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청년들은 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문을 걸어 잠갔을까. 그리고 이들이 어렵사리 사회 복귀 의지를 가질 때 우리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 고립은둔을 끝내고 사회 복귀를 모색하는 청년들과 이들을 돕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무 살, 성년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떼는 나이. 김다현씨(가명·27)는 바로 그 스무 살에 ‘고립’을 택했다.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김씨는 그러지 못했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홀로 재수를 준비했다.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가족 외 친구들과의 연락은 끊었다. 재수는 삼수, 사수가 됐고 은둔과 고립은 6년간 이어졌다.
“자아가 없는 인형 같았어요. 우울이 심해서 집중이 안 되는데 그냥 공부하는 척만 하고 있었어요. 나중에는 그냥 다 포기했고, 난 이렇게 평생 집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죽음에 관한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일하거나 재학 중이 아니면서 진학·취업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 ‘쉬었음 청년’이 늘고 있다. 자신의 활동상태를 묻는 말에 ‘쉬었음’을 택한 이들을 일컬어 ‘쉬었음 청년’이라고 한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1일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쉬었다고 답한 청년(15~29세)은 46만명.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만6000명 늘었고, 전월보다 1만7000명 많다.
‘쉬었음 청년’ 중엔 진학과 구직의 문턱에서 잠시 재충전을 하는 사례도 있지만, 쉼이 장기화하면서 고립과 은둔의 단계에 이른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가족 외 타인과의 의미 있는 교류가 없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는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는 청년인구는 54만명(19~34세 인구의 5%)으로 추정된다. 방이나 집 등 제한된 공간에 자기 자신을 가두며 은둔하는 청년들도 포함된 숫자다.
‘고립은둔청년 54만명’은 한국사회의 불건강성을 드러내는 지표다.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해 소수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의무교육이 끝난 뒤 대학진학, 취업 등의 과업을 수행해내지 못한 청년들은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고, 실패 앞에서 자기 탓을 하기 일쑤다. 청년의 실패는 종종 부모의 실패로 여겨져 이들은 가족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가족 간 불화나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으로 마음의 상처가 누적된 경우엔 작은 실수 앞에서도 움츠러들고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한다.
고립은둔청년들은 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문을 걸어 잠갔을까. 그리고 이들이 어렵사리 사회 복귀 의지를 가질 때 우리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 고립은둔을 끝내고 사회 복귀를 모색하는 청년들과 이들을 돕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김다현씨가 은둔생활을 끝낸 계기는 암 투병 중이었던 막내 이모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본 엄마의 눈물이었다.
“막내 이모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마른 몸으로 저를 꽉 안아주셨어요. 아무 얘기 없이 그냥 안아주셨는데 너무 포근했어요. ‘나를 이렇게까지 반겨준다고?’라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가족들도 저를 안아준 적이 없었거든요.”
김씨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죽음을 생각하던 아이였다. 학교에서 심리검사를 받으면 늘 추가검사 권유가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추가검사와 상담은 받지 못했다. 막내 이모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여러 생각을 했다. 처음엔 “죽고 싶다는 못된 생각을 하는 나를 데려가지 왜 이모를 데려갔을까”라고 생각하다가 통곡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다른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저희 엄마가 원래 그렇게 우는 분이 아니거든요. 내가 지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엄마랑 이모한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구나. 일단 살자, 살자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살자’고 다짐한 뒤 김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자격증 공부였다. 학점은행제도를 통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고 지역 아동복지센터에 실습을 나갔다. 큰 용기를 내서 세상 밖으로 나갔건만, 예상치 못한 문제와 맞닥뜨려야 했다.
“복지센터 운영하는 분이 교회 목사셨는데, 그분 권유로 교회를 다녔지만 저는 도저히 신앙심이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 컸어요. 그런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이쪽(사회복지사 업계)을 꽉 잡고 있으니 나에게 밉보이면 타격이 있을 거다.’ 그곳을 도망쳐 나오면서 ‘아, 이쪽으로 취직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재고립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김씨에게 ‘일’은 고립의 꼬인 실타래를 풀 열쇠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살자’고 생각한 뒤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도 일이었지만, 일에서 겪은 상처로 재고립 생활을 했다. 그는 수개월 후 다시 용기를 내 고립은둔청년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해 심리상담을 받았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여러 개 이수했다. 은둔·고립청년들을 위한 일경험 프로그램도 수강했고, 우수사례로 선정돼 커피차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하지만 일반 카페에서의 일은 차원이 달랐다. 은둔했던 청년의 서툰 일 처리를 품어주는 사장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저는 지금 월 100만원만 벌어도 족할 것 같은데 일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력서를 쓸 때마다 공황이 오는데 이런 걸 도와줄 사람도 찾지 못했고요. 은둔을 끝낸 사람으로서 은둔 중인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요청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나오세요’라고 말해줄 때마다 내심 걱정이 돼요. 일을 찾지 못해서 재고립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거든요. 저의 솔직한 마음은 이거예요. ‘사회 아직 힘들어요. 믿을 만한 사람이 있긴 한데, 사회가 기다려주지 않아요.’”
