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순간 선택한다. 식사 메뉴부터 전세 대출까지, 선택은 우리 삶의 핵심이다. 단세포 생명체도 선택을 한다.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무척추동물은 더 복잡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간단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극에 반응하고 간단한 선택을 내리도록 신경회로가 구성돼 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복잡한 환경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뇌 영역을 가지고 있다. 전두엽 피질은 감각 정보, 보상 신호, 과거 경험을 통합해 어떤 일의 계획과 결정, 진행을 주도한다.
인간 역시 생물이므로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보상 처리와 동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당연히 이 과정에서 다양한 유전자가 신경전달물질 시스템, 뇌 발달, 개인의 의사결정 스타일 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생명체가 복잡해질수록 정보 처리의 정교함과 의사결정에 고려되는 요소의 수는 극적으로 증가한다. 인간은 의식적인 인식을 통해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이해하고, 사회적 요인이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와 차별화된다.
산란을 위한 선택과 유전학
초파리 암컷은 두 달 정도 되는 삶 속에서 어떤 수컷과 교미를 해야 하느냐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초파리 수컷의 구애 행위와 암컷의 선택을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수컷을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선택이 남아 있다. 그건 바로 자식을 위한 선택이다. 인간의 경우, 갓난아기의 모든 선택은 부모에 의해 대행된다. 그건 초파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직 암컷 초파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2008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간단한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는 모델로서의 초파리 산란장소 선택’이라는 논문이 발표된다. 이 논문은 암컷 초파리의 산란장소 선택이 초파리로서는 아주 복잡한 신경회로를 필요로 하는 의사결정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즉 암컷 초파리의 산란지 선택이 의사결정을 구현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간단하고 유전적으로 조작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인간 외에도 대부분 생명체는 후손을 위한 어느 정도의 희생적 선택 기제를 갖추고 있다. 초파리 암컷의 산란장소 선택이 바로 그런 사례다. 암컷의 산란장소 선택은 주변 환경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암컷은 산란지 후보의 영양 상태, 안전성,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
암컷이 자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산란지를 선택하는 기준의 핵심은 설탕이다. ‘사이언스’의 논문은 암컷 초파리의 산란지 선택이 해당 선택지의 당 농도에 민감하며, 암컷에게 서로 다른 당 농도의 선택지가 주어질 경우, 암컷은 항상 당 농도가 낮은 장소를 산란지로 선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오랜 진화과정 중에 고농도의 당이 존재하는 장소에 알을 낳을 경우, 알이 그 당을 먹기 위해 모인 포식자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자연 선택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 시간 조절 선택
인간이나 초파리나 자식을 위해 암컷에게 복잡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나 초파리나 암컷이 자식을 낳으며, 이는 수컷이 대체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0일도 안 되는 삶을 사는 초파리 수컷이 내려야 하는 가장 복잡한 선택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암컷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초파리 수컷의 암컷에 대한 취향은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 아마도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 중에 까다롭게 선택하던 수컷 초파리들이 대부분 자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진화한 흔적일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초파리 수컷에게도, 자신의 두뇌가 가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초파리 수컷은 얼마나 오랫동안 암컷과 교미를 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선택은 초파리 수컷의 유전자 대물림에 아주 중요한 행동으로 드러났다. 초파리 수컷이 어떤 암컷과 교미할지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지만, 얼마나 교미 시간을 유지할지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이유는 초파리 암컷이 여러 수컷과 교미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즉 초파리 수컷이 교미하려는 암컷의 몸속에는 다른 수컷의 정자가 들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면 도대체 왜 교미 시간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초파리의 경우 수컷이 암컷과 교미하는 시간을 조금만 늘려도, 자손이 자신의 정자에 의해 수정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초파리 수컷의 정자에는 섹스펩타이드라는 물질이 존재하고, 이 펩타이드가 암컷 몸에 들어가면 암컷이 교미 후 산란 행동을 위해 다른 수컷과의 교미를 중단하는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시간이 약 30분에서 1시간 이후이고, 수컷 초파리가 최선을 다해 유지하려는 교미 시간도 30분 내외다. 즉 초파리 수컷이 암컷 초파리와의 교미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다면, 초파리 수컷의 인생은 성공적일 수 있다. 초파리 수컷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바로 교미 시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선택하자
4월이면 한국의 유권자들은 한국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각 정파는 정권심판을, 운동권 심판을, 거대양당 심판을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우리가 선거에서 매번 절실함을 가지고 선택했다면, 저런 허술한 구호가 난무하진 않았을 것이다. 초파리들이 인생을 걸고 내리는 선택조차 생존과 자손을 위한 것인데, 위대한 인간이 내리는 선택이 저런 수준 낮은 포퓰리즘적 구호일 리 없다.
물론 당연히 인간은 초파리가 아니다. 정치유전학과 신경정치학의 연구 결과들이 도파민 수용체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잣대라 주장해도, 우리가 그 조악한 우생학의 흔적에 흔들릴 이유는 없다. 선택은 우리 스스로가 내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그 무엇도 근거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초파리조차 할 줄 아는 처절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정치적 구호에 휘둘려 생존과 자손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초파리보다 나은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구호를 선택하면 된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의 여유조차 서민이라는 프레임 속에 마셔야 하는 처절한 나라 말고, 욕심부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면 내 가족과 내 집에서 별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선택하면 된다. 그 길을 선택하자.
<김우재 낯선 과학자>