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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갑 네이버 ‘우려’에 스스로 권리 접은 창작자들

2024.03.18

<검정고무신> 사태 1년…만협은 왜 ‘이우영법’을 우려했나

네이버 웹툰 홈페이지 갈무리

네이버 웹툰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3월 11일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가 평생 그려온 작품의 저작권 문제로 고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업계의 계약 행태가 비극의 원인으로 주목받았다. 정치권에서도, 만화를 즐겨보는 독자들로부터도 만연한 불공정 계약을 수정하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과연 만화·웹툰 업계는 무엇을 바꾸었을까.

변화를 따지기에 앞서 <검정고무신>이 제작됐던 시점과 현재 상황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일부 플랫폼, 만화 제작사들은 <검정고무신> 사태가 현재 업계의 관행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개선할 것도 없다”는 논리다. 실제로 차이는 있다. 우선, 종이책으로 보던 만화가 ‘웹툰’ 형태로 진화했다. 이에 따라 생산 구조는 출판사-창작자에서 플랫폼-제작사-창작자로 변했다. 웹툰 제작도 분업과 전문화가 이뤄지며 과거보다 더 다양한 창작자들이 참가한다. ‘저작권’ 문제는 종전보다 더욱 애매해졌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예도 늘었다. 한 작품의 창작자가 4~5명이어도 더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작가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 출판사가 누린 ‘갑’의 지위가 플랫폼, 제작사로 옮겨졌을 뿐 작가는 여전히 ‘을’에 머물러 있다. 빛나는 한국 만화·웹툰의 어두운 민낯이다.

국회는 할 일을 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고 통과를 호소했다. 2020년에는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2년에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주축이 돼 이른바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을 발의했다. 법의 방점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에 찍혔다. 그래서 이른바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 ‘이우영 법’으로도 불렸다. 결과적으로 문산법은 산업계·학계 등의 비판을 받고 제21대 국회 임기 내 통과가 어렵게 됐다. 법안이 좌초된 것 자체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포괄적인 법조문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 역시 경청해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을 비판한 곳들에 한국만화가협회(만협)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심지어 이들의 우려 혹은 반대 논리에는 플랫폼이 지급해야 할 비용을 걱정하는 대목까지 있다.

이제 플랫폼, 제작사들에 ‘왜 문산법을 반대하느냐’, ‘기다리면 무료(기다무), 매일 열시 무료(매열무)는 작가와 협의해 기존처럼 유지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물으면 “이 법은 창작자들이 ‘우려하는 법’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들이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지 않고, 숨을 수 있게 창작자 단체가 퇴로를 열어준 셈이다. 현직 웹툰 작가인 김동훈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 위원장은 “우리는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이제 이런 기회를 다시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희생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원 ‘입법’보다 센 네이버의 ‘우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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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관련해서 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창작자 대표 단체인 만협에서 법안을 최초 발의한 유정주 의원실에 우려 표명을 해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13일, 한국만화가협회 임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한 간부가 올린 글이다. 내용에는 해당 발언을 한 것이 네이버 웹툰 소속 누구인지까지 명시돼 있다. 글이 올라오고 딱 하루만인 12월 14일 실제로 만화협회는 해당 법에 대한 우려를 담은 공문을 유정주·김승수 의원실 등에 제출했다. 대화 내용대로라면 이상한 점이 많다. 첫째는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단순 플랫폼이다’라고 주장하는 네이버가 왜 문산법을 우려하느냐다. 둘째는 우려가 있다면 법안을 발의한 의원과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지 왜 해당 법안 수혜자인 창작자 단체에 우려를 밝히느냐다.

네이버 웹툰 측은 지난 3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쪽(유정주 의원실)에 의견을 전달하라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네이버 웹툰 관계자 이름을) 도용한 거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협회와 네이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견을 교환하다가 ‘우려 입장이다’까지만 말했다”며 “네이버 웹툰이 만협에 지시하는 관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를 전해 들은 한 웹툰 작가는 “해명을 뒤집어 보면 ‘나는 이런 게 우려되네’ 한마디에 만협이 알아서 기었다는 것 아니냐”며 “정치, 조폭 만화보다 현실이 더 만화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글을 게시한 간부한테 연락해보라. 틀림없이 네이버와 똑같이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대화를 올린 만협 간부에게 “네이버 측으로부터 문산법 관련 우려를 의원실에 전달하란 요청을 받은 적 있느냐”고 물었다. 네이버의 해명 그대로 “우려하는 입장이라고만 들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네이버 웹툰 관계자가) 유정주 의원실에 우려 표명을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고 동료 간부, 작가들에게 말한 적 없느냐”고 묻자 공식 e메일로 질문을 접수해 달란 답이 돌아왔다. 재차 같은 내용을 질의했다. 질문과 관계없는 내용의 회신만 돌아왔다. 그런데 답변에는 “문산법 제정 취지에 적극 공감하며 법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김승수 의원실에) 분명히 전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는 만협도 법안을 우려한다는 네이버 설명과는 또 다르다. 추가로 해당 간부에게 문자 및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에 의원실, 만협, 현직 작가 등 문산법 추진에 조금이라도 얽힌 사람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김휘빈 웹소설작가연합 대표는 “이 법과 관련해서 변곡점이 된 시점이 (지난해) 11월이었다”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법을 두고 플랫폼이 회기 종료와 함께 얼렁뚱땅 처리될 것을 우려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부터 법안이 통과하면 안 된다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산법과 관련해 일했다면 네이버의 활약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현직 작가 역시 “참 이상한 일이었다. <검정고무신> 사건이 터졌을 때는 창작자 권리를 보호해 달라고 외쳤던 단체 관계자의 입장이 지난가을 기점으로 싹 바뀌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웹툰작가창작환경 개선을 위한 간담회’처럼 처우 관련 논의를 해놓고 현장 의견은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법안에 반대하는 창작자들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이다. 네이버 관계자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한다. 그런데 2023년 5월 11일 국회에서 ‘웹툰계약서 실태조사를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었다. 이 자리에는 김현희 당시 만협 부회장, 김동훈 당시 한국웹툰작가협회 부회장 등이 토론자로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토론에 참석한 김동훈 당시 부회장(현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 위원장)은 “유정주 의원, 김승수 의원 등이 참석해 문화산업 공정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문산법 내용에 관해 설명도 했다”고 말했다.