은둔했던 청년들이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세상은 만만치 않으니 노력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한경쟁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그들에게 그저 ‘노력하라’는 강요는 그들을 재고립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에 대한 상상력 아닐까. 고립은둔청년들을 위한 심리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PIE나다운 청년들’의 김혜원 대표(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은둔했던 청년들은 기존의 직업세계에서 수용받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청년들에게 사회적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틈새가 있어야 해요. 고립은둔청년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경로 말입니다.”
김혜원 대표가 말한 것과 같은 ‘틈새’는 아직은 고립은둔 청년들을 돕는 단체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은둔의 경험을 이해해주는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정규직 일자리를 찾은 임지원 씨(가명·26)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임지원씨는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어느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뭔가 갇혀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학교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열일곱 살부터 군에 입대한 스물한 살까지 4년가량 집에서만 생활했다. 집에선 주로 게임을 하며 지냈고 몸무게도 10㎏가량 불었다. 살이 찌고 나서는 밖에 나가기가 더 힘들었다.
“집 앞에 나가더라도 막 누가 괜히 쳐다보는 것 같고, 친구들이 불러도 안 가게 되더라고요. 동생이랑 집 근처 PC방 정도만 나갔던 거 같아요. 그때는 진짜 문 앞에 큰 벽이 있는 것 같았어요. 나가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군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2020년 여름, 임씨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의 검정고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1년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트에서 3개월가량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 보니까 아르바이트든 무슨 일을 하든 실수했을 때 지적받고 이런 게 힘들고 낯선 환경 적응도 힘들었고요.”
임씨는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을 연락을 받고 2022년 ‘꽃길’ 프로그램(1년 과정)에 참여했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 관심사, 진로 탐색 등을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인턴으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4월부터는 카페 ‘그런, 날’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일하는학교가 운영하는 카페로 고립·위기청(소)년의 회복을 위한 일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임씨는 “여기서 일하면서 인턴 청년들에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일이 좀 재밌다”고 했다. 그는 “저도 인턴을 하면서 ‘나도 생각보다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고, 이전엔 실수할까봐 압박감이 굉장히 심했는데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도 알았다”고 했다.
“일하는학교에 온 청년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주려고 하고 있어요. 그 친구들과 제가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고 제가 먼저 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요. 선생님들이 저를 보고 그런 걸 느꼈겠지만, 그 친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좋아요.”
은둔청년을 품는 일자리를 만난 임지원씨는 운이 좋은 사례다. 통념과 달리 고립은둔청년들은 게으르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를 보면 10명 중 8명은 취업을 해 사회로 복귀하고 싶어한다. 초등학교 때 생긴 정신질환으로 인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마친 뒤 고립된 삶을 살아온 이윤미씨(가명·22)는 사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최근 고향(경북)에서 서울로 아예 거처를 옮기기까지 했다. “이제 성인이 됐으니까 정말 일하고 싶거든요. 일을 하고 싶은데, 안 돼요. 조금 쉬운 일경험부터 할 수 있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고립은둔청년을 돕는 단체 ‘씨즈’를 통해 활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이윤미씨가 김다현씨처럼 고립은둔청년을 돕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이수한다고 해도 임지원씨처럼 은둔청년을 받아들이는 일자리를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립은둔청년을 오랫동안 지원해온 민간단체에선 지지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경험과 취업 단계에서 다시 물러서거나 재고립 위기에 놓였을 때 앞서 이 과정을 모두 밟은 멘토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행해야 할 작업은 한국사회의 노동환경에 대한 반성이다. 월간 ‘노동리뷰’ 2024년 6월호에 실린 보고서 ‘청년들은 노동시장에서 왜 고립을 선택하였는가?’(조규준)를 보면, 청년들의 고립 배경으로는 ‘반복된 구직 실패로 인한 무기력감’이 꼽힌다. 이 보고서에 인용된 천안지역 청년센터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력서 20~30군데 떨어지면 멘탈(정신)이 나가거든요.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고, 내가 이때까지 한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스펙을 이만큼 쌓았는데도 안 된다고 하면 포기하고 싶어지죠.” 직장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폭력이나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경험했을 때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정서적·육체적 소진을 경험하면, 청년들은 자기 안으로 숨게 된다고 한다. 질 낮은 일자리를 통해 사람을 ‘쓰고 버리는’ 노동시장 구조가 그대로인 한 고립은둔청년들은 일자리 시장을 겉돌 수밖에 없다.
■‘일의 감각’을 회복하기
세상이 무서워 숨어버린 청년들을 품기 위해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노동시장의 변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그에 앞서 고립은둔청년들에게 당장 도움이 될 현실적인 손길도 필요하다. 고립은둔청년들을 지원해온 여러 민간단체에선 시행착오를 거쳐 대략 세 가지 범주의 도움을 주고 있다. 일상을 회복하게 하고, 비슷한 처지의 또래와 관계맺기를 유도하면서 일경험과 취업 기회를 연결하는 것이다.
