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한국 재생에너지, 해가 뜨긴 할까요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2024.04.08

일본 홋카이도의 풍력발전단지 /픽사베이

일본 홋카이도의 풍력발전단지 /픽사베이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 주요 섬 중 하나인 홋카이도(북해도)는 일본 북단에 있다. 크기는 남한 면적의 약 80%에 달한다. 그에 비해 인구는 일본 전체인구의 4% 정도인 약 510만명에 불과해 인구밀도가 낮다. 농수산 및 낙농, 관광산업의 비중이 크고 제조업의 비율은 낮다. 이 넓은 땅이 한적한 상태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일본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이 이곳에 찾아들어서다. 겨울이 되면 상상 이상의 눈이 내려 ‘겨울왕국’으로 변신한다. 오호츠크해의 습기를 머금은 해풍이 홋카이도에 눈을 쏟아내 대표 도시인 삿포로의 연평균 강설량은 600㎝에 이른다.

최근 한적한 홋카이도가 분주해지며 새로운 도시로 변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인 라피더스가 홋카이도 지토세시에서 공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홋카이도에 웬 파운드리 공장을 지을까? 이는 기후위기와 함께 변화하는 미래 시장과 관련이 있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 친환경 에너지 사용이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홋카이도는 풍력∙태양광발전량이 풍부해 관련 규제를 피해 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지구촌 공통 과제다. 온실가스 배출을 통한 지구온난화 문제는 국가의 경계를 넘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협력하고 세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맞춰 RE100으로 대표되는 ‘녹색 규제’가 지구촌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은 RE100을 선언했고, 관련 협력업체에도 RE100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전 세계 나라들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과 자국 산업 보호라는 산업정책을 융합시키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책이 산업정책 및 공급망 재편과 결합하면서 보호주의 성격의 무역 장벽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2022년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도입하자 지난해 프랑스는 ‘녹색 산업법’을 도입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확정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본격 시행이 2년 앞(2026년)으로 다가왔다. 이 제도는 유럽 수입 제품의 탄소배출량이 유럽 내 생산 동일 제품보다 많으면 초과 배출량에 대해 인증서를 사도록 강제한다. 저탄소 제품이 아니면 유럽의 국경을 넘기 어려워진다.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태양광발전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에너지 확대 시장의 중심에 재생에너지가 있고, 특히 태양광이 가운데 있다. 세계 태양광발전이 2022년 228GW(기가와트)에서 2023년 420GW로 84% 늘어났다. 풍력발전 역시 2022년 74GW에서 2023년 117GW로 58% 증가했다. 원자력발전은 태양광∙풍력발전 대비 미미한 수준이고, 2022년 7.9GW에서 2023년 5.5GW로 줄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설치되는 자국 신설 발전 용량은 모두 62.8GW로 태양광, 배터리 저장소, 풍력, 천연가스, 원자력의 발전 예상 용량은 각각 36.4GW, 14.3GW, 8.2GW, 2.5GW, 1.1GW라고 발표했다. 가장 큰 비중(58%)을 차지하는 태양광을 포함해 재생에너지는 94%를 차지했다. 특히 태양광은 작년 발전 용량(18.4GW) 대비 2배에 이른다.

글로벌 태양광발전 분야는 계속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 업체인 블룸버그NEF의 최신 보고서는 올해 전 세계 태양광 설치 용량이 574GW에 달할 것이라 전망하며 작년 대비 130% 성장을 예상했다. 그리고 이 추세는 향후 지속할 것으로 예측했다.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4)한국 재생에너지, 해가 뜨긴 할까요

OECD 꼴찌인 한국 재생에너지

이에 반해 한국 상황은 암울하다. 2022년 기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7.7%로, 38개 OECD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수자원이 풍부한 북유럽 등 국가들을 제외하더라도 주요 선진국인 독일(43.5%), 영국(41.4%), 프랑스(24.5%), 미국(22.3%), 일본(22.0%)과도 큰 차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작년 1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신규 설비용량은 3.8GW로 전년도(4.5GW)보다 16.9% 줄었다. 세계 각국이 경쟁하며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데 한국은 오히려 줄었고, 그 감소율도 상당하다. 동시에 한국에너지공단의 발표 시점은 재생에너지의 국내 위상을 보여준다. 2021년 대비 2022년의 증감률을 1년이 지난 2023년 말에야 발표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재생에너지 확보 경쟁에서 한국은 자국의 현 위치를 바로 알지 못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10%를 밑도는 한국이 국제사회 압박을 피하고자 꺼낸 비장의 카드가 있다. ‘CF100(Carbon Free 100%)’ 또는 ‘CFE(Carbon Free Energy)’라는 무탄소 에너지 캠페인이다. 무탄소 에너지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과 청정수소, 탄소 포집·저장(CCS)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태양열이나 풍력, 수력 같은 재생에너지만을 100% 사용하자는 RE100과 다르다. RE100은 원전이나 수소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CF100이라는 작명에서 느껴지듯, RE100의 대항마 성격을 띠고 있고, 실질적으로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지향한다.

한국이 제시한 새로운 표준이 국제사회에 잘 먹힐까. 유럽 기업의 RE100 준수 요구로 인해 한국 기업의 수출(납품)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최근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세계 유일 기업)은 “2040년까지 고객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최근 연간 보고서에서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는 국내 낮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석탄 화력이나 원전, LNG 발전으로 만든 반도체는 앞으로 외국에 팔기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칫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왕따’가 될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옆 나라 일본은 ‘거품 경제’ 시절 최고치 주가 기록을 34년 만에 갈아치웠다. 일본 반도체 관련주들이 시세를 끌어올리며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동안 죽어 있던 일본 반도체가 기후변화로 바뀌는 시장 분위기 속에 RE100이라는 새 옷을 입고 살아나는 모양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난이 본격화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경제·사회 구조의 기본 축이 변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더 빨리 대응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며 경쟁하고 있다. CF100이라는 낯선 깃발을 들고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를 국제사회는 따를까. 재생에너지 발전에서 이미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기업과 국가가 RE100을 포기할까.

RE100은 기업, 국가, 국민이 죽고 사는 문제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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