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잘 살기 위해 잘 헤어지는, 이별의 기술

강원국 작가
2024.09.29

ⓒUnsplash, Amine mouzaoui

ⓒUnsplash, Amine mouzaoui

헤어짐에 관한 표현이 많다. 잠깐 헤어지는 ‘작별’이 있고, 영원히 헤어지는 ‘고별’이 있다. 작별 인사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만, 고별인사는 마지막 단 한 번뿐이다. 헤어짐의 강도에 따라서도 담담하게 갈라서는 ‘이별’, 애틋하게 헤어지는 ‘석별’, 단호하게 끊어내는 ‘결별’이 있다.

돌아보면 수없이 헤어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헤어졌고, 고등학교 때 만났던 첫사랑 여학생과 헤어졌고, 내가 모셨던 김우중 회장,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도 헤어졌다. 사람들과 헤어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소중했던 학창 시절, 직장생활과도 헤어졌고, 오래전에 고향과도 헤어졌다. 헤어짐이 이토록 애틋하고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내 인생에서 헤어질 것들을 만났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었는가.

잘 헤어져도 절반은 성공한 인생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 만나면 결국 헤어지게 돼 있다. 영원한 관계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이별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일상 안에 들어 있다. 인간사가 헤어짐의 연속이라면 만나는 모든 것과 잘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이별은 그 대상에 따라서도 여러 경우로 나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이나 배우자와의 이혼, 죽음으로 인한 이별 등. 이런 상실은 우리네 삶의 단계에서 시나브로 찾아온다.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서 분가하고, 유학을 떠나고,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모두 이별이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찾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의 이별이다. 따라서 이별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도 대상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우선 사귀던 사람과의 이별을 이야기해 보자. 강렬했던 첫사랑의 감정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것처럼 만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도 변하고 죽고 못 사는 관계도 변한다. 소중한 인연, 소중한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 변하고 퇴색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연인 사이에서는 관계의 유한함을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이 아닌 내일 헤어질 것같이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별해야 한다면 좋은 이별을 해야 한다. 특히 ‘안전이별’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잘 헤어지는 것이 중요해진 요즘, 좋은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건강한 만남을 위해서도 필요해 보인다.

먼저, 헤어지자는 말은 얼굴을 보며 해야 한다. 헤어지는 마당에 잠시라도 다시 보고 싶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만나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야 한다. 내 표정이나 말투, 분위기를 통해 진심을 전할 수 있고,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문자나 e메일, 메신저로 전하게 되면 이별 통보를 받는 처지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글의 행간을 잘못 해석해 억측을 낳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이건 도리가 아니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것이다. 이별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마지막까지 성의를 다하지 않는, 이런 이별은 좋은 이별이 될 수 없다.

헤어지는 이유도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에둘러서 표현하면 미련만 남긴다. 상대가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줘야 한다. 상대는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겠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다. 헤어진 후 이별을 후회하거나 이별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 후 이별을 통보해야 한다. 아울러 그렇게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라면 헤어진 후 다시 오는 연락에 대해서도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좋은 이별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별을 잘해야 새로운 만남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헤어지고 나서 가끔은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생각해볼 여유도 생긴다. 그게 내 인생의 중요한 토막 하나를 허비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며, 내 인생을 지탱해 나갈 추억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사별엔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이별을 맞는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게 죽음이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연필로 쓰기>(문학동네·2019)에서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 없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알 순 없지만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은 잘 안다. 누구에게나 소중했던 관계를 끝내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을 부른다.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 토마스 홈스 박사 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의 사망 혹은 이혼, 별거 등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자살자 가족 모임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자살자 가족 모임의 유족 대부분은 자신들을 ‘자살생존자’라고 부르며 가족의 죽음을 자책하고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며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오래도록 남은 자의 마음에 깊은 상실감과 아픔을 준다. 이런 사별은 당사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발생하며, 살아가며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다.

피할 수 없다면 견뎌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충분한 애도(哀悼)의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을 안으로 삭이지 말고 슬퍼해야 한다. 꾹꾹 눌러 삼킬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너무 지나쳐도 안 된다. 삶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는 것은 결코 떠난 사람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옛 어른들의 말처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의 도리다. 애도하고, 살아남고, 잘 지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세상을 떠나거나, 병으로 거동이 어렵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얼굴 보기 힘들어진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끝으로, 자신과도 시시때때로 이별해야 한다. 자기의 나쁜 버릇, 잘못된 생각과 결별해야 하고, 때로는 아름답고 평온했던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자신이 저질렀던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들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자기를 괴롭혔던 사람들과 화해하며 그 모든 걸 떠나보내야 한다. 나아가 내 삶과 영원히 고별하는 순간을 상기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따른다. 그 헤어짐은 때로는 느닷없이, 때로는 안개처럼 스멀스멀 다가온다. 헤어짐을 알고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의 삶이, 만남이, 인연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 현재 경험하는 세상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려거든 그들과 당장 헤어지는 걸 상상해보자.

헤어짐은 또 다른 시작이다. 끝이 없다면 새로운 시작도 없다. 헤어져야 할 순간이 오면 그동안 관계했던 것들에 감사하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자. 헤어지는 대상의 안녕을 빌어주고 장래를 축복해주자. 그리고 새롭게 출발하자. 잘 헤어져야 잘 살 수 있고, 잘 살기 위해 잘 헤어져야 한다.

<강원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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