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초선의원>·뮤지컬 <오즈> 등
‘프리쇼’는 요즘 공연계에서 흔하다. 극이 시작되기 전 배우들이 관객들과 어우러져 연주하고 춤추며 흥을 돋운다. 객석을 돌아다니거나 관객 옆에 미리 앉아 있는다. 작품 중간중간 서사 안에 들어가 간단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지는 ‘탈경계 공연장’ 풍경이다.
연극 <초선의원>(오세혁 작·변영진 연출)은 관객 반응이 작품의 동력이다. 작품 속 스포츠 경기 관중으로, 선거 유세 유권자로, 노동쟁의 중인 노동자로 동참해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거나 연호하게 이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오마주한 작품이지만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파는 아니다. 9명의 출연진은 115분 공영시간 내내 250석 남짓한 무대에서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날렵하게 뛰어다닌다. 마라톤과 양궁, 레슬링 등 12개 종목이 서사 안에 스며들어 시대상을 풍자하는 매개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신체연극(physical theater·신체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연 장르) 같기도 하다. 손에 땀을 쥐며 동참하다 보면 어느새 115분이 끝나 있다. 이른바 ‘시간 순삭’(순식간에 삭제)된 작품이다.
배경은 올림픽 준비와 진행으로 들떠 있던 1988년 서울이다. 인권 말살 현장을 뛰어다니며 노동권을 설파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해온 인권변호사 최수호의 과거가 씨줄로, 국회 입성한 초선의원 최수호의 법안 상정과 청문회 활약상이 날줄로 교직된다. 무대 안쪽 복고풍 TV 영상과 무대 위 스포츠 경기가 미디어 믹스(media mix·한 매체를 여러 매체로 활용하는 것)돼 경계를 넘나든다. 영상 속 상황이 무대에 연결되거나 역으로 무대 상황이 영상에 이어지는 방식이다.
<초선의원>이 공감대 형성을 통한 몰입형 서사라면 물리적으로 무대와 객석을 혼합한 본격 이머시브(immersive·몰입형) 공연도 있다. <그레이트 코멧: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위대한 혜성>(데이비드 말로이 작·작곡, 김동연 연출, 한지안 번역)은 새로운 관객 참여를 제안한다.
레프 톨스토이의 대하소설 <전쟁과 평화>의 2권 5장, 70페이지 정도 분량을 각색했다. 등장인물은 37명이다. 무대 한가운데서 진두지휘하는 음악감독과 무대 양옆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포함하면 50명 가까운 대규모 공연단이다. 19세기 초 러시아 귀족 피에르와 나타샤의 삶을 중심으로 당시 문화 인류학적 풍광과 음악을 관객 참여형으로 재구성했다.
무대 같은 객석, 혹은 객석 같은 무대는 기하학적이고 아름답다. 연주하며 뛰어다니는 배우들과 이들에게 이끌려, 혹은 자발적으로 주 무대에 올라가는 관객들로 인해 거대한 무도회장으로 변신한다. 눈앞에 있는 배우들과 상호작용하다 보면 작품의 서사에 빠져들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코멧석이라 불리는 주 무대 안쪽과 바로 앞 좌석 관객들은 일반석에서 보면 즉흥 배우들이다. 그들의 리액션(반응)에 따라 작품의 흥과 기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회 관객 반응에 따라 관객 참여 구간도 조금씩 달라진다. 노망난 귀족의 약혼녀가 돼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거나 편지를 전달하는 집배원으로 변신한 관객들의 즉흥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극 <알앤제이>(셰익스피어 원작, 조칼라코 작, 김동연·송희진 연출, 김경육 음악)도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애고 관객이 동참하도록 무대 석을 만들었다. 폭력의 세기인 20세기. 남자 기숙학교에서 금지된 책 <로미오와 줄리엣>을 밤마다 낭독하며 남학생들끼리 만들어낸 연극이 극 중 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낮에는 억압과 폭력 속에 지내지만 밤에는 감성 충만한 셰익스피어 배우가 된다.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책을 감싼 붉고 긴 천과 교실의 의자뿐이다. 이를 활용해 남학생들이 재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위예술로 거듭난다. 관객석에 함께 앉아 자신의 순서에 셰익스피어 소네트(sonnet·14행시)를 낭독하는 배우들과 무대 위에 자리한 무대석 관객들은 처지가 바뀐다. 배우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배우가 되는 ‘전치(switch)’의 순간이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20세기 초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오마주한 뮤지컬 <오즈>(김솔지 작·박지혜 연출·문소현 작곡)에도 ‘전치’의 순간이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된 미래사회에서 살아가는 준은 무인 가상현실(VR) 기기 공장 내 유일한 인간 노동자다. 기계 같은 삶 속의 즐거움은 VR게임 ‘오즈’에 접속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땀 흘리며 배우화 되는 구간은 2개 팀으로 나뉘어 서쪽 마녀를 물리치는 게임이다. 관객들은 매표소에서 입장권과 함께 받은 카드를 사용해 게임에 동참한다. 카드 그림에 따라 에너지가 충전돼 좋은 카드를 받은 관객들은 저절로 작품 속 중요 인물이 된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찾아 위로를 전하는 힐링 작품이다.
심리적 무장해제로 배우와 관객이 전치되며 객석을 포복절도하게 이끄는 연극 <아트>(야스미나 레자 작·성종완 연출·홍서희 번역)도 있다. 세르주가 5억원에 구입한 ‘하얀 바탕에 흰 줄만 있는 그림’을 둘러싸고 오랜 친구 마크와 이반이 세르주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며 바닥을 드러낸 한판 싸움을 벌인다. 현대사회의 허세와 위선, 가부장의 그늘이 녹아든 대사는 관객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어느새 극 중 인물 중 하나가 돼 상대방의 논리에 공감하거나 변명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연극 <초선의원> 관객들이 작품에 빠르게 몰입하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최수호의 열정적 삶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최수호는 초선의원으로서 정치판의 반복되는 야합에 절망한다. 낙향한 그를 이끌어 다시 국회에 서게 한 것은 서민들이다.
오래오래 끝까지 살아남아 변하지 않고 억울한 이들의 편에서 증인이 돼주겠다는 최수호의 다짐은 관객들에게 진한 페이소스(pathos·허전하고 슬픈 마음)를 남긴다. 최수호가 오마주한 노무현은 일찍 생을 마감하고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총선 기간에 상연된 수많은 관객참여형 작품은 적극적인 참여가 관객들을 어떻게 해방할 수 있는지 체험하게 만든다. 공연장의 탈경계는 삶의 탈경계로 이어진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관중이 수동적 구경꾼이 되는 대신 능동적 참여자가 되는 연극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제대로 된 ‘관객 참여’는 ‘관객 해방’이다. 해방된 관객은 창의적인 작품을 견인하고 더 나은 삶을 이끌어갈 힘을 얻는다. <오즈>·<알앤제이>는 4월 28일, <초선의원>·<아트>는 5월 12일, <그레이트 코멧>은 6월 16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