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배웠습니다. 수능 선택과목이기도 했고, 평소 역사를 좋아해서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특히 만주에서 활약한 독립군 부대 이름은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아 구분을 위해 지도까지 그려가며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덕분인지 지금도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이 활약한 전투와 위치를 지도에서 짚어낼 수 있습니다. 또 김구의 무장투쟁론,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의 차이도 곧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배운 한국 근현대사는 ‘잘못된 역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좌편향된 교과서로 배웠다고 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한국 근현대사 책이 그 유명한 ‘금성출판사’ 책이었습니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며 대한민국 건국 과정이 ‘잘못된 역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 체제를 조금이라도 우호적 시선으로 본 기억도 없습니다. 대신 너무나 어려 보이는 일본군 ‘위안부’ 사진을 보며 분노한 기억은 있습니다. 일제의 수탈 방식이 악랄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어느새 ‘좌편향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됐습니다. 이른바 ‘뉴라이트’ 분들 덕분입니다. 그분들의 ‘낙인찍기’ 방식에 내심 감탄했습니다.
취재하며,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학자들 논문을 거의 다 찾아 읽었습니다. 이 정도로 읽었으면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화될 만도 한데 금성출판사 책 한 권으로 좌편향됐는지 도무지 그게 안 됐습니다. 대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만 생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논문에선 “판단하지 마라. 받아들여라”라는 식으로 끝맺음을 했습니다. 언젠가 이런 논리 전개 방식을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학교 앞에서 ‘도’에 대해 논하던 분들입니다.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영역에서 논리를 찾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뉴라이트에선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고 합니다. 동의합니다. 초대 대통령이니까요. 대신 이승만의 독립운동사도 함께 부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1945년 이전 이승만은 ‘반일 청년’이었습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