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경 ‘한국 은둔·고립자 지원기관 협의회’ 이사장 인터뷰
최근 몇 년새 지자체들에서 고립은둔청년을 주요 정책대상자로 두고 실태조사 및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정부도 지난해 첫 실태조사에 이어 올해 8월부터 시범사업 수준이긴 하지만 청년미래센터를 열어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공공보다 앞서 고립은둔청년에 관심을 기울였던 건 민간 청소년·청년지원 단체들이었다. 현재 공공의 지원사업을 보면 민간단체에서 선행한 프로그램을 모델로 한 경우가 많다. 고립은둔청년이 사회로 한 발 내디딜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생태계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올해 1월 고립은둔청년 지원 민간단체들이 모여 ‘한국 은둔·고립자 지원기관 협의회’(은고협)를 창립했다. 정부·지자체의 정책 협력자이자 감시자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은고협 첫 이사장은 윤철경 지엘청소년연구재단 상임이사가 맡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5년간 청소년 정책 연구를 해온 윤 이사장은 정년퇴직 후 2020년 지엘학교밖청소년연구소(현 지엘청소년연구재단)를 꾸렸다. 지엘청소년연구재단은 고립은둔청년·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편 관련 전문 연구를 수행해왔다. 윤 이사장을 지난 9월 23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지엘청소년연구재단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고립은둔청년 연구와 지원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까.
“정년 전 10년간은 학교밖청소년을 위한 정책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정년퇴직 후 연구자로서 현장 활동가들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자 연구소를 열었고, 처음엔 위기 청소년 부모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고립은둔청년 부모들이 찾아오더라고요. 세 가정, 4명의 부모와 4개월간 매주 만났습니다. 그들과 그 자녀들이 너무 위험한 상태여서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가 힘들어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버려지는 느낌’이라는 말씀을 하시니 그만둘 수 없어 ‘다른 부모교육 전문가들을 길러내자’ 이런 생각으로 부모교육이 시작됐습니다. 그게 2021년 5월이었고, 그때 부모들이 부모교육 0기입니다.”
부모교육은 한 기수에 약 1년 3개월씩 진행된다. 부모교육엔 고립은둔 자녀를 둔 당사자도 있지만 목회자, 자원봉사자 등 비당사자도 참여했다. 윤 이사장은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미리 만들고 진행한 게 아니고 실험하듯이 하나씩 단계를 만들어갔다”며 “당사자는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해서 비당사자는 자기 자녀의 일이 아닌데도 같이 고민해준다는 데서 당사자 부모가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부모교육의 효과를 강조합니다.
“부모가 끊임없이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도와주려는 태도가 희망이 되는 겁니다. 자녀가 겉으로는 세게 이야기해도 안에서는 슬픔과 좌절이 있거든요. 부모가 그걸 알아봐 달라고,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부모교육이죠. 자살위험군에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게임 중독을 많이 걱정하는데요. ‘게임을 할 힘만 있어도 다행’이라고도 말해요. 기대를 조금 내려놓고 ‘살아만 있어도 좋다’라는 마음을 이야기하죠. 제가 현장에서 느낀 건 부모가 바뀌는 게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것이었어요. 0기 부모의 자녀들은 모두 ‘탈고립’을 했습니다.
취업 실패가 실제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대인관계 실패라든지 문제는 쌓여 있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니 일자리 대책이 이들을 위한 지원책이 아닌 겁니다.
그리고 ‘0기 부모’ 중에 현재 멘토로 활동하는 부모가 있어요. 제가 강의할 때보다 부모가 이야기할 때 이를 듣는 부모들의 반응도 달라 보입니다. 당사자 부모를 한 명의 전문가로 길러낸 것입니다. 지금 고립은둔청년 규모(정부 추정 약 54만명)를 볼 때, 전문가 인력은 매우 부족합니다. 전문 심리상담은 비용이 발생하고요. 부모교육은 ‘저비용·고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 수단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죠. 부모교육을 받은 한 부모는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은둔해 고등학교 연령을 넘어섰어요. 최소 6~7년 은둔한 거죠. 그래서 부모가 중증 우울증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교육 이후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더라고요. 그런 변화를 봤습니다. 다만 우리의 경험으로는 부모의 변화도 최소 2년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부모의 지원 밖에 있는 고립은둔청년 교육은 어땠나요.