경기 성남에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에서도 일을 하기까지 어려움을 겪는 위기 청년에게 3단계(일상회복-진로탐색-일과 자립)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임금노동으로서의 ‘일’을 먼저 내밀지 않는 것이다.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은 “일상회복 프로그램에는 수영장이나 놀이동산 가보기, 혼자 옷이나 화장품 사보기, 컴퓨터 배우기 등이 있는데 고립은둔청년 중엔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고 스스로 ‘이 나이에 이것도 안 해봤다’, ‘이런 것도 할 줄 모른다’ 이런 자기혐오나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일상적 경험을 쌓은 후에야 일경험으로 한 발 전진할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상회복 후엔 일경험을, 그다음엔 취업에 뛰어든다. 일하는학교에선 전 과정에 멘토가 함께함으로써 청년들이 재고립되지 않도록 돕는다.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과 오프라인 공간 ‘두더집’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씨즈’ 역시 ‘일상회복’을 첫 번째 목표로 두고 있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낮과 밤을 조금 바꿔보고, 목욕이나 요리를 한다든지, 세탁은 얼마 만에 한다든지 자신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다음 집밥 모임, 텃밭 가꾸기 등을 하면서 일상회복을 하고 소통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엔 일에 도전한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등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해서 일반 기업에도 문을 두드린다.
고립은둔청년들이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일의 감각’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고립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도 ‘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기, 식사 준비하기, 청소하기와 같이 자기를 돌보는 일이나 쇼핑하기, 운동하기, 영화나 공연 보기 등 세상을 탐색하는 활동은 직업인으로서의 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자신을 잘 돌보고 즐거움을 누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 비록 돈으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이런 일들을 ‘만만하게’ 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사회의 성원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자신감을 얻는다.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에 참여한 고립은둔청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소통하기도 한다. 고립은둔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역시 유의미한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관계맺기에 서툴러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고, 대학도 대인관계 때문에 자퇴했다”는 조강언씨(25)는 ‘두더지땅굴’을 우연히 접하고 이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두더지땅굴(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자주 써요. 제 글을 보고 두더집(오프라인 쉼터)에 나갈 용기가 없는 분들도 용기를 얻고 나왔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첫 번째 방문 날, 두 번째 방문 날 이런 식으로 있었던 일 위주로 써요.”
■정부지원 시작됐지만
‘쉬었음 청년’의 증가세가 확인되고 고립은둔청년이 54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실태조사가 나오자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최근 이들에 대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첫 실태조사를 한 데 이어 올 8월엔 인천, 울산, 충북, 전북 등 4개 광역 지자체에 고립은둔청년 지원기관인 청년미래센터를 개소했다. 2019년 광주광역시를 시작으로 여러 지자체에서도 고립은둔청년 지원 조례를 만들어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공공이 나서면 취약층을 발굴하는 역량을 높일 수 있고, 재원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실제 정책이 가닿을 대상자 규모에 비해 정책 용어가 과장돼 있다”(이은애 이사장)는 평가도 있다. 민간이 하던 프로그램을 공공이 직접 하는 방식으로, 대량으로 획일적으로 제공한다면 ‘맞춤형 지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공공에서는 일상회복, 일경험, 일자리 연계, 심리상담 등 각 전문화된 지원기관을 청년의 상황에 맞게 찾아주는 허브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립은둔청년들의 복귀 성공까지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데 성과를 중시하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이런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도 나온다.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의 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 취업 컨설팅 같은 지원을 많이 하지만 5회, 10회차 하고서는 그다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이 있어요. 앞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고립은둔청년을 ‘발굴’할 텐데, 발굴 다음에 장기적인 정책이 책임감 있게 지속해야 합니다. 단기간 지원 대상자 숫자만 늘리면 누군가는 재고립으로 가요. 멘토처럼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을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합니다.”
■누구나 한때는 고립돼 있었다
고립은둔청년 54만명의 시대. 이들을 위한 일상회복과 관계맺기 등의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정부와 지자체까지 나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들이 사회로 복귀할 통로는 결국 ‘일’이다. 청년의 노동력을 값싸게 쓰고 버리는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와 함께, ‘동료’로서 은둔고립청년에 대한 시각의 변화도 필요하다.
취업이나 시험공부를 위해 주변과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 적이 있는가. 우리는 사실 한 번쯤은 고립을 경험한 당사자다. “나는 운 좋게 견져졌을 뿐, 나 또한 장기간 고립될 수 있었다. 고립과 은둔에 내몰린 청년들이 이상한 이들이 아니”(김혜원 PIE나다운 청년들 대표)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고립은둔청년들은 잠수함 속 토끼다. 무한경쟁사회의 밑바닥에서 가장 먼저 산소 부족을 감지하고 비명을 지른 이들이다.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려는 노력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수행돼야 한다. “서로를 밟아서 더 넓은 집에 살고, 더 높은 빌딩으로 출근해 좋은 전망을 감상하며 일하는 삶이 성공이라고 우리는 가르치고 있잖아요. 이런 경로에서 배제되거나 실패하면서 은둔이 시작된 청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은둔에서 벗어나는 것은 과연 그런 삶에 다시 동참하는 일일까. 우리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의 말이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