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전·노’는 되고 김재규는 안 되는···방첩사의 퇴행적 뿌리 찾기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2024.11.11

국군방첩사령부. 국군방첩사령부 제공

국군방첩사령부. 국군방첩사령부 제공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가 내란죄 등으로 처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존영)을 본청 건물 복도에 다시 게시하면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은 걸지 않아 논란이 인다. 두 전직 대통령은 방첩사의 전신인 국군 보안사령부의 20대와 21대 사령관을 지냈다. 김 전 중정부장은 16대 보안사령관이다.

방첩사는 1948년 5월 조선경비대의 정보처 특별조사과로 출발해 특무부대와 방첩부대 보안사령부를 거쳐 기무사령부, 안보지원사령부, 방첩사령부로 이어졌다. 역대 사령관의 사진은 군 보안·방첩·수사 부대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방첩사는 여기서 16대 사령관의 역사를 지운 것이다.

방첩사 역대 사령관의 사진이 처음 논란이 된 것은 2005년 5월 기무사의 국방부 기자단 초청 행사에서였다. 당시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에 있던 기무사 1층 대회의실에서 기무사 간부들과 기자들이 간담회를 했다. 이때 대회의실 양쪽 벽면에 걸린 역대 사령관의 사진에서 16대 김재규 사령관의 사진이 없다는 것에 주목한 김정곤 한국일보 기자가 ‘기무사 부대史 김재규 공백’이라는 단독기사를 썼다.

방첩사의 ‘향수병’

방첩사 역대 사령관의 면면을 보면 각종 비리 행위로 역사와 법의 심판을 받은 인물이 상당수다. 2대 사령관은 전역 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 예비역 중장이다. 5대 사령관인 김창룡 예비역 육군 중장은 일제강점기 헌병경찰 통치의 대표적인 ‘앞잡이’로 악명 높은 인물이다. 그는 1941년 일본 관동군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하다 헌병 오장(伍長)으로 특진했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배후로 거론됐고, 특무부대장을 지냈다. 경기도 안양 사설 묘역에 있던 그의 묘는 1998년 기무사의 노력으로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됐다.

이철희 사령관은 부부사기 사건의 당사자인 장영자씨 남편으로 물의를 빚었다. 전두환·노태우 사령관은 대법원으로부터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받았다. 39대 배득식 사령관은 댓글 공작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기타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은 이도 여럿 있다.

군사정부 시절 보안사령부는 ‘절대권력’이자 공포와 억압정치의 상징이었다. 그래도 역대 방첩사령관의 사진은 기록물이란 의미가 있기에 전두환·노태우 전 사령관이 여기에 포함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만 뺀 것은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방첩사의 선택적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방첩사 역대 사령관 사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역대 사령관 사진을 걸려면 모두 다 걸고, 빼려면 적어도 일정 기준 이상의 법의 심판을 받았을 때라는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취재하다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사진은 그가 거쳤던 부대에서도 빠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영관 장교들조차 김 전 중정부장이 장군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인 줄 아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김 전 중정부장은 육군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지냈다. 심지어 부대 역사 문서에서도 그의 이름에 검은색을 칠해 이름조차 발견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내부 제보를 받았다. 육군은 이에 관한 확인을 거부했다.

반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쳐 간 부대는 역대 부대장 사진 중 두 사람의 사진에 봉황 문양을 특별히 부착했다. 이들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인사들의 사진도 다 걸려 있었다.

필자는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은 기무사뿐만 아니라 그가 지휘했던 부대에서조차 빠져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역대 부대 지휘관 사진에 대한 차별 없는 명확한 기준을 적용하라고 육군 수뇌부를 만나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군 간부들 사이에서는 일정 기간 이상 금고형으로 처벌된 경우 역대 부대장 사진 대신 이름과 재임 시기만 적어 놓아 후배 장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국군방첩사령부 마크

국군방첩사령부 마크

위험한 ‘모래성’

참모총장을 비롯한 육군 수뇌부가 처음에는 내 의견에 공감해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 게시를 검토했지만, 나중에는 일부 예비역 장성들의 압력으로 이 문제를 외면했다. 그러면서 국방부 핑계를 댔다. 국방부 차원에서의 지시나 지침이 있으면 모를까, 육군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는 신군부 반란이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했다고 여기는 선배 장군들을 의식한 탓이었다. 예비역 장군들 가운데는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이 다시 내걸리면 ‘군이 정권을 창출했다’는 자부심과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었다.

국방부와 육군에 근무하는 장군들 처지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사진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였다.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기무사는 2018년 초 정치 중립 준수를 선언하면서 김 전 사령관 사진을 부대 내에 다시 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프레스 가이드라인(PG)’을 작성해 국방부에 보냈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기무사 예비역 장성들의 시비성 전화가 잇따랐고, 기무사는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을 거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고 입장을 180도 뒤집었다.

결국 육군과 기무사의 소극적 태도에 공군 출신인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과 고위 민간공무원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는 2019년 4월 역대 지휘관 사진물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담은 ‘국방부 장관 및 장성급 지휘관 사진 게시 규정 등 부대관리훈령 개정(안)’을 육·해·공군 예하 부대에 하달했다. 역사적 기록 보존이 목적이면 역대 지휘관 사진은 (차별 없이) 게시토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김 전 중정부장의 이름과 사진은 40여 년 만에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지휘관 명단에 올라갔다. 국방부는 “군 역사를 군 일부 세력의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2022년 11월 방첩사가 개청하면서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을 다시 빼기에 이르렀다. 김 전 중정부장이 군단장을 지낸 육군 3군단에서도 사진이 내려졌다. 이는 국방부의 부대관리훈령 취지를 위반한 것이다. 유족이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을 내린 방첩사와 육군의 행정 처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종배 예비역 육군 중장(육사 36기)은 “역대 지휘관 사진은 차별 없이 모두 걸려야 한다”며 “부대원들은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거기에서 나름대로 교훈을 찾으면 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방첩사)의 하드웨어를 바꾸기 위해 규정까지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방첩사령부원들의 정신, 즉 소프트웨어가 변하지 않은 탓이다. 역대 부대장 사진을 거는 문제에서조차 퇴행하는 방첩사라면 미래가 암울하다. 방첩사의 법적 근거는 국군조직법 제2조 제3항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하에 합동부대와 기타 필요한 기관을 둘 수 있다”로 돼 있다. 이는 수년 후 바뀌는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단초는 역대 부대장 사진 한 장이 될 수도 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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