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남자 대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성형외과를 찾아왔다. 눈뜰 때 이마를 너무 많이 쓴다는 이유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렸을 때 ‘이마 쓰지 말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말을 안 들었고, 결국 병원까지 왔다고 푸념했다.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환자 상태를 차근차근 점검해 보았다. 눈을 뜨고 있어도 위 눈꺼풀이 검은 눈동자를 많이 가리기 때문에 시야가 많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아들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앞을 보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많이 쓸 수밖에 없었고, 많은 부작용이 생겼다. 무엇보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잡힌 이유가 바로 눈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아드님이 이마를 쓰는 이유는 눈 때문”으로, “눈을 잘 못 뜨는 것이 아들의 잘못은 아니고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오해가 풀렸는지 어머니는 약간 무안해했고, 결국은 아들에게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서로의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91세 할머니가 딸과 손녀와 함께 방문했다. 할머니는 90 평생 미용 관련 수술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성형외과를 찾은 것은 고통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딸은 어느 기사에서 ‘눈을 잘 못 뜰 때는 눈매 교정을 하면 된다’는 정보를 보고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위 눈꺼풀이 시야를 많이 가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보였다. “어머님, 너무나 불편하시겠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라고 말을 붙이니 할머니는 “응. 그래요”라고 답했다. “이마도 너무나 힘들어 보이는데 머리 쪽도 아주 무거우시죠”라고 물었더니, 딸은 “어머니가 사실 몇 년간 두통이 심해서 전국에 있는 대학병원을 돌아다녔다”라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 수많은 검사를 받았으나 어느 의사도 두통의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보니 할머니의 두통은 눈을 뜨기 힘들어서 시작된 것이었다. 오랜 시간 할머니를 괴롭힌 고통의 원인이 밝혀졌다. 그러니 해결책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눈이 콤플렉스인 중학생들의 사례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병원을 찾았다. 함께 온 어머니는 딸이 못마땅했다. 딸은 쌍꺼풀 테이프 혹은 쌍꺼풀 액 등으로 눈을 붙이느라 등교 준비에 1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이러니 하루도 안 빼고 지각을 했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리 없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딸은 눈에 쌍꺼풀 테이프 등을 붙이지 않으면 외출을 안 한다고 했다. 의사인 내가 얘기해도 딸이 생각을 바꿀 여지는 없어 보였고, 그래도 일상은 영유해야 하니 쌍꺼풀 수술이 필요했다. 학생이 학교는 가야 할 것 아닌가. 또 테이프 등으로 피부가 완전히 상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원하는 수술을 해주는 게 맞다 싶었다. 한 번 상한 눈꺼풀 피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어머니와 병원에 들어섰다. 예쁘장한 얼굴을 가졌는데 눈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누가 봐도 눈 뜨기가 힘들어 보였다. 성형외과를 찾아오는 여느 친구와 달리 부모 말을 잘 듣는 친구였다. 위 사례에서 이야기한 중학교 3학년 학생과 달리 쌍꺼풀 테이프 등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아직 어린 친구라 나중에 수술하라고 권했다. 어린 친구들은 신체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이 없고, 이를 안정적으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단적인 예로 자신과 전혀 다른, 또 다를 수밖에 없는 연예인을 무작정 닮고 싶어한다. 진찰하던 중 학생이 눈에 시력 교정용 렌즈를 끼고 있는 걸 확인할 수가 있었다. 또 “속눈썹이 안구를 자극해서 불편하다”는 말도 했다. 시력이 떨어진 이유가 명확했다. 시력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른 시일 내에 도와주는 것이 정답이라고 결론을 냈다.
이번에도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사례다. 또래보다 어려 보였다. 눈이 작아서 열등감이 심하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예뻐 보였으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얘기를 좀더 해보았다. 작은 눈으로 인해 심한 외모 지적에 따돌림까지 받는다고 했다. 물론 ‘왕따’의 이유가 외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이 자신이 심하게 상처를 받고 있었다. 또 눈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도 사실이었다. 눈이 조금 더 커지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것도 맞았다. 이 학생은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할 정도로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수술 이후 삶은 훨씬 좋아 보였다. 표정이 편해졌고 옅은 미소도 띠고 있었다. 학교를 자퇴하고 본인이 원하는 걸 한다고 했다. 사실 짧게 기술했으나 수술을 결정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상태, 예컨대 눈 뜨는 정도, 정신적인 면, 발육 정도, 피부 상태, 안구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경험이 많다고 함부로 환자에 대해서 재단하거나 판단을 내리면 안 된다.
환자 얘기 들어주고 공감해줘야
앞서 기술한 사례들을 보자면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와 얘기를 많이 나눠야 한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환자의 내면에는 감춰져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환자 상태를 촉진하고 진단한 후에 다시 환자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환자가 본인 얘기를 하도록 만들고 이를 경청해야 조금 더 나은 결론에 다다를 수가 있다. 환자를 보면 볼수록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가 전문가라는 ‘가면’을 쓰고 함부로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반성한다. 물론 가끔은 단호한 면도 필요하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사실 전달만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안 그러면 환자의 주장에 이끌려 처방이 ‘산으로 가는’ 사례가 생긴다.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시술을 할 수도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그냥 환자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더라도 극단적이고 교묘한 예를 제외하면 환자에게 친절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줘야 한다. 너무나도 힘든 노동이지만 그 길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돌아본다.
<박병호 아이호성형외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