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키가 경제다? 베트남에 부는 ‘키 크기’ 열풍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2024.11.18

2024년 5월 31일 베트남 호찌민 베이비 피어 박람회에서 키 성장 분유 부스를 찾는 베트남 고객들. 유영국 제공

2024년 5월 31일 베트남 호찌민 베이비 피어 박람회에서 키 성장 분유 부스를 찾는 베트남 고객들. 유영국 제공

베트남 사회 전체에 ‘키 크기’ 열풍이 불고 있다. 2022년 11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시 당국은 2030년까지 평균신장을 남성 170.5㎝, 여성 159㎝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베트남 보건부 산하 모자보건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베트남 18세 평균신장은 남성 168.1㎝, 여성 155.6㎝로 20년 전보다 각각 5.8㎝, 3.3㎝ 성장했다. 지난 20년간의 키 성장 추이로 봤을 때 하노이시의 2030년 목표 달성은 무난해 보인다. 그런데 한 나라의 수도에서 평균신장 성장 목표를 선언할 정도로 베트남에서 키 성장은 중요한 이슈일까? 베트남 전역에서 불고 있는 키 성장 열풍은 국가 차원의 관심이 반영돼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활 수준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상징적 선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평균신장은 국민의 영양 상태와 건강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일반 국민이 복잡한 경제지표를 보지 않더라도 젊은 세대의 큰 키는 국가 발전의 변화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표상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한 식량 부족으로 1988년까지 300만명이 기아에 허덕였던 베트남 기성 세대에게는 쑥쑥 자라나는 젊은 세대가 국가의 밝은 미래로 보일 수밖에 없다.

자녀 키 성장에 돈 아끼지 않는 베트남 부모들

2023년 6월 베트남 언론매체 ‘브이엔 익스프레스(VN Express)’는 ‘자녀의 키 크기 운동을 위해 수천만동을 지출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피트니스센터에는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시키는 부모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일반 공장 노동자의 급여가 한국돈으로 30만원이 채 안 되는 베트남에서 1회에 3만원이 넘는 운동을 시키는 부모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또 다른 베트남 언론 ‘베트남 넷(Vietnam Net)’은 자녀들에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게 하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칼슘과 비타민을 먹여도 키가 크지 않는다며 전문의 상담을 통해 성장호르몬 주사라는 확실한 방법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 말미에는 베트남에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라도 맞추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부모의 모습도 보여준다.

베트남에서는 연령이 낮아질수록 키 성장 욕구는 치열하다. 1~3세 아이들이 먹는 분유에도 키 성장 기능을 강조한 제품들이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베트남의 현지 기업인 비나밀크와 누티푸드가 키 성장을 우회적으로 표기한 ‘그로 업(Grow Up)’ 명기를 통해 다양한 키 성장 분유를 제조 판매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자체 브랜드뿐만 아니라 스웨덴, 일본 브랜드도 수입하며 차별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는 일동후디스의 하이키드가 베트남 엄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으로 출장 간다고 하면 영유아가 있는 베트남 지인들이 일동후디스 분유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베트남에 정식 수입되기 전부터 입소문이나 보따리상들을 통해 비공식 유통되던 제품들이 정식으로 수입되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회사 자체적인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약 400억원가량이 베트남에서 판매됐다.

베트남 국민 기업의 우유 나눔 활동

베트남 1위 우유 회사이자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국민기업인 비나밀크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키 성장을 위한 사회공헌활동도 열심이다. 도시와 농어촌 산간 아이들이 차별 없이 키가 커야 국가도 성장할 수 있다는 취지로 ‘솟아라 베트남(Vuon Cao Vietnam)’이라는 캠페인을 2008년부터 17년째 진행하고 있다. ‘100만 잔의 우유’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행사를 통해 빈곤 아동들, 성장 발육이 부진한 산간지역, 특히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우유를 선물하고 있다. 현재까지 50만명의 아이들에게 2000억동(약 110억원)가량의 우유를 선물했는데 더 많은 아이가 도움이 필요하다. 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어떤 사회공헌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필자는 이 행사에 적극 관심을 두기를 권한다. 베트남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한국 기업들이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40) 키가 경제다? 베트남에 부는 ‘키 크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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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젊은 세대들의 키가 커지면서 소비재 시장에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다. 우선 사람들의 먹는 양이 달라졌다. 올해 베트남 1위 라면 업체인 에이스쿡의 대표상품인 하오하오는 기존 75g에서 100g으로 33% 증량한 봉지라면을 출시했다. 한국 봉지라면의 중량이 120g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보다는 여전히 적은 양이지만 베트남에서는 파격적인 변화다. 비나밀크 역시 180㎖였던 멸균우유 팩을 250㎖로 38% 증량한 제품을 출시하고 메인 상품으로 집중하고 있다. 1995년 오리온 초코파이가 처음 베트남에 진출했을 때만 하더라도 초코파이 1개는 출출할 때 먹는 식사 한 끼 대용품으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베트남 청소년들은 2개는 먹어야 양이 찬다고 말한다.

베트남 책상과 의자의 크기도 달라지고 있다. 2023년 10월 베트남 교육훈련부는 과학기술부, 보건부, 베트남 교육과학연구소와 협력해 학생들의 실제 신체 상태에 맞게 책상과 의자의 규격을 조정하고 개정할 계획을 발표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의 테이블도 달라지고 있다. 베트남 식당의 4인용 테이블은 한국인 4명이 앉기에는 다소 비좁았으나 이제는 베트남 젊은 세대에게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 생긴 식당들의 테이블은 전보다 넓어지고 있다. 사람이 커지고 가구가 커지면 보다 넓은 집에서 살게 된다. 베트남 패션 업계도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게 선호하는 옷의 크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체격 자체가 달라지면서 기존과 다른 취향의 옷차림과 유행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적도 향상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2000년대 전후로 평균신장이 커지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베트남도 그 모습이 예측된다. 10년 후에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을까.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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