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북극을 찾았을 때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섬에서 스피드보트를 타고 빙하지대로 향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빙하지대를 향해 바다를 가르는데 북극해의 찬 기운이 끊임없이 보트 위로 날아든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멀게만 보이던 빙하지대가 눈 앞에 펼쳐지자 빙하 끝자락 빙벽에 가로막힌 파도가 잠시 숨을 죽인다. 보트 주위로는 크고 작은 얼음덩어리가 둥둥 떠다닌다. 잠시 후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보이고 이어서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가 초속 330m이다 보니 빙벽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내겐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가 엇갈려 인식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북극은 해빙과 빙하의 급격한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물범류는 얼음이 녹지 않은 더 먼 북쪽으로 이동했고,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 북극곰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 멸종위기를 맞고 말았다.
빙벽이 무너질 때 얼음덩어리와 함께 북극해로 흘러들어온 흙덩이는 바다를 흙탕물로 만들고, 무너진 빙벽 곳곳에는 순백의 피부에 난 찢긴 상처처럼 암벽과 지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트를 운전한 현지 탐험가는 해가 갈수록 빙하의 높이가 낮아지고 빙벽이 후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랜 세월 북극해에서 보트를 운항한 베테랑이지만 바다를 가득 메운 얼음덩어리를 헤쳐나갈 때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신중한 조종에도 이따금 얼음덩어리들이 보트에 부닥치며 내는 파열음이 상처받은 북극의 비명처럼 가슴을 울렸다.
<박수현 수중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