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가리-재미와 무책임 사이…한국적 캠프 코미디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4.10.28

결과가 좋다면 생생한 현실감이라고 칭찬받을 수 있지만, 관객들에게는 생소함을 넘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한국 상업 영화의 수준을 하향 평준화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혹독한 평가도 존재한다.

/시네마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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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빚가리(DEBT)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76분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고봉수

출연: 문용일, 고성완, 승형배, 장동우

개봉: 2024년 10월 1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키치(Kitsch)란 단어는 기이하고 저속한 ‘나쁜 미술’의 미적 가치라고 정의된다. 고급문화를 흉내 내는 저급문화를 일컫는다. 조악하고 기괴한 싸구려 미술품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이 단어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문화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제작 규모나 완성도 면에서 관객들의 보편적 기대치를 밑도는 작품들을 볼 때 키치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유명작품이나 흥행작을 대놓고 조악하게 흉내 내고 유사한 제목을 붙여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목버스터(Mockbuster)’가 이에 해당한다. 목버스터를 전문으로 만드는 미국의 디 어사일럼(The Asylum) 영화사가 내놓은 <트랜스포머>(Tranformers)의 아류작 <트랜스모퍼>(Transmorphers)나 <트위스터스>(Twisters)를 재빠르게 흉내 낸 <더 트위스터스>(The Twisters) 등이 대표적 예다.

언제부턴가 ‘불가피한 조악함’이 아닌, 애초 기획부터 촌스럽고 유치한 ‘의도된 조악함’을 지향하며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B급 감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은 캠프(Camp)라는 말로 따로 분류한다.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두 단어의 차이를 그냥 간단히 정리하자면 창작자가 애초 작품에 담긴 조악함을 의도했는가(캠프), 하지 않았는가(키치)로 판단할 수 있겠다.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10대 영화광

고봉수 감독은 이력부터 범상치 않다. 10대부터 영화광이었던 그는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보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대학 진학은 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미국 시카고에 머물며 카메라를 빌려 찍은 단편영화로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본격적인 연출의 길에 들어섰다.

2016년 발표한 장편 데뷔작 <델타 보이즈>가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제21회 인디포럼 올해의 관객상,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건지상, 전북영화비평포럼상 등을 수상하며 독립영화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튼튼이의 모험>(2018), <다영씨>(2018), <갈까부다>(2019), <우리 마을>(2019), <근본주의자>(2020), <습도 다소 높음>(2021)까지 말 그대로 혈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그가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신작을 내놓았다.

홍민(문용일 분)은 ‘돌뼈나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에서 혼탁한 세상에 맞서는 나름의 생존법을 배우고 있다. 그런 아들이 철없는 백수로만 보이는 아버지 대복(고성완 분). 어느 날 대복이 운영하는 구멍가게에서 300만원이 넘는 담배 외상을 한 건달 원창(승형배 분) 때문에 대복 부자의 관계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독립영화보다는 다양성 영화

고봉수 감독의 영화는 기존의 대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진 매끈한 상업 영화를 보던 관객들에게는 습작이나 만들다가 만 것 같은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코미디 장르에 국한된 그의 영화들은 서사의 완결성보다는 재미있는 상황을 모아놓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이런 각각의 상황 역시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와 연출보다는 배우의 즉흥적 순발력과 기지에 크게 좌우된다. 애초 제작 환경의 열악함 때문이건, 배우들 연기를 너무 신뢰한 감독의 소극적 연출이든 이런 작업을 통해 도출된 거칠고 투박한 결은 작품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지점에 머무는 이상한 무언가로 보이게 만든다.

결과가 좋다면 생생한 현실감이라고 칭찬받을 수 있지만, 기성 극영화의 전통과는 뚜렷이 다른 이런 형태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생소함을 넘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한국 상업 영화의 수준을 하향 평준화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혹독한 평가도 존재한다.

이번 작품 <빚가리> 역시 그가 만든 일련의 영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품에 관한 평가의 호불호는 이번에도 뚜렷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하다. 이런 작품들 역시 감독을 비롯한 다수 제작진의 노력으로 탄생한 결과라는 점. 더불어 최근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소위 ‘다양성’이란 화두는 그리 거창한 개념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듯, 한술 더 뜨는 백승기 감독

/www.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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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수 감독과 함께 현재 독립영화계의 코미디를 이끄는 또 한 축으로 백승기 감독을 꼽을 수 있다. 2022년까지 미술 교사로 일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는데, 그의 작품 역시 소규모 제작비로 인한 형식적 조악함을 숨기지 않고 되레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고봉수 감독의 영화와 비슷해 보인다.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배우들과 스텝들과의 친목 관계를 지속하며 작업함으로써 일종의 ‘사단’ 형태로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반면 고봉수 감독의 작품들이 결말에 이르러 도출되는 페이소스(Pathos)를 중요시하는 것에 비해 백승기 감독의 작품들은 훨씬 자유로워 보인다.

실제로 데뷔작 <숫호구>(2014)를 발표한 이후 내놓은 작품들은 <시발, 놈: 인류의 시작>(2016·사진), <수시로 히어로>(2018), <오늘도 평화로운>(2019), <인천스텔라>(2021), <잔고: 분노의 적자>(2023) 등 제목만 봐도 장난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오늘도 평화로운>에서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을 ‘중국 본토 예첸성 한인 관광특구’라는 자막 하나로 중국으로 탈바꿈시킨 기지는 두고두고 회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유명 영화의 패러디 쪽으로 확고히 노선을 정한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는 초기만큼 참신한 발칙함을 찾을 수 없고 가벼워만 졌다며 아쉬워하는 관객들이 꽤 눈에 띈다.

대부분 작품이 인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일단 감독이 태어나고 자라 익숙한 만큼 제작비를 아끼는 고육지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발로로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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