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일 때 어머니는 홍삼 가게를 운영했다. 친척의 권유와 설득을 이기지 못해 적잖은 돈을 투자한 곳이었다. 어머니는 절박해 보였지만 장사는 잘되지 않았다. 홍보라고 해봐야 ‘진짜 홍삼을 끓여 판다’는 게 전부, 지인들이 몇 번 사주고 끝이었다. 가게는 늘 쓰고 달큼한 냄새가 났고 대개 찾는 사람 없이 고요했다. ‘야자’ 대신 그곳에서 공부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좋은 제품이니 언젠가 잘 팔릴 거’라는 말로 조용한 공간을 채웠다. 가게는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지난 5월 국제부에 발령 난 다음부터 거리의 가게들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른바 내근직이라 집과 회사를 오가며 업무의 시작과 끝을 맺는데,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정류장 또는 역까지 꽤 오래 걸어야 한다.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부터 자칫 쓰러질 듯 낡은 백반집, 위생이 의심스러운 고깃집까지 출퇴근길에 늘어선 가게만 수십에서 수백이다. 고작 석 달인데 그새 어떤 가게는 자리를 비웠다. 최근 없어진 건지, 뒤늦게 부재를 깨달은 건지 헷갈리는 곳도 있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가게가 하나 있다. 집에서 도보 2~3분 거리에 있는 찌개집이다. 주인은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으로, 갈 때마다 “직접 만들었다”며 전이니 깻잎이니 밑반찬을 건넨다. 친절하지만 맛은 평범하다. 가게도 ‘인테리어’라는 말을 쓰기 민망한 수준, 낡은 건물인 데다 간판부터 형형색색이라 집 앞이 아니었다면 굳이 가 보지 않았을 것 같다. 이따금 야근 후 늦은 퇴근길이면 마침 가게 불을 끄고 나서는 그의 굽은 어깨를 안쓰럽게만 본다.
주변 가게들 분위기는 딴판이다. 숙성 삼겹살을 판다는 고깃집 앞엔 더운 날씨에도 수십명씩 줄을 서고, 하우스 음악이 둥둥 울리는 퓨전 한식집에선 하이볼과 위스키 주문 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에 가게 이름을 검색해 보면 홍보부터 방문자 리뷰까지 면면이 화려하다. 언젠가부터 방송·유튜브를 타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곳은 예약부터 어려운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파리만 날린다더니, ‘손님 양극화’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닌 듯하다. 통계는 모르겠으나, 온라인 유행에 민감한 젊은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 아닐까 싶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20% 남짓이며 그중 폐업률이 해마다 10%에 달한다는데, 나이 든 자영업자들이 살아남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냉정하지만 창업은 본인 선택이고, 폐업은 시장 경쟁의 결과란 걸 모르지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 속 숱한 사례처럼 장사 방식을 바꾸면 성공할 가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 배경엔 미디어의 집중 조명도 있지 않았나. ‘줄폐업’의 근본적 해법은 노년층 일자리나 연금·복지를 늘려 자영업 진입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지만, 이미 가게를 연 사람의 한숨 섞인 나날을 위로하진 못하는 듯하다. ‘요즘 시장’에 적응을 돕는 교육이 있다면 조금 나을까.
자영업 붕괴가 시장에 미칠 여파 같은 큰 얘기는 할 생각도, 자신도 없다. 다만 왜 이렇게 한국엔 자영업자가 많은지, 왜 수많은 가게가 금방 문을 닫는지는 이따금 돌아보려 한다. 생각해 보면 가장 쉬운 것이 ‘저러니 망한다’는 냉소 같다. 내일은 집 앞 가게에 가서 찌개를 먹어야겠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