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관리사 시행 한 달 만에 한계 노출…개선안 내놔도 우려 여전
‘교육 수당 체불, 밤 10시 통금, 일부 가사관리사 이탈.’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서울시와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임금을 월급으로 받을지, 월에 2회로 나눠 받을지 가사관리사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통금을 없애기로 했다. 고용불안의 원인이던 종전 7개월의 짧은 체류기간도 최종 3년까지 연장하는 안도 추진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시행 한 달 만에 적지 않은 폭으로 수정됐다. 이는 애초 이 사업이 충분한 검토 없이 시행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사관리사들의 임금수준 등 핵심 원인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돌봄비용을 낮추려는 의도로 시행된 시범사업은 임금수준을 낮추면 가사관리자들이 이탈하고, 임금수준을 높이면 사업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지는 딜레마에 빠졌다. 시민사회는 어느 쪽이든 최저임금 언저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 임금수준 딜레마가 돌봄 노동의 적정한 가치를 논의할 사회적 공간마저 위축시켰다고 본다. 남은 우려를 살펴봤다.
노동시간 적고, 임금은 낮고
숙소에서 이탈했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은 지난 10월 4일 부산의 한 숙박업소에서 검거됐다. 이들은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1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숙소에서 이탈했다. 지난 9월 3일 배정된 가정에서 일을 시작하고 12일 만이었다. 법무부는 이들을 조사한 후 강제퇴거할 방침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공동체 카사마코는 지난 8월 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입국한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카사마코에서 활동하는 존스 갈랑 오산이주민센터 소장은 이들이 이탈하게 된 이유를 4가지로 꼽았다.
“이탈의 첫째 원인은 고용 불안정이다. 한국에 7개월만 체류하게 돼 있는데, 7개월 뒤에는 한국에 더 머물 수 있을지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월급이 적은 것도 원인이다. 200만원 이상을 받는다는 약속을 듣고 왔는데 지켜지지 않았다. 거기다 숙소는 너무 비싸다. 밤 10시 통금도 문제다. 이 사람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많은 돈을 썼다. 한국어를 배우고, 교육을 받으려고 최소 3개월은 마닐라에 머물렀다. 3개월 동안 쓴 돈이 1500달러(약 200만원) 정도 된다. 대부분 돈을 빌려서 지불했으니 다달이 이자도 있다. 만약에 다른 데 가면, 불법(으로) 가면 240만원은 받는다. 그쪽은 노동시간이 길지 않나. 필리핀에서 빌린 돈을 갚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도망가는 것 말고.”
이들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는 지난 10월 6일 시범사업 개선안을 내놨다. 숙소에서 밤 10시면 가사관리사들의 귀가를 확인하던 것을 폐지하고, 7개월간의 시범사업 종료 후 심사를 통해 체류기간을 3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일부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가사관리사들이 기대하는 수입을 보장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최저임금이 적용돼 시간당 9860원을 받는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했다면 월급은 주휴수당을 포함해 206만원가량이다. 이용 가정이 내는 돈은 4대 보험료 등을 포함해 시간당 1만3700원으로 월 238만원이다. 호출형 서비스의 특성상 가사관리사들의 노동시간은 매칭된 가정의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9월 30일을 기준으로 직전 1주 동안 40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가사관리사는 13명에 달했다.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은 “노동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일정하게 맞출 수 있다면 대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 특성상 노동자한테 시간을 맞춘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실제로 손에 쥐는 소득은 더 적다. 이들의 숙소는 월세가 비싼 서울 강남구에 있다. 관리업체가 숙소비, 통신비, 교통비 명목으로 매달 공제하는 돈만 53만원가량이다. 서울의 비싼 물가를 고려하면 생활비 지출도 클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시범사업이 제공하는 가사관리사 일자리는 매력적이라 보기 어렵다. 통계청의 ‘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동일한 비전문취업 비자(E-9)로 국내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66.5%는 2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았다. 300만원 이상을 받은 사람이 31.6%였고, 200만원 미만을 받은 사람은 1.9%에 그쳤다. E-9 취업자들의 63.3%는 주 40~50시간을 일했고, 주 50시간 이상 일한 사람도 35.6%에 달했다. 주 40시간 미만은 0.5%에 그쳤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임금과 노동시간 모두에서 E-9 취업자들의 평균을 밑도는 셈이다.
소득 대비 지출 비중을 따져보면 편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E-9 취업자들의 총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의 비중은 평균 2.6%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약 20%)보다 크게 낮았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대안이 최저임금 회피?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지속해서 추진 중이다. 국내 이주노동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이탈 우려가 더 커질 방안을 시범사업의 대안으로 보는 셈이다. 서울시는 지난 1월 법무부와 고용노동부에 보낸 공문에서 특정활동(E-7) 비자에 외국인 가사관리사 항목을 별도로 신설해 개별 가정이 이들과 고용계약을 맺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러면 가사관리사는 개별 가정과 사적 계약을 맺는 가사사용인이 돼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기에 최저임금 적용도 피해갈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외국인 가사관리사 고용 비용이 월 100만원을 밑도는 홍콩, 싱가포르 사례를 언급하며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대부분 중·저소득층에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 시장의 말대로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려면 국내법 개정은 물론이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도 탈퇴해야 한다. 한국은 인종, 출신국 등에 따라 노동자를 차별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는 ILO 차별금지협약을 비준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최저임금 제도가 없고, 홍콩은 ILO 차별금지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준 준수 조항은 일부 선진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도 포함돼 있어 무역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면 이탈 우려는 더 커질 수 있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최저임금 미적용이) 현실화하면 지옥문이 열릴 수 있다. 산업인력공단의 해외지사를 통해 공적 과정을 거쳐 인력이 송출되는 E-9비자와 달리, E-7은 법무부가 비자만 발급해 브로커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까지 오는 과정에 발생하는 수수료가 커지게 되고, 수수료를 벌기 위해 일단 입국한 뒤 이탈할 유인이 커지게 된다”고 했다. 법무부와 노동부도 신중하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은 “여기서 임금을 낮추면 더 많은 이탈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법무부가 고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탈자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준비 없이 출발한 시범사업은 한 달 만에 한계를 노출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용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개인 돌봄 서비스는 1대1 서비스이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 비용이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가 영향을 더 미친다. 외국인 고용정책에서 기본 조건은 외국인 고용을 원하는 사업주들의 수요인데, 이 사업에 서비스 이용자들의 확실한 수요가 존재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