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새로움이 펼쳐질지도

2024.06.03

인천 미추홀구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 장난감 박사로 봉사하고 있는 원덕희씨(70)가 고장 난 모빌을 고치고 있다. 채용민 PD

인천 미추홀구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 장난감 박사로 봉사하고 있는 원덕희씨(70)가 고장 난 모빌을 고치고 있다. 채용민 PD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키니스 장난감 병원’은 14년째 고장 난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주고 있다.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다 은퇴 후 장난감 박사가 된 사람들이 장난감을 치료해준다. 박사들의 손을 거치면 멈춰 섰던 오리 로봇도 다시 춤을 추고, 마우스가 고장 났던 뽀로로 컴퓨터도 말끔히 고쳐진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난해 은퇴를 한 터라 장난감 박사들의 은퇴 전 직업에 눈길이 갔다. 금속공학과 교수, 조선공학과 교수, 전자업체 연구원. 페인트 회사에서 영업부터 총무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는 한 장난감 박사는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 온라인 접수와 택배 관리 등 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그중 원덕희 박사(70)는 공업고등학교 교장 선생이었다. 원 박사의 전문 분야는 모빌이다. 지난해에만 400개가 넘는 모빌을 고쳤다. 원 박사는 몇 개의 모빌이 장난감 병원에 입원했고, 입원한 것 중 자신이 몇 개를 고쳤는지도 매일 기록한다. ‘이걸 굳이 왜 기록하냐’고 물어보니 “못 고치는 것도 서너 개씩 나오는데, 발전시켜볼 여지가 있을까 봐서 그런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매사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박사들이 함께 쓴 에세이집 <할아버지의 장난감 선물가게>를 다시 읽다가 뜻밖의 글귀를 발견했다.

“지금껏 살면서 제가 하는 일에 미쳐서 몰입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교직 생활을 36년간 했고, 그중에서 담임을 23년 가까이 맡았어요.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일했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중략) 저는 이제야 비로소 불씨를 찾은 거예요. 아랫배가 쑤시고 허리가 저릿저릿하더라도 침대를 박차고 얼른 이곳으로 오고 싶어집니다. 육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생동감이 온몸에 절절합니다.”

36년간 교편을 잡았지만 원 박사에게 교직은 꿈이 아니었고, 취직이 어려웠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런 원 박사가 은퇴 후에 자신의 ‘불씨’를 찾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원 박사는 유튜브에서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다른 박사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고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 합류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부모의 은퇴에 대해 부쩍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부모님은 블루베리 농장을 시작하셨다”, “우리 아빠는 베이킹을 배우셨다,” “우리 아빠는 밭을 사셨다”, “우리 엄마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부모의 은퇴에 대해 한참 떠들다 보면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엄마, 아빠는 요즘 대체 뭘 하고 다니시는 걸까?” 응원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부모님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걱정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의 거친 은퇴 계획과 그걸 지켜보는 K장녀들이랄까.

그래도 이번에 원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맬 시간과 도전할 기회가 필요한 것은 젊은 청년들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되는 마음 일단 접어두고 어머니, 아버지가 불씨를 찾을 때까지 응원해보기로 했다. 장난감 병원의 김종일 이사장(78)의 말처럼 “뜻하지 않은 새로움이 이 나이에도 광활하게 펼쳐질지 모르니까.”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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