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86호 표지 이야기 ‘죽으러 오지 않았다’의 취재를 위해 서울의 한 식당에서 이주노동자 자파(가명·37)를 만났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자파는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쇳가루를 지속적으로 들이마셔 폐 기능의 40%를 잃은 이주노동자입니다. 산재 신청을 했으나 사업주가 조사에 성실히 응하지 않아 산재 승인을 받지 못했고, 재심을 신청해 기다리는 사이 비자가 만료돼 미등록 이주민이 됐습니다. 그의 질병은 고국 의료수준으로는 다루기가 까다로워 방글라데시로 무작정 돌아가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날 자파는 말했습니다. “내 인생은 한국에서 끝났어요. 산재 인정 못 받으면 결국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겁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옆자리에서 식사하던 30대 여성이 말을 걸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얘기를 듣게 됐어요. 나중에 이분 얘기가 기사로 나오는 건가요. 남 일 같지 않아 눈물이 나서요.”
나중에 전화로 대화해보니, 그는 7년간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정말 많이 겪었어요. 프랑스어로 싸워봤지만 (발화자는) 자신이 잘못했단 인식이 전혀 없는 걸 보면서 정말 답답했죠. 그 심정은 겪어본 사람 아니면 모를 거예요.” 그는 자파가 이주민으로서 겪은 비극을 ‘남 일 같지 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어떤 비극은 ‘남의 일’이고 어떤 비극은 ‘나의 일’인 걸까요. 화성 참사가 발생한 지 3주가 흐르는 동안 변화하는 언론 태도를 보며 든 의문입니다. 희생자 다수가 이주민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이 참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들었습니다. 반면 서울 시청역 앞 차량 돌진 사고에 대한 보도 열기는 매우 뜨거웠고, 세밀하고 지속적인 후속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리튬 전지에 불이 붙으면 끄려 하지 말고 얼른 도망가라’는 것만 알려줬어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던 원시적인 참사였습니다. 서울 시청역 차량 돌진 사고와 달리 화성 참사 분석엔 게으른 우리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저부터 다짐해봅니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어떤 비극이든 ‘우리의 일’이라 여기자고 말입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