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베트남, 남북 긴장 완화의 해결사 될까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2024.11.04

지난 8월 12일 또 럼 베트남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베트남 주석궁에서 리성국 북한대사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VNA

지난 8월 12일 또 럼 베트남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베트남 주석궁에서 리성국 북한대사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VNA

‘한국전쟁 재발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지난 10월 7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에 한반도의 전쟁 발발 위험을 경고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최근 북한이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핵무기와 이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크게 강화한 것을 우려했다. 또한 올해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군사 충돌 가능성도 제기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남북 회담이나 교류사업, 경제협력을 담당해온 관계기관을 폐지하는 등 소통 창구를 없애버렸다. 윤석열 정부 역시 정권 출범 때부터 북한에 대화보다는 강경한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어 남북관계는 심각한 상황이다. 과거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달래주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럴 여력이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역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때문에 한반도에 신경 쓸 틈이 없다. 마주 보고 달려드는 기차 같은 남북관계에 중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어쩌면 베트남이 이 문제를 풀어줄 해결사가 될지도 모른다.

베트남은 북한의 정치·경제·외교적 롤모델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낙점된 것은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개혁·개방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 레당 도안은 2019년 2월 CNBC와 인터뷰에서 ‘북한은 지난 3년간 베트남의 개혁·개방을 공부했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진작부터 엘리트 집단인 김일성대와 김책공대 학생들에게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을 배우게 했다. 베트남 고위 공무원이 북한으로 가서 강의도 하고 북한 고위관계자와 대학생이 베트남으로 직접 가서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베트남은 시장 개방과 국외 자본 유치에 적극적이면서도 공산당의 권력은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싶은 북한 처지에서는 베트남이 이상적인 롤모델이다. 무엇보다 북한과 베트남 모두 중국에 종속되기를 극도로 경계하기에 김정은 위원장에게 베트남식 개방 모델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10년 넘게 전쟁을 한 ‘철천지원수’ 미국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수용하고 관계 개선을 해 빠른 경제 성장을 하는 베트남의 경험도 전수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베트남은 북한의 정치적·경제적·외교적 롤모델이다. 북한에 무력 도발이 아닌 개혁경제가 살길이라고 진실하고 신뢰성 있게 조언해줄 수 있는 국가는 베트남밖에 없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39)  베트남, 남북 긴장 완화의 해결사 될까

1975년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한 미국의 경제 보복은 가혹했다. 베트남은 전쟁이 끝난 직후 세계은행과 IMF 회원국이 됐지만 어떤 기구로부터도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1978년 캄보디아에 이어 중국과 전쟁까지 치러야 했다. 베트남이 지금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쌀 수출국이지만, 1988년까지만 하더라도 쌀이 부족해 300만명이 기아에 허덕였다. 베트남이 내부적인 논란 속에서도 개혁·개방을 결정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다. 국제사회 요구에 따라 10년 동안 캄보디아에 주둔하고 있던 10만명의 베트남 군대도 과감하게 철군했다.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을 베트남은 받아들이고 세계 무대에 나섰다. 1989년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베트남 화폐 가치 폭락으로 1인당 국민 소득은 96달러에 불과했는데, 2023년에는 4347달러로 35년 동안 450배 성장했다. 미국과의 교역액도 1995년 4억5100만달러에서 2023년 1240억달러로 276배 성장했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6~7%의 고성장을 이룬 베트남과 달리 북한은 1988년 1000달러 내외이던 1인당 GDP가 2023년에는 되레 500달러 미만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은 평양을 방문한 뒤 곧바로 하노이를 찾아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한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따르면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이 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모두 베트남식 개방 모델에 합의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이런 기대가 무너졌다.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던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가 됐다.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깜짝 회담하며 다시 물꼬를 트는가 싶었지만, 코로나19 유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로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베트남, 남북 양쪽과 우호적인 관계

한국과 북한은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 남북관계가 극단적으로 치달아 양쪽이 대화조차 하기 어렵다면 베트남을 통해 관계 개선을 시도해야만 한다. 지난 30년간 베트남에 투자한 외국인 중 한국인이 가장 많다. 현재 9000여개의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고, 약 17만명의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살고 있다. ‘사돈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많은 베트남 여성이 한국에 정착하는 등 한국에 약 22만명의 베트남인이 살고 있다. 한국과 북한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연결된 나라는 드물다.

최근 북한이 베트남과의 관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남북문제에서 베트남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3월 15일 김성남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이 대표단을 이끌고 베트남을 방문해 레 화이 쭝(Le Hoai Trung) 베트남 대외부장과 회담했다.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민간교류 협력이 주요 의제였지만, 전쟁도 불사한다는 북한의 움직임에 전 세계가 주시했다. 지난 8월 12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5년 동안 공석이었던 주하노이 북한대사로 리성국을 임명해 또 럼(To Lam) 베트남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출했다. 지난 9월 9일에는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이 베트남을 방문해 부이 타잉 썬(Bui Thanh Son)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과 회담했다. 지난 9월 18일 황 쑤언 치엔(Hoang Xuan Chien) 베트남 국방부 차관과 공산당 중앙위원, 중앙군사위원 등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김민석 북한 국방성 부상(차관)과 회담했다. 지난 8월 15일 베트남 국영방송 VTV는 “북한이 올해 말 외국인 대상 관광을 재개한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뉴스’는 “스키장이 있는 삼지연을 포함한 북한 전역이 대상”이며 “베트남 여행사들은 2025년부터 북한 관광 고객 모집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도 불사한다는 북한이 동맹국 베트남 국민을 상대로 관광객을 모집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 북한이 한국에 오물풍선을 보내고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소리 높이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신에게 관심을 달라는 울부짖음이다. 대화 채널이 단절된 채 극심하게 경색된 남북관계에 베트남이 중재자로 나서주길 바란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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