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의도치 않게 꽤 다양한 학회에 참석했다. 초파리 유전학자들이 모이는 학회는 생산적이었고, 실험실 프로젝트를 알리고 공동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공동연구들은 학회가 아니라 직접 발품을 팔아 이야기를 나누고 노력한 곳에서 나왔다. 즉 학회가 모든 네트워킹의 중심은 아니라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초대받은 학회와 꼭 필요한 학회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학회의 목적을 학생교육과 공동연구를 위한 전략으로 재조정하기로 했다.
학회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동양에서도 공자와 노자가 제자들의 무리를 이끌고 다녔다. 현대적인 의미의 학회는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60년 영국 왕립학회가 세계 최초의 과학 학회였고, 이후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학회가 속속 설립됐다. 학회의 시작은 과학자들의 모임이었던 셈이다. 학회의 역할은 ‘학문적 정보 공유’, ‘연구 결과 발표’, ‘학문적 교류 촉진’, ‘전문성 유지 및 발전’, ‘정책 수립 영향력’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학회가 가진 이 기능의 대부분은 e메일과 온라인 출판 및 미팅으로 모두 대체 가능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학자사회가 오프라인 학회 없이도 학문의 쇠퇴 없이 학문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학회가 열리는 것일까?
국제학회의 명과 암
학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처음으로 참석했던 국제학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세포생물학회였다. 당시만 해도 샌프란시스코는 유명한 관광도시였고, 학회는 공부하러 가는 곳인 줄 아는 순진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학회시간을 빼먹고 근처 맛집을 찾아 떠나는 교수들을 보며 국제학회는 휴가의 목적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부분의 저명한 국제학회는 미국 아니면 유럽에서 열리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휴양지에서 열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건 한국 학회가 개최하는 여름 및 겨울 시즌 학회도 마찬가지였는데, 해수욕장이나 스키장이 주요 학회 장소가 되기 십상이었다. 미국의 고든 콘퍼런스 같은 경우엔 아예 대놓고 유명한 휴양지를 장소로 잡고 학자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학자들에게 학회란 학문의 교류를 위한 활동만이 아니라 일종의 유흥이기도 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몇 년 전 뉴스타파 보도로 화제가 됐던 국내 학자들의 가짜 학회 참석 문제를 해석해볼 수 있다. 수천 명의 학자가 참석했던 그 가짜 학회 대부분이 유럽의 유명 휴양지에서 개최됐고, 학회를 핑계로 유럽에 놀러 간 학자들은 형식적으로만 학회에 참석하고 대부분 관광을 다녔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교수들이 상당수 주도했던 이 가짜 학회 열풍은 학회가 학문교류의 장이 아니라 학자들의 유흥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학자는 학회를 일종의 관광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의사도 아니고 가난한 학자의 삶을 사는 처지에 이 정도의 사치 정도는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학자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에도 불구하고, 내가 학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건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참석했던 국제학회인 콜드스프링하버의 학회 때문이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조용한 시골인 콜드스프링하버에는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 덕분에 유명한 연구소가 있고, 이 연구소는 연구성과보다 일 년 내내 열리는 소규모학회로 유명하다. 아주 전문적인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만 200명에서 300명 내외가 모이는 이 소규모 학회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세미나와 포스터 발표로 유명하다. 과학에 흥미를 잃어가던 박사학위 시절에 나는 이 콜드스프링하버의 학회에 참석하면서 과학자로 살아도 좋겠다고 결심했다. 거기엔 4박5일 동안 오직 과학에 관한 토론만으로도 즐거운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과 격의 없이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며 나누던 이야기들이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학회를 망치는 부끄러운 학자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학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최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학회의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차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초파리유전학회는 꽤 큰 기대를 하고 참석했던 학회였고,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참석한 국제학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는 물거품으로 변했고, 한두 명의 공동연구자를 만난 것 외엔 돈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학회가 돼버렸다. 실망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주의 유명한 휴양지에서 열린 이 학회의 주목적 또한 학문의 교류가 아니라 유흥이었다. 산호초를 보러 가는 일정 때문에 학회의 하루가 거의 날아가는 것도 이해가 안 갔지만, 굳이 휴양지에서 학회를 하려는 욕심 때문에 학회장 시설은 정말 형편없었다. 둘째, 학회를 조직한 위원장이 상당히 편파적이었고 공평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열리는 학회라 그렇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격도 되지 않는 연구자들의 발표를 너무 많이 끼워 넣어 학회의 질이 상당히 낮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부분이 학회 위원장의 측근들이었다. 여야의 공천이 문제가 되는 한국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대부분의 국제학회 발표는 위원회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게 마련이다. 국제학회 대부분은 정치적 편 가르기의 장이다.
호주 학회가 실망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아시아태평양학회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학회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조강연과 주요 강연시간을 모조리 미국에서 온 백인들에게 할애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미국의 과학이 강력하긴 하지만, 미국에서 열리는 미국 초파리유전학회가 따로 있는 마당에 아시아태평양학회는 더 많은 기회를 아시아인에게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학회 조직위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고, 참석자의 대다수가 아시아인이었던 그 학회의 주요 연사는 모조리 백인이 되는 참담한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그 백인 대다수가 70이 다 돼가는 원로 과학자들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발표를 제외하면 어딘가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시아인들의 돈으로 미국 과학자들 관광을 시켜준 셈이다. 특히 이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된 중국의 과학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학회를 주도한 이들이 대만 과학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국제정치의 비합리성이 과학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비극을 목도하는 건 비참한 일이었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