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4.07.01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지난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004년 합계출산율 최하위 국가로 자리매김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유일한 국가다. 2018년 합계출산율 0.98명을 기록한 이후 한국은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새삼스레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으면 비상한 대책이라도 발표할 것을…. 일·가정 양립, 양육(돌봄), 주거 등 3대 핵심 분야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겠단다. 제자리걸음이나 제자리높이뛰기나 결국 제자리일 뿐이다. 본질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외면하는 것인지, 정권이 바뀌어도 저출생 대책은 여전히 헛발질이다.

첫째,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백약이 무효였던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써도 실패했으면 발상의 전환을 했어야지, 비상사태라면서 왜 재탕 삼탕인가? 주 40시간(연장근로까지 52시간) 근무제로는 외벌이 모델에서 맞벌이 모델로, 남성 생계부양 사회에서 보편적 생계부양 사회로 전환할 수 없다. 12시간 동안 집이 비는데 돌봄과 살림을 누가 언제 한단 말인가? 노동시간 단축 없는 저출생 대책은 가짜다.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69시간 노동유연화를 주창했던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해결하겠다니 말이 되나? 주 69시간 일하면 나 자신도 못 돌볼 텐데 출산은 무슨! 주 35시간, 주 30시간으로 가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둘째, 여성 고용단절 문제를 해결하라. 윤 대통령은 “현재 6.8%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임기 내에 50% 수준으로 대폭 높이고, 현재 70% 수준인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80%까지 끌어올리겠다.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월 250만원(현행 15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라고 밝혔다.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 70%’라니 현실 인식부터 글러 먹었다. 육아휴직은 안 잘려야 쓰는 것이고, 육아휴직 급여도 안 잘려야 받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 25~54세 여성 중 42.6%가 결혼·임신·출산·육아·돌봄의 이유로 고용단절을 경험했다. 응답자의 76%가 혼인을 경험했고, 69.5%가 유자녀라고 답했으므로 자녀 돌봄으로 고용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어림잡아 60%가 훌쩍 넘는다. 2005년 이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서고 있는데 취업률·평균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고, 고용단절이라는 결정타가 도사리는 사회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육아휴직·돌봄·주거정책으로 출생률을 제고할 수 없는 이유다.

이 밖에도 저출생 대책이 실패할 이유는 많다. 미래의 동료시민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발상이라는 것부터 문제다. 그들은 우리 산 자들을 위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태어나서도 안 된다. 이제 출산율에서 눈을 떼고 2018년부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자살률에 주목하자. 염치가 있다면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 누군가 태어나길 바라자.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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