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된 농업경제학자’ 윤석원 명예교수가 목격한 농촌의 현실
올해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 결정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30년이 되는 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가트)’은 해체되고 이듬해인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농산물의 자유무역은 왜 필요한가. 수입 농산물을 빼놓고는 밥상을 차릴 수 없는 시대가 된 지금은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진 한국 농촌을 돌아보면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출범한 가트 체제에서 보호 대상이었던 농산물은 왜 WTO 체제에선 공산품과 같이 ‘자유무역이 필요한’ 상품이 됐을까.
“애초 세계화의 목표는 자유무역을 통해 인류가 함께 잘살자는 것이었죠. 농업까지 개방하면서 WTO가 내건 목표는 ‘기아 해결’이었어요. 30년 지난 지금 해결됐나요? 전혀 아니죠.”
농업경제학자인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30년 전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비롯해 한·칠레 FTA, 한·미 FTA 등 농산물 시장개방이 이뤄질 때마다 강단과 정부의 여러 위원회 활동을 통해 ‘농업 보호’를 외쳤다. 그는 이렇게 말해왔다. “미국·유럽 등이 농산물 자유무역을 주장한 이유는 농업 생산량이 많은 자국 이득 때문이며, 중소규모 가족농 중심인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 농촌은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의 농촌은 황폐화의 길을 걸어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가 수는 99만9000가구로 100만가구 선이 무너졌다. 농가 인구 역시 516만7000명(1994년)에서 208만9000명(지난해)으로 쪼그라들었다.
30년 전 농산물 개방이 초래할 농촌의 위기를 경고했던 학자는 지금 농부로 살고 있다. 2016년 30여 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강원도 양양에서 ‘사과 농부’로 새 삶을 시작했다. ‘농부가 된 농업경제학자가 목격한 한국 농촌의 현실’을 주제로 윤 교수와 지난 8월 30일 그의 사과밭에서 대화를 했다.
“농부들이 뭘 해서 먹고사는지 아십니까. 남자는 건설현장 막노동, 여자는 공장에서 일해서 먹고삽니다. 상위 5%를 제외한 농민 대다수는 그렇게 삽니다. 게다가 농사란 게 본질적으로 힘들어요. 노동생산성, 자본생산성이 낮은 분야인 거예요. 그러니까 정부가 기간산업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농업은 존립할 수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농사지으라고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정부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지원을 한 뒤에 젊은이들에게 오라고 해야지요.”
-농산물 개방 30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보도는 물론 분석과 연구도 잘 찾아보기 힘들었는데요. 농업에 관한 지식 생산 또한 쪼그라들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강단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도 농업 관련 학과의 폐과였다고 들었습니다.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농업경제를 다루는 산업경제학과를 경제학부로 통합시켰어요. 삼성이 성균관대 인수했을 때도 같은 작업을 했는데요, 재벌에겐 농업 관련 학과가 구조조정 1순위였나 봅니다. 일단 우리 학과로 들어온 아이들을 졸업시키고 나면 은퇴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지난 30년간 강단에서 ‘농업이 중요하다’, ‘농민이 소중하다’ 얘기해왔는데 ‘강남에서 여유롭게 사는 삶’ 같은 건 싫었어요. 평소의 신념대로 농부가 돼 살고 싶었어요. ‘이대로 죽으면 한이 될 것 같다’고, 아내를 겨우 설득했죠. 그렇게 벌써 9년째 농부로 살고 있네요.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가다가 어느 시점에 ‘농업을 보호해야겠다’는 걸 인식하고 보조금과 각종 지원제도를 동원해요. 그런데 한국은 이상하게도 그런 ‘터닝 포인트’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글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선진국에선 농업과 농촌만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다원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는 걸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식량안보, 전통문화 유지, 지역 공간의 유지 등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선 단순히 경쟁력이라는 잣대만을 들이대선 안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얘기를 나서서 하는 젊은 학자들도 잘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그만큼 농업 분야가 쪼그라든 것이겠지요.”
-농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렵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미니사과인 알프스 오토메에 도전했다가 냉해 피해를 보고 실패를 맛봤죠. 그래도 지난해에 처음으로 판매에 성공해 이제까지 400만원 벌었습니다.”
윤 교수와 기자는 500평짜리 사과밭에 딸린 작은 농막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그는 사과나무에 석회 유기농비료를 뿌렸다고 했다. 회색 가루가 사과나무들에 곱게 입혀진 것을 바라보니 그가 얼마나 세심한 농부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대답을 이어갔다.
“9년을 해보니 농사 정말 힘들어요. 젊은이들에게 농사지으라고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다면 ‘당신 자식부터 보내라’고 해주고 싶네요. 저는 서른몇 살 먹은 제 아들에게 농사지으라고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고생할 거면 딴 거 하라고 할 거예요. 농사란 게 본질적으로 힘들어요. 노동생산성, 자본생산성이 낮은 분야인 거예요. 그러니까 정부가 기간산업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농업은 존립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지원을 한 뒤에 젊은이들에게 오라고 해야지요.”
-정부가 앞으로 5년 이내에 청년 농민을 3만명까지 늘리겠다면서 스마트팜 지원 등을 약속했습니다. 적어도 후계농 지원만큼은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수십억원 들여서 유리온실(스마트팜)을 그림같이 지어놓으면 쉽게 될 것 같나요. 그게 다 빚입니다. 평생 갚으며 살아야 해요. 그러면 언제 돈을 모읍니까. AI 같은 첨단기술 활용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농업이 다 굴러가지 않아요. 스마트팜으로 길러낼 수 있는 농산물도 제한적이고요.”