“부모가 관심이 있는 아이라면 행복한 상황이죠. 2022년 7월부터 고립은둔청년의 일상회복과 일 경험 제공 등 3단계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1년을 했는데 하나도 안 바뀌는 거예요. 그때 ‘10년을 보고 가자’ 이렇게 마음먹었어요. 청년교육에 한 60~70명 다녀갔을 거예요. 딱 7명이 1년 수료했고, 그중에서 청년멘토로 나오면 활동비를 준다고 하니 3명이 나왔어요. 그중 1명만 대학에 복학하면서 탈고립을 했어요. 그 1명의 탈고립 계기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아마도 청년멘토라는 지위, 그리고 활동비가 아니었을까 추측만 해봅니다. 고립은둔청년들은 사람이 무서우면서도 소통하고 싶은 양가적인 욕구가 있어요. 또 생계를 위해서든 필요한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든 돈도 필요로 합니다. 이런 욕구에 집중하면 그들과 연결할 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해외 체류 경험이라든지 삶의 전환기가 될 만한 계기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실태조사를 보면 고립은둔의 계기로 ‘취업 실패’를 꼽는 비율이 높습니다.
“설문 문항에서 그것을 택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봐요. 대인관계 실패라든지 다른 답은 안 하는 거예요. 그것이 실제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문제는 쌓여 있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니 일자리 대책이 이들을 위한 지원책이 아닌 겁니다. 이 아이들의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면 예민하고 조용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순종적이고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착하다’고만 합니다. 그런데 왕따·학교폭력을 당한 친구들도 많아요. 배제와 소외를 경험한 것이 오래 가는 것이죠. 매우 위축된 상황이고 일을 해본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일머리도 좀 부족합니다. 일을 두려워하죠. 나가서 일하고 싶은 욕구도 크고 일하지 않는 자기에 대한 불만, 부모에 대한 죄책감이 굉장히 큰데, 일은 안 되는 거예요.”
윤 이사장은 2016년 니트족 연구를 진행하면서 유럽과 일본의 실태를 연구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해 히키코모리지원센터 등의 지원 생태계를 살펴봤다고 한다.
-해외와 비교해 청년들이 고립은둔으로 내몰리는 한국적 상황은 무엇일까요.
“우리 교육은 굉장히 경쟁문화가 심해서 애들이 스트레스가 많아요. 사회성을 키울 놀이 공간이나 문화는 많이 사라졌고요. 학교 관계도 과거처럼 풍부하지 않아요. 과거에도 경쟁문화가 있었지만 그로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관계가 없어진 거예요. 학교폭력 문제는 1980년 후반, 1990년대 들어 사회문화로 대두됐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좋아진 적은 없어요. 은둔형 외톨이 면접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왕따 경험이 공통으로 나와요. 어른들은 화해하거나 조치를 통해 그 사건을 마무리 짓지만 아이는 그때의 두려움이 평생 가는 것이죠. 아이들이 예민한 만큼 사회는 그렇지 못해요. 그런데 자기표현을 잘 못 하면서, 겨우겨우 지냈는데 그 에너지가 소진되는 시점이 오는 거란 말이죠. 그때 멈춰버리는 것이죠.”
-민간·공공의 지원사업을 보면 일상회복, 일 경험을 먼저 제공하는 방향입니다.
“일을 개발해야 합니다. 사람을 꼭 만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뉴스 클리핑이라든지, 영상회의 관리 업무라든지, 아니면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단순 업무나 농장에서 과일 따기 등의 일을 개발해야 하죠. 쉬운 일이 아니라 특성에 맞는 일을 만드는 겁니다. 카페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서비스 업종이 이 친구들에게는 가장 고난도 일입니다. 학교밖청소년들을 지원해온 기관의 말을 들어보면, 일자리를 연결한 다음에는 1년 사후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고립은둔청년은 훨씬 더 긴 과정이 필요할 거고요.”
-근래 정부·지자체의 고립은둔청년 지원이 늘고 있습니다.
“공공이 나서면 재원이 있고 지속해서 할 수 있어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다만 공공에서 하는 사업들이 당장은 민간에서 하던 사업 모델을 가져다 할 것인데 나중엔 얼마나 창의적으로, 실험적으로 발전할까 의문은 있어요. 일본도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거로 보여요. 계속 실험적으로 방법을 찾아야 하거든요. 공공이 민간이 하던 일을 직접 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민간 지원기관도 다 각자 역할을 하는데 저희는 일할 사람을 키우는 거예요. 당사자가 부모멘토, 청년멘토가 되게끔 교육하는 것이죠. 시민의 힘으로, 스스로 문제 해결 주체가 된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문제의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