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노벨문학상 수상’ 열기로 뜨겁다. 수상 발표 당일인 지난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어요. 한국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즉 ‘얼마나 책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느냐’는 특정 개인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정신적인 토양을 결정짓는다. 그러니 도서관과 서점이 얼마나 가까이에서 끊임없이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는 공간으로 존재하느냐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이른바 ‘한강 신드롬’ 덕에 며칠 만에 한강 작가가 쓴 소설과 시집이 100만 부 넘게 팔렸다. 게다가 위기에 처했던 인쇄소들이 주말 내내 특근에 들어갈 정도로 정신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신드롬이 ‘한강’ 너머 더 넓은 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문사회 분야의 영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에 따르면 사람들은 한강 작가가 쓴 책을 살 뿐이다. 작가가 고통스럽게 천착해 온 국가폭력이나 가부장제에 대해 다룬 어떤 책들도 시너지 효과를 맛보진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 예산 60억원을 전액 삭감했고, 출판·도서 관련 예산에서 총 105억원을 없앴다. 그야말로 ‘책 읽지 말라고 겁박하는 사회’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이런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대형서점과 인터넷 도서 쇼핑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도서 유통과정의 모순도 드러났다. 비수도권의 여러 작은 서점이 도매상을 통해 한강 작가의 책들을 주문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단 한 권도 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반면 대형서점과 알라딘 등 온라인서점에선 하루 이틀을 제외하곤 큰 문제 없이 유통되고 있다. 심지어 쿠팡에서 지금 <흰>이나 <희랍어 시간>을 주문하면 바로 내일 배송받을 수 있다.
시민들이 동네에서 책을 접할 수 있었던 작은 도서관들을 없애는 지자체도 있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는 아파트단지 내 공립 작은 도서관 5곳에 주는 보조금을 10분의 1로 대폭 삭감한 바 있다. 올해는 ‘호수공원 작은 도서관’ 등 작은 도서관 4곳을 폐관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시가 운영 지원하던 공립 작은 도서관 수가 16곳에서 7곳으로 줄어든다.
고양시 공립 작은 도서관 폐관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이 조사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고양시의 작은 도서관들은 규모·시설·예산 모두 적지만, 연간 이용자 수는 전국 평균보다 2.64배 많고, 대출 권수도 3.33배라고 한다. 그러니 “이용률과 도서 대출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효율성 차원에서 지원 중단을 결정한 것”이라는 고양시청 관계자의 말은 시민들을 속이는 기만이다.
‘책 읽는 사회’를 위한 토양 구축에 ‘효율성’ 잣대를 들이대는 게 타당할까? 가뜩이나 최근 공공도서관들은 도서 구매 예산을 대폭 줄여 신간 입고가 줄어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 예산 60억원을 전액 삭감했고, 출판·도서 관련 예산에서 총 105억원을 없앴다. 그야말로 ‘책 읽지 말라고 겁박하는 사회’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이런 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계속 이렇게 책에 대한 시민의 접근권과 공공성을 훼손한다면, 이번 신드롬은 옛날이야기로만 남을 것이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