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AI 산업의 파편화 위기 넘어 연합 AI 산업 생태계 구축하자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빅데이터 응용학과·첨단기술 비즈니스학과 교수
2024.10.07

스마트폰으로 챗GPT를 이용하는 모습. 출처: 언스플래시

스마트폰으로 챗GPT를 이용하는 모습. 출처: 언스플래시

한국은 인공지능(AI)을 왜 발전시켜야 하는가? AI가 생산성 향상과 가치 창출의 새로운 엔진이기 때문이다. AI는 범용 기술로서 증기기관, 내연기관, 전기 모터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에 비교할 수 있다.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기술이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했듯 AI 역시 그와 같은 파급력을 가진 기술이다. 더 나아가 AI는 새로운 지식을 산출하고 산업과 직업 구조를 재편할 가능성을 제공하므로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 경쟁이 심화하고 발전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AI 기술을 단순히 잘 쓰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은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AI 경쟁에서 선두주자가 돼야 한다. 기술 자체, 이와 관련된 응용 제품 및 서비스, 산업 혁신과 새로운 산업 창출 등 큰 기회가 아직 한국에 남아 있다.

한국, 자금과 정책 파편화로 비효율

현재는 인터넷 혁명 초기에 비유할 수 있다. 2024년 AI 산업은 아마존닷컴, 구글, 이베이와 같은 거대 기업들이 창업되지 않았던 1994년, 인터넷 시대 초기와 유사하다.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란 의미다. 엔비디아(Nvidia)는 30년 전 시스코(Cisco)에 비유될 수 있는데, 산업 초기에는 인프라 및 하드웨어 중심의 매출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한편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비용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예를 들어 GPT-4의 토큰당 비용은 18개월 동안 240분의 1로 하락했다. 반면 LLM의 실행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므로 오픈AI(OpenAI)는 인터넷 초창기 웹브라우저를 처음 보급한 넷스케이프와 유사하게도 시장 창조에 기여했지만 극심한 경쟁과 고비용 구조, 불명확한 비즈니스 모델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용자의 고착화(Lock-In)가 어려운 점, 구글·아마존 같은 기존 기업의 견제, 앤트로픽·메타 AI·미스트랄 AI 등 새로운 도전자들의 출현은 이 산업의 전망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답변 엔진 퍼플렉시티(Perplexity·AI)는 초기 야후닷컴(Yahoo.com)이나 구글과 비교될 수 있으며, 크게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현재의 네이버나 구글은 30년 전 PC통신 서비스인 하이텔이나 아메리칸 온라인에 비유될 수 있으며, 아마존닷컴과 쿠팡은 30년 전의 오프라인 상점이나 백화점의 운명과 비교될 가능성이 크다. AI 에이전트에 기반한 상거래 비즈니스 모델이 나타나면 기존의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자신들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내려놓고 수익성이 더 나빠 보이는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거나 이와 경쟁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들 것이다.

이렇게 엄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자금과 정책이 파편화돼 나눠먹기식 비효율에 빠져 있고 시너지가 일어나지 않는다. AI 투자, 지원, 연구개발, 파트너십에 시너지를 일으켜 성과를 낼 새로운 거버넌스(지배구조)가 필요하다. 연간 1조원 이상의 규모로 향후 5년간 투자하는 대규모 AI 펀드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AI 원천 산업과 응용 서비스, 플랫폼에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AI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민간이 주도하되 국가와 정부 차원의 보완 및 지원이 필요한 비상 상황이다. 민간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AI 생태계 조성의 주도권을 쥐고 AI 펀드를 중심으로 기획된 AI 스타트업을 출범시키고 최고의 AI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펀드를 통해 대한민국을 AI G3 국가로 견인하는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 AI 펀드를 중심으로 컴퓨팅 인프라 확보와 벤처 기업 양성, 자금 조달, 네트워킹이 한 번에 이뤄질 수 있어야 하며 현재 분리된 지원 구조를 개선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고유의 ‘연합 AI 전략’ 추진해야

해외에서는 이미 AI 원천 기술과 응용 서비스에서 파트너십(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파편화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네이버와 삼성전자 간 협력도 깨진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IMF 금융위기 시절에 있었던 빅딜(기업의 인수합병 등 큰 거래)을 연상할 만큼의 AI 기업 간 파트너십 형성에 정부가 촉매 역할을 해야 하며 세계 최우수급 AI 인재 확보, AI 학습과 추론에 사용될 반도체 기술과 물량 확보, 자본,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기획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AI 응용 서비스와 플랫폼에 대한 정책 역시 중요한 과제다. AI를 통해 산업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AI 응용 서비스와 플랫폼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검색, 커머스(상업), 미디어, B2B(기업 간 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활용한 상업적인 솔루션 개발을 지원해 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SKT와 퍼플렉시티 사례와 같은 국내외 전략적 파트너십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AI 원천 기술에서 절대 뒤처지지 않도록 선제 투자와 육성이 필요하다.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위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스타트업에 대한 GPU(그래픽 처리 장치)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미국과 중국의 초거대 프론티어(Frontier·미개척지) AI 전략과 오픈 소스 전략에 대응하는 한국 고유의 ‘연합 AI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은 제3의 길을 걸으며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AI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세계 최초의 연합 AI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고, 연합 학습 프로젝트를 전 분야에 활성화해 각 분야에서 최고성능의 AI를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의 소유권을 보호하면서도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데이터 뱅크 제도와 기구의 설립을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데이터 뱅크 제도에 기반한 데이터 수집 기업과 데이터 공장을 육성해야 한다. 국공립 연구소를 모두 묶는 초거대 연구개발 AI를 연합학습 기반으로 개발하고 제조, 의료, 헬스케어, 교육, 금융, 교통 등 민간 사회 전반에 연합학습을 활성화하는 촉매로서의 정부 역할을 해야 한다.

데이터의 소유권을 잘 관리해주고, 데이터가 필요한 주체에게 AI 훈련 등 사용 기회를 제공해 데이터의 정당한 사용을 둘러싼 법적·경제적·윤리적 문제를 세계 최초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구축된 연합 AI 산업 생태계는 한국이 세계적인 AI 강국으로 자리 잡도록 할 것이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빅데이터 응용학과·첨단기술 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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