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현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을 저지하기 위해 2차로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또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10월 21일 영풍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낸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고려아연이 지난 10월 4일부터 오는 10월 23일까지 자사주를 주당 89만원에 공개매수한다고 하자 이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로 가처분을 신청했다.
최 회장 측은 자사주 매수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은 ‘주권상장법인이 상법 제341조 제1항이 규정하는 방법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경우에는 이사회 결의로써 자기 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공개매수가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도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자사주 매입이 배임이라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주장에 대해서도 “매수한 자기 주식을 전부 소각하기로 한 이상 이를 업무상 배임행위라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또 “상법 및 자본시장법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거나 선행 공개매수가 있었던 경우 자기주식 취득을 금지하는 규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개매수 목적에 경영권 방어가 포함돼 있어도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법원 결정에 따라 고려아연은 오는 10월 23일까지 예정된 자사주 공개매수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이날 법원의 기각 결정 직후 “자사주 공개매수를 완료한 뒤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겠다”고 밝혔다.
현재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지난 10월 14일 끝난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고려아연 지분율은 38.47%다. 최 회장 측은 우호지분인 베인캐피털이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지분율을 36.49%까지 올릴 수 있다. 양측의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아 임시주주총회까지 표 대결을 두고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의 지분 7.83%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 10월 18일 국정감사에서 고려아연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세운 회사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경영을 담당하고 있다.
2022년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최씨 일가와 영풍그룹 장씨 일가 간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지면서 두 회사는 경영권 갈등을 빚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이날 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이 나온 뒤 “우리 입장은 고려아연의 이번 자기주식 공개매수가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서 이사의 배임에 해당하며 회사가 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적립한 임의준비금을 이사회 결의만으로 전용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가처분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함과 동시에 향후 손해배상청구, 업무상 배임 등 본안소송을 통해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에 대해 자기주식 공개매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속한 결정을 요했던 금번 가처분의 경우와는 달리 향후 본안소송 단계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문제점과 위법성을 명백히 밝힐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최대주주로서 노력의 일환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자본시장 구성원으로서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는 소명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앞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서겠다며 이 매수 기간(지난 9월 13일~10월 4일) 동안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도록 해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지난 10월 2일 기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