김승수 의원은 지난 3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만화가는 ‘을 중의 을’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들과 많은 논의를 해서 법안을 제출했다”며 “그런데 법안 처리 과정에서 플랫폼이 만화가들에게 법안이 통과하면 ‘그동안 너희에게 주던 혜택이 없어진다’고 했는지 만화가들이 굉장히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문산법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한쪽 눈치를 본다. 그런데도 그 한쪽인 플랫폼은 여전히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들은 뒤로 빠지고 플랫폼 하부에 있는 집단이 전면에 나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비단, 창작자 단체들뿐만 아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독자들도 이들의 볼모로 잡혔다.

누가 이들을 제어할 것인가

문산법 통과의 부정적 효과로 두드러지는 것은 기다무, 매열무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문산법 제13조에서 ‘판매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합의하지 아니한 가격할인에 따른 비용 등을 문화상품 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를 금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그동안 플랫폼이 광고를 위해 공짜로 쓰던 것을 돈을 내고 쓰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법은 독자들에게 돈을 내라고 강제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공동제작자인 이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문재원 기자

지난해 3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공동제작자인 이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문재원 기자

해당 조치는 논리적 근거도 있다. 기다무, 매열무를 통해 신규 독자가 유입되면 수익이 늘어나는 것은 작가뿐만이 아니다. 웹툰이 흥행하면 플랫폼 수익도 올라간다. 그런데도 그동안 광고에 들어간 비용은 사실상 작품 제공 대가를 받지 못한 작가만 지불했다. 법은 플랫폼도 이익을 얻는 만큼 정당한 비용을 논의해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마저도 거부한 플랫폼은 이번에도 대신 싸워줄 대상을 물색했다. 기다무, 매열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면 플랫폼보다 법을 비판할 독자들이 차고 넘쳤다.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웹툰의 연간 매출은 1조 5031억원이다. 2023년 1분기 3531억원, 2분기 3696억원, 3분기 3798억원, 4분기 4006억원을 기록하며 우상향 중이다. 상각전영업이익(에비타·EBITDA) 기준으로도 흑자전환이다. 네이버는 네이버웹툰의 IPO 전제 조건으로 ‘흑자전환’을 건 만큼 이는 사실로 보인다. 그럼에도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작가와 협의해 기다무, 매열무를 유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운영상 어려움도 있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문산법이 찍힌 또 다른 이유는 ‘신진작가가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란 논리다. 역시 제13조에서 ‘제작방향의 변경, 제작인력의 지정·교체 등 문화상품제작업자의 제작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문화상품을 납품한 후에 해당 문화상품의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용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아니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이로 인해 플랫폼 입맛에 맞는 기존 작가만 쓰지, 신진 작가는 발굴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지금도 수정 시 비용을 청구하거나 수정 횟수를 제한하는 내용이 계약에 있지만 플랫폼이 위력을 이용해 작가에게 강제적으로 수정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며 “심지어 계약관계가 아닌데도 작가에게 이것은 안된다며 수정을 시키거나 내용에 개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늘 하던 행위를 법으로 금지시킨다고 하니 막고 싶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검정고무신> 사건 이후 스스로 개선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상황이 다르다. 플랫폼이 개선할 것은 없다”고 일축했다. 현행 웹툰 업계의 계약은 주로 플랫폼-제작사, 제작사-창작자 간 계약으로 이뤄진다. 플랫폼과 제작사 간 계약은 작가조차 보지 못한다. 이들 계약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창작자의 계약이 공정할 수도, 불공정할 수도 있다. 갑-을-병으로 내려오는 구조의 최상단인 플랫폼이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하도급 논리와 닮았다.

지난해 11월 나온 <검정고무신> 관련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우영 작가와 출판사 형설앤이 2007년 맺은 사업권 계약과 2010년 맺은 양도각서의 효력은 계약이 해지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해당 계약 효력 정지 시점을 2018년 11월로 판시해 문제가 복잡해졌다. <검정고무신> 저작권은 이 작가 유족에게 돌려주면서 2018년 11월 이전에 발생한 이 작가의 사업권 계약, 양도각서 위반은 인정한 것이다. 결국 이 작가의 배우자 이지현씨에게는 약 4400만원, 열한 살 딸에게는 약 3000만원의 손해배상 의무가 생겼다. 양측 모두 즉각 항소했다. 이지현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재판을 꼭 이길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사후 70년간 남는다는 저작권이 아니라 아빠가 끝까지 맞서 싸운 것들이 정말로 불공정하고, 나쁜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정고무신> 사태의 본질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 문제다.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구독 방식이 변하고, 플랫폼과 제작사가 과거 출판사의 지위를 대신해도 마찬가지다. 본질이 바뀌지 않았는데 파생된 문제가 다를 수 없다. 이제 플랫폼은 왜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플랫폼 눈치만 보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볼 때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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