지금은 ‘사과 농부’가 됐지만, 윤 교수는 평생 ‘쌀 경제학’을 연구해온 쌀 전문가다. 쌀은 1995~2004년, 2005~2014년 두 번의 개방 유예 끝에 지금은 관세화(관세를 매기며 시장을 여는 것·쌀 관세율은 513%다)가 이뤄졌다.
-농산물이 개방된 지 30년이 됐는데요, 그때 만약 쌀 시장마저 개방됐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사회가 굉장히 불안정해졌을 거예요.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쌀은 시장 자체가 좁아요. 미국, 중국, 태국, 이탈리아에서 일부 생산되고 있어요. 국내 공급이 조금만 부족해져도 큰 불안을 겪었을 겁니다. 우리가 20년간 관세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수입량 40만t을 들여오기로 했는데요, 이거 영원히 들어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관세화를 했잖아요. 그러면 다시 협상을 해야 합니다. 영원한 게 어딨습니까. 지금 쌀이 남는 건 의무수입량 때문이에요.”
-협상이 가능할까요.
“정부가 하겠습니까. 진보나 보수나 농민과 농업, 농촌에 무관심한 건 똑같습니다.”
-지난해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이 평균 1114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직불금 수입과 자녀로부터의 이전소득이 있으니 괜찮지 않으냐고도 하더군요. 그걸 합해도 연 2900만원 수준인데요.
“농부들이 뭘 해서 먹고사는지 아십니까. 제가 여기서 지켜보니, 남자는 건설현장 막노동, 여자는 공장에서 일해서 먹고삽니다. 사과밭에 저온 냉장고를 설치했는데, 건넛마을 농민 한 분이 기술자와 함께 오셨어요. 3000평 농사를 짓는 분이래요. ‘오늘 일당이 20만원인데, 농사로 언제 20만원 법니까’ 하더라고요. 이게 현실이에요. 상위 5%를 제외한 농민 대다수는 그렇게 삽니다. 금년에 농사 흉년 들면 내년에 안 합니까, 또 해요.”
-‘힘들면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 왜 계속 짓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산이 있으니까 올라가듯 논밭이 거기 있으니까 짓는 거예요. 농민들은 땅이 있으니까 농사지어요. 저도 경제학자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을 비용으로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 안 하죠. ‘살면서 하는 건데’라고 여겨요. 절대로 남는 장사라서 하는 게 아닙니다.”
윤 교수가 대답을 이어가다가 잠시 멈췄다. “와, 너무 예쁘다. 햇볕이 쫙, 안 예쁩니까? 저 사과가 곧 빨갛게 됐다가 노랗게 될 거예요. 그가 올해 키우는 시나노 골드는 ‘노란 사과’다. 그는 “요즘은 아무리 유기농이어도 안 예쁘면 안 먹는다”면서 “사과를 모두 두 겹으로 싸놓았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봉지를 열어서 사과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농민으로서 가장 원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제가 한 달 반 지나면 이걸 팔아야 합니다. 봄부터 열심히 키운 놈인데, 이놈이 얼마를 받을지 나도 몰라요. 농민들은 농산물이 비싼 걸 바라지 않아요. 안정적 가격, 안정적 판로를 가장 원해요.”
-금사과 이슈는 어떻게 지켜보셨어요.
“제가 지난해 가을에 유기농 사과니까 나름대로 비싸게 판다고 9개에 4만5000원에 팔았어요. 근데 올초가 되니까 한 개에 만원씩하더군요. 근데 그때는 이미 중소농 농가들은 사과를 다 판 뒤였어요. 누구한테 가 있었을까요. 대형 저장고가 있는 유통인들에게 있었죠. 산지유통 상인들의 역할을 농협이 나서서 해야하는데 금융산업이나 ‘하나로 마트’로 돈 버는 데만 골몰하더군요. 농산물이 싼 시대는 아마 저물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농산물가격은 개방화와 기후변화로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쌀 전문가로서, 양곡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재인 정부가 5조원 규모의 공익형 직불제를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하고 예산 몇천억원 늘리는 데 그쳤어요. 그러면서 애먼 쌀소득보전직불제를 폐지해버렸습니다. 목표가격에 못 미치는 만큼의 75%를 보전해주는 제도였습니다. 쌀소득보전직불제가 있었다면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말하는 양곡법 필요 없습니다. 자기들 집권할 땐 안 하고, 야당 되니 태도를 바꾸는 걸 보면 참 답답합니다. 저는 쌀에 관한 한 원래 있던 제도가 낫다는 쪽입니다. 목표가격제(쌀소득보전직불제) 부활하고 매년 들여오게 돼 있는 의무수입량 40만t에 대해 재협상하는 것, 쌀과 관련해서는 당장 이것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농민과 농업, 농촌을 보호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현재 직불금 예산(보조금 예산)이 3조1000억원가량 할 겁니다. 이걸 5조원까지만 늘려줘도 농민들이 원하는 제도를 대부분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은 농가소득 중 보조금 비율이 70~80%입니다. 아마 그 정도로 농민 예산 늘리자고 하면 국민이 기절초풍하겠지요. 일단 직불금 예산을 5조원까지 늘리는 것만이라도 정부가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예산이 약 600조원 아닙니까.”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