만, 빈곤 인구는 오히려 증가했다.

러시아와 인도가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하는가? 정반대다.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파산을 고했음을 명백하게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 권위주의 국가 모델이 이끄는 ‘다극화 시대’의 청사진 역시 거부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인플레이션과 국가 간 분쟁으로 불타고 있다. 사회공공성은 희미해지고 있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경제가 불안정할 때 갈등은 증폭되게 마련이다. 실업률이 급증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는 커지고, 정당들은 작동 불능 상태에 직면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을 먹고사는 극단주의자들이 세를 얻기 시작한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온갖 경제학자들과 사상 없는 지식인들은 ‘미국의 시대’가 끝나고 ‘다극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다극화’를 미 제국주의적 권력 집중을 해체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면서, 단일 패권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길이라면 모두 옳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가령 통일운동 일부의 분석가를 자처하는 이정훈은 ‘통일시대’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극화가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인도 모디 총리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처럼 극우적이고 권위주의 지도자들의 지향과 다르지 않다. 바야흐로 ‘다극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전쟁을 제국주의에 ​​대한 전쟁으로 분칠하고 있다.

민족주의 좌파 일부가 가치 중립적으로 보이는 ‘다극화’ 개념을 수용한 불행한 결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대응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러시아의 파시스트 담론을 정당화하고 침공을 미국 주도의 단극적 제국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옹호하게 되며, 국가 간 경쟁이 평화보다 더 우선시된다면 ‘참전 담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러시아와 인도가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하는가? 정반대다.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파산을 고했음을 명백하게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 권위주의 국가 모델이 이끄는 ‘다극화 시대’의 청사진 역시 거부해야 한다. 우리의 횃불은 다른 곳을 가리켜야 한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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