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의료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2024.07.01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복강경 로봇 공학 AI 콘퍼런스. 중국 베이징에 있는 환자의 전립선 수술을 로마에서 원격으로 집도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거리는 무려 2만㎞. 대륙 간치고도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마치 눈앞에 있는 환자를 다루듯 위화감 없이 처치할 수 있을 정도로 초고속·초저지연·초광대역 네트워크는 의사와 환자를 이어줬다.

대륙 간 로봇 수술은 이미 21세기가 시작할 무렵부터 연구됐고, 국내에서도 2009년에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국내 최초 성공한 바 있는 오랜 신기술이다. 분야가 의료라서 신기할 뿐, 대륙을 넘나드는 원격 조종이란 기술적으로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클라우드는 보통 대륙 저편에 있지만, 순식간에 대용량 영상물을 받아 보는 일이 일상이다. 전쟁도 조이스틱으로 타겟을 보며 정밀 타격하는 드론 대리전이 돼버렸다. 화면 너머는 찰나의 거리다.

브라질의 한 정형외과 의사는 회전근개 파열 수술을 증강현실 헤드셋 애플 비전 프로로 진행했다. 관절 내부에 카메라를 넣고 의사가 화면을 직접 보면서 수술하는 기법인 관절경 수술. 아무래도 영화관 스크린 크기로 고해상도로 환부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각종 검사 결과와 3D 모델 등 시술에 필요한 정보를 시야 안에서 실시간으로 참조할 수 있다면 분명 능률도, 생산성도 달라질 것 같다. 증강현실은 게임보다 오히려 각종 내시경 및 로봇 수술에 유용해 보인다.

바야흐로 초연결 시대다. 외국의 의사가 진료를 보는 일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환자의 정보를 직접 채취해 디지털화하거나 디지털로 전달된 처방을 환자를 위해 적용하는 일은 곁에서 누군가 해야 하지만, 지금도 이런 일은 의사가 별로 하고 있지 않다.

의료 행위는 디지털화되면 원격이 될 수 있고, 다시 플랫폼 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 지금도 차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 1분 진료하는 것이 현실. 화면 너머로 전달된 고해상도 자료를 보고 의사들이 의견을 경쟁적으로 개진할 수도 있다. 환자는 그 의견을 비용과 별점으로 정렬해 보게 될지도 모른다.

대면 진료와 촉진은 필수라고 하지만, 스마트 워치 등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들은 점점 더 정교하게 우리 신체 정보를 디지털화하려 든다. 의사는 늘 내 곁에 없지만, 디지털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어디가 조금 아프면 인터넷 검색부터 하지만, 제대로 된 플랫폼이 없으니 득보다 실이 많다.

플랫폼이 있다면 혈압도, 혈당도, 체지방도, 기타 모든 우리 생체 신호도 디지털로 개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업로드된 우리의 행동에서 병의 신호를 찾아낼 수도 있다. 이를 해석할 디지털 주치의는 물리적으로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어쩌면 AI가 저렴하게 대신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처방은 새벽 배송으로 배달되고, 해외 의사의 로봇 수술을 예약해줄 수도 있다.

SF처럼 들리겠지만 대륙 간 로봇 수술도 20세기에는 SF였다. 다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SF다. 기술도 준비됐고 환자도 원하지만, 직역을 과보호하는 면허의 높은 벽 탓이다. 우리는 겨우 의대 정원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지만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영국도 이렇지 않다.

중국에는 ‘온라인 병원’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고, 미국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원격의료가 확산 중으로, 기업 복지 혜택에도 포함될 정도다. 미국 아마존은 뉴욕과 LA에서 처방약 당일 배송을 시작했다. 올해 말까지 미국 12개 도시로 확장할 예정이다. 한국은 의료법 제34조에 의해 원격의료는 불법이고, 약사법 제50조에 의해 의약품 배송 또한 불법이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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